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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역 주변 횡단보도 등장할까?

국가인권위 횡단보도 설치 권고... 경찰·시 '난색' 표명

등록|2009.10.16 16:29 수정|2009.10.16 16:29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을 위해 천안역 일대에 횡단보도가 설치될까?

천안역 동부광장 일대는 그동안 시민단체와 교통약자를 중심으로 횡단보도 설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역 지하상가의 지하도와 중복 문제, 주변 상권의 상반된 이해 등에 가로막혀 횡단보도 설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최근에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횡단보도가 없는 현실이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며 천안동남경찰서(서장 이종원)와 천안시(시장 성무용)에 횡단보도 설치를 권고한 것. 하지만 경찰과 시는 인권위 결정에 난색을 표명, 횡단보도 설치 권고가 이행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인권위, 1년 반 만에 천안역 횡단보도 설치 권고

▲ 지하도만 있고 횡단보도가 없는 천안역 동부광장 앞 도로를 시민들이 무단횡단하고 있다. ⓒ 윤평호



천안아산경실련(천안경실련)은 2008년 5월초 정병인 사무국장의 명의로 인권위에 천안역 주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촉구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서 접수에 따라 작년 11월에는 인권위 조사관이 직접 천안역 주변에서 전문가를 대동하고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이 자리에는 진정인인 정병인 천안경실련 사무국장을 비롯해 천안시와 경찰, 그리고 동남구청 관계자들도 동석했다.

그 뒤 인권위는 지난달 18일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 회의를 갖고 진정 건에 대해 결정문을 채택했다.

최근 인권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결정문에 따르면 인권위는 천안동남경찰서장에게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도로를 횡단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천안역 동부광장 맞은 편 공설시장과 명동거리 사이의 도로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천안시장에게는 횡단보도 설치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것을 권고했다.

횡단보도 설치의 타당성으로 인권위는 문제가 된 왕복 4차선의 도로는 지난 1987년과 1992년에 건설된 지하상가가 있으나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아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지하도를 이용한 도로횡단이 불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또한 횡단보도는 천안역 동부광장 앞 삼거리 가운데 지점으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1백10m, 남쪽 방향으로 1백30m, 동쪽 방향으로 3백m 지점에 설치돼 있어 천안역 삼거리 부근에서 공설시장 방향으로 도로를 횡단하는데 최소 5백m, 최대 9백m 이상을 우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회에 따른 소요시간은 짧게는 9분에서, 길게는 14분 정도로 비장애인이 지하보도를 통해 도로를 횡단하는 경우에 비해 10배에서 16배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도로를 횡단함에 비장애인에 비해 상당히 불리한 대우를 받아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정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결정문에서 인권위는 횡단보도 설치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천안시와 경찰의 주장도 반박했다. 인권위는 시내버스 정류장 이전이나 신호기 설치 등의 방법을 강구한다면 도로의 구조상 횡단보도 설치가 곤란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하상가의 민원 우려도 횡단보도 미설치의 합리적인 사유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시민단체·교통약자 '반색', 경찰·시 '난색'

▲ 천안역 지하상가 지하도의 모습. 경사가 가팔라 비장애인이 오르 내리기도 힘들다. ⓒ 윤평호



인권위의 횡단보도 설치 주문에 관계자들 반응은 엇갈렸다. 진정을 제기한 시민단체나 교통약자단체는 인권위 결정에 반색한 반면, 횡단보도 설치 권고의 이행 대상자로 지목된 천안동남경찰서와 천안시는 난색을 표명했다.

인권위 권고를 이끌어내는 토대를 제공한 정병인 천안경실련 사무국장은 "늦은 감은 있지만 기대했던 결과"라며 "천안시가 국제안전도시 인증을 획득하는 등 시민안전을 중시하는만큼 경찰과 협력해 하루빨리 인권위 권고 이행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본인이 휠체어 장애인으로 '천안시교통약자이동권확보를 위한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규씨는 "지하도를 이용 못해 불법으로 횡단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며 "인권위 결정이 천안지역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횡단보도 설치 권한은 관할 경찰서장에게 있다. 인권위가 횡단보도 설치 권고 1차 대상자로 동남경찰서장을 언급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동남서 경비교통과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에 따라 다음번 교통안전시설심의위원회에 관련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차례 현장을 살펴봤다는 이 관계자는 심의위 판단에 따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근의 기존 횡단보도 보행자가 많고 교통량 등을 감안할 때 횡단보도 신설이 부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횡단보도 설치시 행.재정 지원의 책임을 맡는 천안시도 인권위의 판단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시 교통과는 "횡단보도 설치 권한은 경찰의 몫"이라며 말을 아꼈다. 동남구청 관계자는 "올해와 내년에 (교통약자를 위해) 천안역 지하도의 시설 개선 계획은 없다"며 "동남구청 부지의 복합테마파크타운 조성사업이나 천안민자역사 건립시 시설개선을 연계할 것"이이라고 전했다.

주변 상인들의 반응은 처지에 따라 달랐다.

최남웅 명동패션상가상인회장은 "현재는 횡단보도가 없어 명동거리와 공설시장, 천안역 상권이 단절되고 있다"며 "명동거리와 공설시장을 잇는 횡단보도가 설치되면 상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창근 천안역지하상가상인회장은 "횡단보도 설치는 지하도 이용자 감소로 이어져 지하상가 상권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횡단보도 설치가 진행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천안역 횡단보도 설치 요구에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시와 경찰, 그리고 주변 상인들의 상반된 이해 등이 맞물려 인권위의 횡단보도 설치 권고는 그야말로 '종잇장 권고'에 그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46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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