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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대거 내주고, 상품·자동차 이익 미미"

[분석] 한-EU FTA 협상결과 꼼꼼히 따져보니

등록|2009.10.15 17:28 수정|2009.10.15 17:28

▲ 한-EU FTA협상 이혜민 수석대표와 EU측 베르세로(Ignacio Garcia Bercero) 수석대표가 지난 3월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 가서명을 거쳐, 내년께 발효를 목표로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한-EU FTA가 국내 경제성장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민간 연구소의 잇딴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세계 최대 시장인 EU와의 교역확대로 경제적 이익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도 이번 협상안을 두고, "이번 FTA 협상문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양쪽 모두 100% 만족할 수는 없다"면서 "전체적인 (협상에서) 이익의 균형을 봐야 하며, (균형을)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정부가 협정문을 정리한 <한-EU FTA 설명자료>에 대해 국제통상연구소의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전자, 반도체, 자동차 등 상품 관세철폐 효과 등을 꼼꼼히 따져봤다. 이번 평가에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를 비롯해,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한-EU FTA에서 우려됐던 각종 독소조항이 여전한 상황에서, 우리쪽 이익이 클 것으로 예상됐던 가전이나 자동차 협상은 실제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수입비중이 높은 자동차부품을 비롯한 기계, 의약 분야 등에서 국내시장이 급속히 잠식 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마디로 실속은 거의 챙기지 못하고, 밑진 장사만 했다는 것이 이들 평가다.

이와 함께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참고자료 수준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던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비관세부분, 지적재산권 관련 EU쪽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집행을 강화하는 것으로 협의됐는지, EU가 철회한 것으로 알려진 공연보상청구권 등은 향후 구체적인 최종 협정문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이들 전문가들은 밝혔다.

[상품 관세철폐 효과] EU서 유리한 시장 확보? - "실속 없는 밑지는 장사"

▲ 한EU FTA의 양쪽 양허안 비교 ⓒ 김종철


우선 공산품을 비롯해 농산물 등 상품 관세 철폐에 대한 부분. 정부는 품목수를 기준으로 EU쪽이 99.4%에 해당하는 품목을 3년 이내에  철폐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95.8%라고 밝혔다. 품목수만 따지면 우리보다 EU가 시장을 더 개방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어 "높은 수준의 FTA 체결을 통해 우리의 대EU 수출주력품목의 시장 점유율 확대 가능성이 커지고, EU 시장에서 일본, 중국보다 유리한 경쟁 기반을 조성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통상연구소 전문가들은 이같은 효과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는 "정부는 사실상 공산품 3년내 완전개방을 이유로 우리가 유리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우선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선박, 무선통신기기, 평판디스플레이(LCD), 반도체, 컴퓨터 철강판 등은 이미 관세가 없다. 또 자동차 부품의 관세는 3~4.5%, 무선통신기 부품은 2%로 관세가 낮다. 우리나라가 EU 수출액에서 이들 품목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60% 이상임을 볼 때, 사실상 관세 인하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의 이익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자동차의 경우도 EU쪽의 기대품목인 중형차는 3년내, 한국쪽 기대 품목인 소형자동차(1500cc 이하)는 5년 철폐이기 때문에 우리쪽이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 FTA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 발효되기까지는 최소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면, 자동차 부문 효과는 7~8년 이후에나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관세율이 높고, 실제 금액비중이 높은 품목인 칼라TV 및 모니터(관세율 14%), 하이브리드카, 순모직물 등의 경우 5년 철폐로 됐기 때문에 이 역시 실질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수입비중이 높고, 상대적으로 관세율이 높은 품목들의 경우 거의 즉시 철폐대상으로 돼 있다. 관세율이 8%인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선박 및 부품(5~8%), 직물제의류(8~13%) 기계 및 기타기계(6.4~8%) 등은 관세를 즉시 없애야 한다.

또 그동안 EU쪽으로부터 가장 많은 수입을 기록하고 있는 의약품을 비롯해 화장품, 중대형 자동차 등은 조기 철폐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소형차와 시멘트, 무선통신 기기 부품 등 주요 품목들 대부분이 5년내 철폐하기로 돼 있다.

백 교수는 "품목수로 따지자면, 사실상 전면 개방 수준"이라며 "하지만 실속은 전혀 챙기지 못하고, 밑지는 장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자동차] EU산 자동차 국내시장 공략 거세질 듯, 안전기준은 EU에 특혜까지

▲ 한-EU FTA 자동차 분야 관세철폐 비교 ⓒ 김종철


구체적으로 주요 품목별 시장 개방 효과를 보면, 과연 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이익의 균형을 이뤘는지 고개를 까우뚱하게 만든다.

이번 협상의 핵심 품목인 자동차의 경우 관세율로 따지면 EU(10%)가 우리나라(8%)보다 높다. 단순히 계산하면, 그만큼 EU 시장을 개방할 경우 우리쪽 이익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그동안 일부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이번 협상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왔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반드시 우리쪽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소형자동차의 경우 5년이후에나 관세가 철폐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쪽에선 불리한 조건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EU의 1500cc 이상 중대형 자동차의 수입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3년내 조기철폐된다. 게다가 한미FTA 타결 조건인 특별소비세(5%) 인하까지 더할 경우 최소한 13%의 가격하락 효과가 발생한다.

작년 국내 수입차 가운데 EU 비중이 51%인 반면, 미국차 비중은 10%이내다. 그만큼 유럽차에 의한 국내 자동차 시장과 산업의 피해는 한미FTA보다 5배에 달할 수 있다는 평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작년 우리나라의 대 EU 자동차 수출은 36%나 감소했다"면서 "이는 현대기아차가 체코 등 현지에서 생산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며, 앞으로 현지 생산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동차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이익을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비 관세분야인 자동차 환경과 안정기준 적용에서도, 유럽쪽 기준이 적용되면서 우리나라 입장에선 이에 따른 비용이 더 발생하고, 유럽은 상대적으로 편한 입장이다.

이번 협상 결과 자동차는 UN 유럽경제위원회 기준을 기본으로 채택됐다. 우리쪽 입장에선 더 엄격한 안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U는 우리나라의 환경기준조건(FAS)을 1만대 이하 판매시 면책되고, 배출가스자기진단장치(OBD)를 2013년까지 미부착을 허용하는 특혜까지 주어졌다.

[섬유] EU 관세철폐 효과 미미... 국내 고급의류시장 장악

섬유 분야의 경우는 한미FTA와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EU FTA에서도 이익이 되는 분야로 꼽아왔다.

이번 협상에서 한미 FTA의 '얀포워드(원사기준)'보다는 우리쪽이 유리하다는 '패브릭포워드(직물기준)'가 적용됐다. 하지만 섬유의 경우 우리나라가 EU에 수출하는 비중에서 크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중저가 섬유제품의 경우 중국에 크게 밀려나 있기 때문에 관세를 철폐한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거의 없다는 평가다.

대신 유럽국가 가운데 이태리 등은 한국에 고급 의류수출량이 많고, '패브릭포워드' 기준으로 향후 국내시장으로 고가 의류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백일 교수는 "공산품의 경우 EU쪽은 이미 거의 관세가 없거나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관세) 철폐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반대로 우리나라의 경우 관세율이 평균 8%에 이르기 때문에 향후 EU로부터의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환급과 보조금 등] 관세환급 유지는 했지만, 세이프가드 도입 허용

이번 협상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쟁점으로 남았던 관세환급의 경우는, 정부 발표대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협정 발효 후 5년 후부터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해당 품목에 대해 관세환급 비율을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세이프가드가 도입되면 현행 실행관세율인 8% 품목의 경우 5%만 환급하기로 했다. 세이프가드의 발동 요건 등을 규정했지만, EU쪽에서 적극적으로 관세환급 제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함으로써, 자칫 관세환급 유지의 효과가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보조금 분야에선, 서비스 및 농수산 보조금의 경우 이번 협정 적용 범위에서 제외됐다. 물론 객관적 기준에 따라 지급되는 중소기업 보조금의 경우 허용됐다. 하지만 기간과 양적인 측면에서 무제한적인 보증에 따라 지급되는 보조금이나, 회생계획이나 자구노력을 하지 않는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은 금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의 선박 보조금 분쟁과 같이 보호무역 쟁점의 재발 여지를 남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 교수는 "한국은 유럽쪽으로부터 무역제소를 많이 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보조금 분야 등에선 분쟁 소지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 한-EU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7월 14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한-EU FTA 묻지마 타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서비스 및 투자] 금융위기 원인 각종 금융상품 그대로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던 각종 금융파생상품을 비롯해 새로운 금융서비스 등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이번 협상에 포함됐다. 정부는 한미FTA의 개방 수준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위기시 우리 정부가 외화의 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단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간은 명시하지 않았다.

이해영 교수는 "협상 초안을 보면 금융위기시 긴급외환거래 중단 조치가 한미FTA는 1년인데 반해, 한-EU FTA는 6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돼 있다"면서 "최종 협정문이 공개되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비스 분야에서는 다수의 한미FTA 플러스가 적용됐다. 협정 내용을 보면, 금융, 통신, 법률 등 서비스 시장 개방의 경우 한미FTA 수준이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여기에 EU는 추가로 통신쪽에서 국제위성전용회선서비스의 상업적 협약체결 의무를 면제시켰고, 환경분야에서도 협정 발효 5년 후부터 생활하수처리서비스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법률 서비스에서 자국 명칭 사용을 허용하도록 했다.

이 교수는 "EU는 처음부터 서비스시장에서 한미FTA와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면서 협상에 임했고, 여기에 추가로 통신과 법률 등에서 서비스 시장 개방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지적재산권] 특허강국 유럽, 저작권 보호 70년으로 늘면서 이익도 올라갈 듯

EU는 한미FTA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뿐 아니라 여기에 그동안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지리적 표시(GI)와 방송사업자의 권리를 관철시켰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한미FTA와 마찬가지로 이번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도 한국의 요구가 관철된 것은 없는 반면, 미국과 EU의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수용한 셈이 됐다.

저작권 보호기간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됐다. 이는 한미FTA에도 포함돼 있지만, 독일의 경우 세계3대 특허 국가임을 감안할 때, 그만큼 로열티 지불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EU는 지적재산권 집행의 강화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번 정부 자료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일반 서민들의 의약권 접근권을 크게 제약할 수 있는 '허가-특허 연계' 조항의 경우 실제 협정문에 어떻계 포함돼 있는지도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송사업자에게 TV 방송물을 상영하는 대가로 입장료를 받는 행위를 허락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현행 국내 저작권법에서는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이번 협정이 발효되면 현행 저작권법을 개정해야 하며, 방송사업자에게 일종의 공연권이 부여된다면, 이로 인해 비영리적(입장료를 받더라도 비영리적 목적의 공연일 수 있음) 문화 향유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해영 교수는 "이번 한-EU FTA의 경우 그동안 EU가 보여왔던 FTA 모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며 "좀더 구체적인 협상문이 나와 보면 알겠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것만 하더라도 'EU는 좀 덜 하겠지'라는 우리의 생각을 여지없이 착각으로 만들어버린 FTA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한미FTA 뿐 아니라 한-EU FTA의 경제효과도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EU와 FTA를 발효시킬 경우 한국경제에 큰 재앙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는 한-EU FTA 협정문 영문본을 오는 19일 외교통상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공개할 예정이다. 이어 국문 번역본의 경우 빠르면 오는 11월초께 공개된다. 이혜민 FTA 교섭 대표는 "협정문 번역작업이 마무리되면 내년 1~2월께 정식 서명할 예정"이라며 "이후 국회 비준 절차를 거쳐 빠르면 내년 중에 정식으로 협정이 발효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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