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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연기보다 더 중요한 건 뭐?

[TV리뷰] 뚜껑 연 '대작' <아이리스>... 첫방 시청률 24%, 주연 연기 돋보여

등록|2009.10.16 15:32 수정|2009.10.16 15:32

▲ 드라마 <아이리스> 포스터. ⓒ KBS

드라마 <카인과 아벨> <시티홀> <태양을 삼켜라>.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모두 올해 SBS에서 방영한 수목드라마라는 점. 둘째, 지명도 높은 스타급 배우와 작가의 캐스팅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는 점. 셋째, 그리하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렸던 높은 인기의 드라마였다는 점.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작품 모두 시청률 20%를 넘지 못했다는 점. 이상 네 가지가 바로 이들 드라마의 공통점이다.

언제부턴가 수목드라마 시장의 시청률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올해부터는 아예 시청률 20%가 넘는 드라마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드라마 역시 모두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지만 20%의 고지를 넘는 데는 실패했다. 세 드라마의 자체 최고 시청률은, <카인과 아벨> 19.4%(TNS미디어코리아), <시티홀> 19.6%(이하 동일기준), <태양을 삼켜라> 18.8%였다.

소지섭 같은 한류스타도 출연해보고, <온에어>의 신우철·김은숙 콤비도 뭉쳐봤다. 그래도 안 되자 <올인> 영광의 재현을 위해 제작비 120억원을 쏟아 붓기도 해봤다. 그래도 '마의 20%'의 벽은 깨지지 않았다. 요지부동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수목드라마 시청률이 부진한 원인을 찾는 신문기사까지 등장했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20%를 넘기는 '대박'을 보게 될 수 있을지. 보고는 싶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대작 <아이리스>, 그 순탄치 않은 여정

그런데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방송 첫 회에, 무려 24.5%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단숨에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KBS 수목드라마 <아이리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국가안전국(NSS)이라는 가상의 국가정보단체 요원들의 활약을 그린 첩보액션멜로드라마 <아이리스>는 오래 묵은 작품이다. <아이리스>의 제작이 언론에 의해 기사화된 것은 지난해 4월, 한류스타 이병헌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정준호, 김태희, 김승우, 김소연 등 화려한 캐스팅이 모두 종료되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것이 올해 초, 그리고 지난 14일 첫 회 방송. <아이리스>를 기다린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제작기간도 길었지만 방영되기까지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기존의 외주제작 드라마와는 다르게 방송사로부터 편성을 받지 않은 채 제작에 들어간 <아이리스>는 지난 5월 KBS에서 방영하기로 결정됐다. 최초 9월 경 월화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MBC <선덕여왕>을 피해 10월 수목드라마로 편성을 옮겼고, 그나마도 첫 회 방영 당일까지 방송사와 제작사 간 계약문제로 잡음이 일어 불방사태 직전까지 가야 했다.

막판까지 진통을 겪은 끝에 볼 수 있게 된 <아이리스>는 초장부터 큰 스케일과 빠른 속도감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큰 돈 들어간, 소위 해외 로케이션 대작들이 그러하듯, 드라마는 헝가리의 시내를 풀샷으로 잡은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윽고 등장하는 절대 카리스마 이병헌(김현준 역),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김영철(부국장 역). 이야기는 부국장이 현준에게 북한의 고위인사 암살지령을 내리면서 긴박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암살에 성공한 현준은 무사히 도망쳐 나오지 못한다. 그를 쫓는 박철영(김승우 분)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은 그는 안가로 피신해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나, 부국장은 요원수칙을 지키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암담한 상황, 북한 측 요원들은 그의 거처를 알아내고 습격한다. 부상당한 와중에도 놀라운 솜씨로 적들을 물리친 현준이었으나 결국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기에서 날아온 미사일에 맞아 의식을 잃는다.

첫방송 시청률 24.3%... 이병헌 연기 돋보였다

▲ 드라마 <아이리스>의 한 장면. ⓒ KBS


그리고 화면은 1년여 전의 과거로 돌아가, 현준과 그의 친구 진사우(정준호 분)가 어떻게 NSS의 요원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담아낸다. 그런데 이 드라마, 뜻밖에도 사람을 웃길 줄 알았다. 남북한 간 첩보액션을 그리는 무거운 드라마라서 잔뜩 폼 잡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등장인물의 대사와 상황이 주는 코믹함이 군데군데 묻어나는, 잔재미가 가득한 그런 드라마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무거움과 가벼움이 어색하지 않게, 서로 잘 어울리며 교차하는 것이 <아이리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실전에 투입하여 테러범을 잡고 암살 위험에 처해있던 요원을 무사히 구출해낸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선 노래방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트로트를 부른다. 시청자로 하여금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하게 만들었다가 어느새 킥킥대며 웃게 만든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장면들이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러웠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내공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병헌과 정준호. 둘 다 연기력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베테랑들이다.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 어딘가 모자라고 바보스러운 역할, 재미있고 가벼운 역할, 섬뜩하게 무서운 악역, 욕이 저절로 나오는 비열한 역할 등등…. 연기의 진폭이 넓은 두 배우이기에 가능했다.

특히나 이병헌의 연기는 그야말로 화면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돋보였다. 암살 대상을 향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냉정하게 총구를 겨누는 날카로운 NSS 요원에서, 강의실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을 보곤 첫 눈에 반해 빠져드는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그러면서도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점 하나 없이 모든 게 있는 그대로의 것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그의 연기는 단연 수훈감이었다.

드라마 답지 않은 드라마 <아이리스>

▲ 드라마 <아이리스>의 한 장면. ⓒ KBS


드라마를 보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건 김태희의 연기력이었다. 빼어난 미모와 돋보이는 학벌로 단숨에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그녀였지만 어색한 연기력은 작품을 할 때마다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그것은 <아이리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병헌, 정준호는 물론이고 김승우, 김소연 역시 연기력에서는 걱정할 게 전혀 없는 배우들이었고, 빅뱅의 탑(TOP)은 과묵한 킬러 역할로 대사가 극히 적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자신의 연기력 논란을 의식했는지 그녀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도 "지난 1년 동안 연기를 배우는데 노력했다"고 말했다. 데뷔 10년이 다 되어가는 배우에게서 듣기 다소 생소한 말이었지만,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이리스>에서의 그녀의 연기는, 이전보다는 확실히 발전한 모습이었다. 어느 상황에서나 일관된 톤의 발성, 딱딱하게 굳어 놀란 듯 보였던 표정 등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드라마답지 않은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아이리스>는 드라마답지 않은 빼어난 영상미와 통 큰 스케일로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아 둔다. 한마디로 돈 들인 티가 팍팍 난다고나 할까. 총 제작비 200억원, 무려 회당 10억 원에 이르는 국내 드라마 역사상 최고액의 제작비가 들어간 드라마다웠다(물론 그 중 상당부분은 주연배우들의 출연료로 나가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드라마, 특히 16~20부 내외의 미니시리즈가 갖는 고질병인 쪽대본과 생방송 촬영이 없다는 점은 극의 완성도적인 측면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올해 초부터 촬영에 들어간 <아이리스>는 현재 전체 20부의 절반인 10부까지의 촬영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배우들에게는 대본을 충분히 숙지하고 연기를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제작진에게는 연출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는 셈이다.

<아이리스> 수목드라마 강자로 우뚝 설까

<아이리스>는 서구 첩보물이라는 장르와 대한민국의 정서가 만난 작품이다. 냉전시대가 종식된 이후 제임스 본드는 가장 크고 매력적인 적을 잃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적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러나 새로이 찾아낸 적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위협적이지도 못한 군부세력, 언론재벌, 금융재벌 따위였다. 결국 적의 부재를 견디다 못한 007 시리즈는 처음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이자,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공산국가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첩보물은 아직도 그 소스가 무궁무진하다.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매력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가능한 원천보고라고 할까. 전국관객 500만명 이상을 불러 모으며 크게 흥행해 한국형 첩보액션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연 <쉬리>는 이런 상상력이 잘 발휘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드라마 <아이리스>의 한 장면. ⓒ KBS


<아이리스>는 철저한 픽션이고, 그래서 드라마 시작 전에 '드라마의 모든 것은 허구'라고 명시했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첫째로 중요한 건 작가의 상상력이며, 둘째는 그 상상력이 시청자들의 정서와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하는가다. <아이리스>와 마찬가지로 이병헌이 주연이었고, 못지 않은 대작이었던 <백야 3.98>이 왜 실패했을까?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연출의 세밀함이다. 빠른 속도감과 큰 스케일은 화면으로부터 시청자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속도감과 스케일 과잉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극의 조밀함이 사라지고 어딘가 엉성하게 되어 버린다. 시멘트를 구석구석 빈틈없게 발라 만든 집이 아니라 볏단을 얽어 만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엉성한 집이 된다. 첫 장면인 암살 장면이 바로 그랬다. 구멍이 난 것처럼 부족한 듯.

<아이리스>의 출발은 더할 나위 없이 산뜻하다. 시청률 40%를 넘긴 올해 최고의 히트작 <찬란한 유산>이나 <선덕여왕>도 첫 회부터 시청률 20%를 넘진 못했다. 방송 첫 주 만에 수목드라마의 절대강자로 우뚝 선 <아이리스>. <미남이세요>는 비교적 손쉽게 제압했지만 <히어로>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수목드라마 3파전이 지난해처럼 치열한 양상을 보일지, 아니면 <아이리스>의 손쉬운 승리가 될지, 11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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