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특전사 '삽' 들게 한 그녀의 힘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 중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연금술사'의 작가 파올로 코엘료와 만나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유성호
"40대 중반 몸을 추스리기 위해 걷기를 시작했다. 난 원래 역동적인 것이 좋았고 문화, 문명, 도시, 이런 것에 끌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사람이 됐다. 모두 다 걷기 덕분이다."
제주 토박이말로 집 앞마당을 지나 큰길에 이르는 작은 골목길을 뜻하는 '올레'는 어느새 도보여행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한 언론인의 일탈에서 비롯되었다.
경쟁에 몸도 마음도 피폐할 때 운명처럼 만난 책 한 권
▲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1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제주올래, 발상의 전환을 배우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유성호
14일 저녁 7시,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18층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의 다섯 번째 강사는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었다. 서 이사장은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거치며 23년간 언론인 생활을 했다. 스스로를 전형적인 일 중독자였다고 진단한 그의 표현대로 "지지고 볶는" 세월이었다.
"기자는 가장 경쟁이 심한 직업이다. 일년에 특종이야 기껏 한, 두 번이고 나머지는 물먹는다고 봐야한다. 다른 주간지에서 특종한 걸 보면 너무 속이 상해서 가슴에 암 덩어리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여러 해 동안 정신과 육체를 갉아 먹었던 것 같다."
'총성 없는 전쟁터', 매 순간 피 말리는 취재현장은 기자로, 편집장으로 살았던 서 이사장을 괴롭혔다. 40대 중반이 되자 몸이 아파왔다. "어느 날 갑자기 굉장히 지치고, 아침에 일어나면 손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울면서 내일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잠들었다."
2003년 4월, <시사저널>의 새 경영진과 기자들의 갈등이 깊어졌을 때, 편집장이었던 그는 훌쩍 사표를 냈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브라질에 사는 한국 교포 여성이 오십줄에 접어들어 난생 처음 혼자 길을 떠나 장장 800Km를 걸었던 경험을 쓴 여행기였다. 그 길의 이름은 '산티아고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도 언젠가 이 길을 걸어야지"라고.
백수가 된 지 2년이 다 되어 가던 2005년 봄,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에게 편집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모르는 세계를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어 이틀 만에 수락'했다. 첫 월급이 나오던 날, 월급의 일부를 뚝 떼어내어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산티아고 적금'이라고 이름 붙였다. 2년간의 임기가 끝나면 훌쩍 떠나리란 다짐을 하면서.
"처음 7, 8개월은 너무 재미있었다. 네티즌의 여론이 정부의 제도개선까지 이끌어 내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도 받았다. 그런데 새로운 연인의 신선함이 사라지자 '산티아고'의 열망이 솟아올랐다. 일 년이 되자 도저히 안 되겠구나 싶었다."
여러 날 고민하던 그는 '사회적 책임도 개인의 행복을 저당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떠나기로 결심한다.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맡은 뒤 1년 2개월 만이었다. 두 달 동안 "새로 산 등산화와 배낭의 무게를 몸에 익히기 위해" 집에서 여의도 공원까지 12Km를 매일 걸었다.
그리고 2006년 9월 스페인을 향해 떠났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대서양에 이르는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그 길은 '땅 끝까지 전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성 야곱이 걸었고, 수많은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이었다.
"자기 나라로 가 각자 길을 만들자, 너는 너의 길, 나는 나의 길을…"
▲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1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제주올래, 발상의 전환을 배우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유성호
"앞으로 5년에 한 번씩은 빚을 내서라도 산티아고에 올 거야"라는 그의 말에 헤니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수는 없잖아.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길을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서 이사장은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고향 제주의 길을 떠올렸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작은 오솔길들을 연결하면 바다와 들과 산을 모두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헤니와 헤어진 그는 35일을 걸어 마침내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귀국해서 <중앙일보>에 산티아고길에 대한 여행기를 10회 연재하면서 마지막 글에 나는 고향 제주에도 이런 길을 만들고 싶다고 썼는데, 그것이 그만 기정사실화 되어 버렸다. 그걸 읽은 주변 여자들이 언제 길을 낼 거냐고 들들 볶았다."
이렇게 그를 부추긴 사람들이 양희은, 이유명호, 고은광순, 조선희, 최광기 등 이른바 '십자매'의 일부였다. 이들을 묶어주는 단 하나의 공통 코드가 걷기를 좋아하고 콘크리트를 증오한다는 것이었다. 십자매 멤버들은 음식을 시식하는 것처럼 길을 내기 전에 내려와 미리 걸어 보곤 말했다. "이거 만들면 대박이다.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 없겠다"라고. 특히 외국을 많이 다녀 본 한비야와 양희은의 평가는 서 이사장을 고무시켰다.
해병대와 특전사 장병들까지 길 터주기에 나서
▲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1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제주올래, 발상의 전환을 배우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유성호
그렇게 그는 본격적인 길 만들기에 나섰다. 처음에는 숨은 길을 찾거나 끊어진 길을 잇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쳐 왔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올레지기'들은 해안가에서 돌을 날라 징검다리를 만들어 주었고, 삽과 곡괭이로 가파른 곳에 턱을 만들어주었다. 심지어 제주에 주둔한 해병대 장병들과 훈련차 제주를 찾은 특전사 요원들이 난코스에 길을 터주기도 했다.
2007년 9월 8일 성산읍 말미오름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15Km의 제주 올레 1코스 개장행사가 열린 이후, 2년 만에 15개의 코스가 복원되었다. 모두 합쳐 250Km의 길이 숨어 있다가 사람들을 맞았다.
"올레 길임을 알려주는 파란색과 귤색의 이중 매듭을 나무에 묶고, 제일 못생긴 화강암 돌멩이를 골라 곱게 화장을 시켜주는 기분으로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화살표가 얼마나 반갑겠나. 이렇게 제일 못생긴 돌이 가장 반갑고 귀한 돌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황당한 일도 생겼다.
"바닷가 마을인데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자, 그 동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는 것이 안타깝다고 800m의 길에 시멘트를 부어서 공사를 해놓았더라. 그걸 보고 길길이 날뛰면서 화를 냈다."
서 이사장은 그 '콘크리트 마인드'를 고쳐주면서 지난 1년 반을 보냈다. 지금도 주민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절대로 길에 이상한 시설하지 말라고…. 화장실, 정자, 쉼터 만들지 말고 나무 그늘 밑에 의자 두 개만 놓아달라고." 요즘 그에겐 '우리 마을에도 올레코스가 지나가게 해 달라'는 이장님들의 민원이 가장 많다고 했다. 지난 9월에는 걷기 여행에 새바람을 일으킨 공로를 인정 받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콘크리트 벗어나 느림의 문화가 피어나는 길
▲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1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제주올래, 발상의 전환을 배우자' 특강을 마친뒤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올레의 핵심은 천천히 걷기다. 그 길에는 콘크리트를 벗어난 느림의 문화가 피어난다. 서 이사장은 올레에서는 가능한 한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즐기라고 권한다. 이 과정에서 가슴속에 자신만의 아픔이나 슬픔을 담고 살던 이들이 혼자 펑펑 울기도 하고 소통의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서 이사장은 걷기의 미덕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가 조정래 선생은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은 직립보행'이라고 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걷는 발이 온몸에 피를 돌려주고 두뇌를 자극해 주니 문명이 가능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예술가, 음악가들이 걷기를 즐겼다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타게 되면서 걷기를 포기하다 보니 각종 질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걷는 것은 노동이다. 올레 길처럼 느리게 걷는 게 육체와 정신의 휴식이고 치유다."
30년간 서울에서 살면서 제주사람으로서 제일 화가 났던 때가 '제주도는 이틀이면 다 돌아본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는 서 이사장. 그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길이 아니"라며, "잡풀이 무성하고 가시나무가 자라서 닫혔던 길이 사람들이 와서 밟고 다져서 다시 이어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 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는 제주의 올레길이 전국으로 이어져 아버지의 고향인 함경북도 무산에까지 닿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제주 올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은 여기로. http://www.jejuol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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