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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 진희 누나의 편지

등록|2009.10.15 09:34 수정|2009.10.15 09:34
아가에게.

무더운 날씨, 병원에 갔다 터벅터벅 집에 돌아왔는데 컴터 위에 정말이지 너무 반가운 이름이 있더라.
(...)
군대 간다며 손 흔든 지가 몇 달이나 흐른거 같은데 고작 며칠이라니... 누나 니 소식 많이 기다렸다. 
누난 요새 열흘이 넘도록 병원에 다니고 있어.
몸 어딘가가 고장이 났나봐. 안 아프고 싶은데... 내 맘대루 되지 않네...

오랜만에 꺼내봐요. 5년 전 제가 받은 누나의 편지를.  맞아요. 누나는 저를 "아가"라고 불렀죠. 군대 다녀오면 "아가"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고도. 누나가 살고 있던 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홍등가'라고, 어떤 이들에게는 '빨간집'이라고 불리는 곳. 언론에게는 '집창촌' 혹은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죠. 그러나 누나에게 그 곳은 '집'이었네요.

(...) 
그 곳에선 널 여리다고 봐주지 않을테니 니 몸 네가 잘 챙기렴...
아프지 말고...
네가 제대하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담배는 배우려나... 그때는 남자처럼 보이려나?
누나는 그때 27이 되겠구나. 생각만 해두 징그럽다...
(...)
너 때문에 몇 년만에 써보는 편지인지...
막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무슨 말을 썼는지도 모르는 두서없는 말솜씨 아니 글솜씨다.

이때 누나 나이는 스물 다섯. 제 나이는 스물 둘이었죠. 누나 말대로 담배를 배우고 제대한 지금의 나는 스물 일곱. 누나가 '생각만 해두 징그럽다'고 상상한 나이. 그러니 누나는 서른이 되었겠죠. 이제 제가 감히 궁금해 합니다. 지금 당신, 잘 지내시나요.

실은 누나 요새 기분이 넘 안좋아...
아파서 그런지... 슬럼프인가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구... 의욕도 없고...
열심히 산다 해서 내 삶이... 미래가...
평탄할거란 걸 보장할 수 없고...
젊음 하나로 버티고 "삶이 평탄하면 재미없잖아!" 이런 식으로 그걸 즐기려 했는데... 이젠 지쳤나봐!
요즘 같은 땐 산골같이 조용한 곳에서 지내고 싶어. 욕심도 부리지 않고 주어진 몫에 만족하며...
머리 아픈 일도 없고 말야...

누나의 '집'은 안락함과 거리가 멀었죠. 밤마다 붉은 등을 켜고 홀복을 입어야 했으니. 찾아오는 남자들에게 돈을 받고 다리를 벌려야 했죠. 지금 제 나이보다 두 살이나 어렸던, 스물 다섯의 누나가. 그런 일상 속에서도 누나는 의욕을 가지려고 한 건가요. 억지로 억지로 희망을 꿈꾸었나요.

왜 이리 앞으로만 달리려 하는지...
너무 많이 지쳐서 날 멈추고 싶은데...
여기서 멈춰버리면... 난 없을 거 같아.
삶의 목표도 없이 찌들어버린다면...
난 아마 안 사니만도 못하겠지!
왜 이리 내 자신을 들들 볶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날 아프게 하는지...
쉬고 싶다...
내가 갑부집 딸이었음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 먹고 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이젠 인간냄새가 싫다.
사람들한테서만 나는 냄새... 인간냄새.

누군가의 쾌락이, 다른 누군가에겐 저주가 될 수도 있지요. 우리가 카페에 편안히 앉아서 도란도란 논하는 '사람냄새 나는 세상'이란 낭만이 어떤 이들에게는 허황된 헛소리에 불과한 거지요. 누나가 그때 가졌던 '삶의 목표'를 기억해요. "나중에 고깃집 하나 내서 혼자 살고 싶다"고 말했죠. 사람들한테만 나는 냄새를, 인간냄새를 밤마다 맡으며 진저리 친 누나를 이해하기에는 저는 한참이나 어렸습니다. 어려서 이해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어요. 지금의 저는, 우리들은, 얼마나 무감각해져 버렸는지요.

(...)
두서없는 글 읽어줘서 고맙고
다음에 편지쓸 땐 좋은 기분으로 누나 얘기 많이 해줄게.
병원 갔다와서 그런지 기운이 하나도 없다.
이젠 자야겠다...
편지 자주하고 누나 니 소식 마니 궁금하니...
아가야. 아프지 마!
그럼 이만...

진희누나가...

진희는 누나가 그 세계 속에서 쓰는 예명이었어요. 남자이름 같은 본명은 편지 겉봉투에 쓰여져 있었죠.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누나가 그때 아팠던 이유는, 자궁에 혹이 생겼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자궁에 혹을 단 채 '일'을 계속 하다가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는 말도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 후에, 편지는 끊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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