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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타를 쫓아내는 방법

오현경, 이영자, 그리고 박재범의 '추방'을 보며

등록|2009.10.16 14:21 수정|2009.10.16 14:21
98년, 오현경이 쫓겨났다. 예전 애인과 찍은 섹스 비디오가 유출된 게 이유였다. 언론의 경쟁적 보도 속에서 동방예의지국은 '오현경의 성(性)' 얘기로 들썩였다. TV에 나온 오현경은 절박하게 울며 말했다. 국민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녀는 곧 사람들의 눈을 피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국민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미친 년, 미친 년." 당시 내가 살던 동네 아줌마들이 어디서 용케 구한 그 비디오를 단체로 보며 내뱉은 말이다. 어머 저 아줌마들은 남편하고 섹스도 안 하나봐.

2001년, 이영자가 쫓겨났다. 운동으로 체중감량에 성공했다고 밝혔으나 알고 보니 지방흡입수술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요컨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 언론의 열띤 보도 속에서 온 나라는 '이영자의 살' 얘기로 호들갑을 떨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이영자는 서럽게 울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내 직업을 그만두라고 하신다면 그만두겠습니다. 언론들은 그 울음을 지켜본 후, '지방흡입술과 함께 유방축소 수술과 함몰유두교정 수술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 기사를 낄낄대며 읽은 후 "거짓말은 하면 안 되지"라고 말한 내 친구들이 생각난다. 아이고 니들은 소개팅하면 "저 키높이 구두 신고 왔어요"라고 바로 밝히나보다.

2009년, 박재범이 쫓겨났다.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썼다는 게 이유다. 또다시 이상한 분노가 시작되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추방', '제2의 유승준' 같은 단어들로 논란을 키우는 데 공헌했다. 우리 모두 '박재범의 애국심'을 논했다. 나흘 만에 박재범은 팬 카페에 글을 올렸다. 미안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그룹에서 탈퇴하겠습니다. 앞에 언급한 다른 스타들의 쫓겨남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이 기이한 분노의 과정이 훨씬 빨랐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한 명의 스타를 추방하는 데 성공한다. 오현경이 돌아오기까지 9년이, 이영자가 돌아오기까지 2년 반이 걸렸다. 박재범은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다.

대중들이 스타의 사생활에 열광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열광이 순식간에 스타 개인에 대한 폭력으로 바뀐다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일련의 과정들은, 스타가 아닌 정작 우리의 미성숙함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오현경의 섹스와 이영자의 수술과 박재범의 애국심은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인, '연예활동'과 근본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나 사생활에 대한 폭력을 제어해야 할 언론은 오히려 그 폭력을 부추긴다. 선정적 기사를 남발하며 스타에게 침을 뱉는다. 성찰하지 않는 대중들은 즐겁게 분노한다. 이 과정에서 대체 누가 한 개인을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온전한 사생활을 공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은 제기되지 않는다. 한껏 분노하며 스타를 쫓아낸 후 남는 건 공허함 뿐이다. 그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다시 다른 사냥감을 찾는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스타를 소비하는 풍경은 대략 이와 같다. 다음 추방자는, 누가 될 것인가.
덧붙이는 글 다음 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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