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 똥꼬에 박힌 코 좀 빼줄래?"
알다가도 모를 여자, 아니 딸들의 마음
세상 사람들은 '딸 키우는 재미로 세월 가는 줄도 모른다'고 하지만, 딸을 둘이나 키우는 딸딸이 아빠인 나는 '두 딸이 싸우는 것 말리느라 세월 가는 줄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어릴 적부터 위로 큰형님, 아래로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온통 남자들만 있고 여자란 오직 어머니 밖에 없는 집안에서 자란 나는, 도통 여자의 심리에 대해서 알 수도 없었고 배울 수도 없었다.
또 내가 자라던 시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히 남자반과 여자반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나마 중학교만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진 아예 여학생 이라고는 등하교 때말곤 볼 수도 없었다. 오직 대학교에 들어가야만 그때서야 여학생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때였으니 당연히 여자들에 대해선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어도 풀어볼 대상인 여자가 없었다. 그저 여학생에 대한 상상의 나래만 펼쳐볼 뿐이었다.
이렇게 여자란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지의 상태로 자라면서 조금은 남아선호사상과 남존여비의 경향이 있던 집안의 분위기로 나는 결혼을 하면 부인이 자연히 아들만 주렁주렁 낳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철저히 믿고 있었다. 꿈에라도 혹시 딸을 낳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형님은 아들만 둘을 얻었는데 나는 딸만 둘 얻었다. 그것도 연년생으로 이후부터 나의 좌충우돌 황당한 두 딸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남아선호사상에 젖어있던 나, 두 딸을 키우다
우선 나는 그때 젖먹이였던 딸애의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주위 어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들과 딸을 키워보면 젖먹이 때부터 노는 것이 다르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내가 생각하기엔 하찮은 인형 정도인데도 그 인형을 실수로 밟거나 장난감통에 던져 넣으면 그 순간부터 딸애의 울음보가 터지는데, 꼭 그때 옆에 아무 상관없이 있던 또 다른 딸도 덩달아 우는 것이다. 어떻게 달래도 도무지 그치지 않는다. 정말 나도 함께 울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면 내 처가 와서 도끼눈 뜨고 "인형 건드렸지?" 하고는 언제 들고 왔는지 인형을 내 눈앞에 내보인다. 그리고는 두 딸애에게 다가가 인형을 다독여주면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방글방글 거리면서 웃는다. 순식간에 두 딸에게 몹쓸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 마누라에게 구박을 받아가며 어떻게, 어떻게 해서 두 딸이 젖을 떼고 기어 다니는가 싶더니, 이제는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딸애의 마음을 잘 모르겠는 것은 여전하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마누라는 딸애들의 마음을 딸들에게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척척 알아낸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아빠로서 딸들에게 좋은 아빠소리를 듣고 싶어 같이 열심히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이 꼭 끝에 가서는 두 딸들이 울음보를 터뜨리게 하고 만다. 예를 들면 난 단지 딸들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빙빙 돌려주면 너무 좋아하기에 좀 더 신나고 재미있으라고 조금 더 높이 올려서 아주 쬐금만 더 빨리 빙글빙글 돌려 준 것 뿐 인데 말이다. 그런데 마누라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오면서 "이 철없는 아빠야! 또 딸들을 울려!" 하고 빽하고 소리만 친다.
"에잇! 안 논다 안 놀아! 치사해서 내 두 번 다시 딸들이랑 노는가 봐라!"
일단 맞받아 소리는 쳐 보지만 한 시간도 안 되어 나는 슬금슬금 딸애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스스로 '난 속 좁은 남자가 아니다'고 핑계를 대본다. 마누라는 짐짓 못 본척하고는 뒤 돌아서 웃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스런 나의 두 딸들도 자라서 예쁜 아가씨가 되고 짝을 만나 아빠 곁을 훌쩍 떠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좌충우돌 아빠가 우리 두 딸의 사진이나 잘 정리했다가 남겨 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난 사진을 정리하였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 안면도에서 찍었던 사진을 우연히 쳐다보다가 그때 그 장면이 생각나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 아니 딸들의 마음...날 어떤 아빠로 기억해줄래?
사연은 이렇다.
야산 꼭대기에 있는 정자까지 걸어 올라오느라 힘들었는지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니깐 큰딸수정이가 갑자기 업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업어주었더니 둘째도 업어달란다. 어떻게 둘 을 업을 수 있느냐니깐 둘째 딸의 울음보가 막 터지려고 하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큰 딸은 목마를 태우고 둘째 딸은 업었다. 그런데 큰 딸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혜정이가 내 똥꼬에 코를 쑤서 박았어!"
곧이어 둘째 딸의 볼멘 목소리도 들려왔다.
"우욱! 냄새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누라가 좋은 생각을 내 놓았다. 둘째 딸은 앞으로 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겨우 두 딸의 요구를 모두 들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 딸이 걱정스레 묻는다.
"아빠, 괜찮아?"
"응, 괜찮아 아빠는 힘이 세단다."
"이야 아빠 최고다~!"
물론 속으론 목 아프고, 허리 끊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마누라가 전부 다 찍어 놓았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장난기가 발했다. 어렸을 적에 많이 해 보았던 사진이나 그림에 낙서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낙서를 해 보았다. 두 딸이 나중에 아빠가 쓴 낙서를 보면서 세상을 떠난 아빠를 한 번 더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어릴 적부터 위로 큰형님, 아래로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온통 남자들만 있고 여자란 오직 어머니 밖에 없는 집안에서 자란 나는, 도통 여자의 심리에 대해서 알 수도 없었고 배울 수도 없었다.
이렇게 여자란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지의 상태로 자라면서 조금은 남아선호사상과 남존여비의 경향이 있던 집안의 분위기로 나는 결혼을 하면 부인이 자연히 아들만 주렁주렁 낳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철저히 믿고 있었다. 꿈에라도 혹시 딸을 낳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형님은 아들만 둘을 얻었는데 나는 딸만 둘 얻었다. 그것도 연년생으로 이후부터 나의 좌충우돌 황당한 두 딸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남아선호사상에 젖어있던 나, 두 딸을 키우다
우선 나는 그때 젖먹이였던 딸애의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주위 어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들과 딸을 키워보면 젖먹이 때부터 노는 것이 다르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내가 생각하기엔 하찮은 인형 정도인데도 그 인형을 실수로 밟거나 장난감통에 던져 넣으면 그 순간부터 딸애의 울음보가 터지는데, 꼭 그때 옆에 아무 상관없이 있던 또 다른 딸도 덩달아 우는 것이다. 어떻게 달래도 도무지 그치지 않는다. 정말 나도 함께 울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면 내 처가 와서 도끼눈 뜨고 "인형 건드렸지?" 하고는 언제 들고 왔는지 인형을 내 눈앞에 내보인다. 그리고는 두 딸애에게 다가가 인형을 다독여주면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방글방글 거리면서 웃는다. 순식간에 두 딸에게 몹쓸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 마누라에게 구박을 받아가며 어떻게, 어떻게 해서 두 딸이 젖을 떼고 기어 다니는가 싶더니, 이제는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딸애의 마음을 잘 모르겠는 것은 여전하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마누라는 딸애들의 마음을 딸들에게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척척 알아낸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아빠로서 딸들에게 좋은 아빠소리를 듣고 싶어 같이 열심히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이 꼭 끝에 가서는 두 딸들이 울음보를 터뜨리게 하고 만다. 예를 들면 난 단지 딸들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빙빙 돌려주면 너무 좋아하기에 좀 더 신나고 재미있으라고 조금 더 높이 올려서 아주 쬐금만 더 빨리 빙글빙글 돌려 준 것 뿐 인데 말이다. 그런데 마누라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오면서 "이 철없는 아빠야! 또 딸들을 울려!" 하고 빽하고 소리만 친다.
"에잇! 안 논다 안 놀아! 치사해서 내 두 번 다시 딸들이랑 노는가 봐라!"
일단 맞받아 소리는 쳐 보지만 한 시간도 안 되어 나는 슬금슬금 딸애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스스로 '난 속 좁은 남자가 아니다'고 핑계를 대본다. 마누라는 짐짓 못 본척하고는 뒤 돌아서 웃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스런 나의 두 딸들도 자라서 예쁜 아가씨가 되고 짝을 만나 아빠 곁을 훌쩍 떠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좌충우돌 아빠가 우리 두 딸의 사진이나 잘 정리했다가 남겨 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난 사진을 정리하였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 안면도에서 찍었던 사진을 우연히 쳐다보다가 그때 그 장면이 생각나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 아니 딸들의 마음...날 어떤 아빠로 기억해줄래?
사연은 이렇다.
야산 꼭대기에 있는 정자까지 걸어 올라오느라 힘들었는지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니깐 큰딸수정이가 갑자기 업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업어주었더니 둘째도 업어달란다. 어떻게 둘 을 업을 수 있느냐니깐 둘째 딸의 울음보가 막 터지려고 하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큰 딸은 목마를 태우고 둘째 딸은 업었다. 그런데 큰 딸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혜정이가 내 똥꼬에 코를 쑤서 박았어!"
곧이어 둘째 딸의 볼멘 목소리도 들려왔다.
"우욱! 냄새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누라가 좋은 생각을 내 놓았다. 둘째 딸은 앞으로 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겨우 두 딸의 요구를 모두 들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 딸이 걱정스레 묻는다.
"아빠, 괜찮아?"
"응, 괜찮아 아빠는 힘이 세단다."
"이야 아빠 최고다~!"
물론 속으론 목 아프고, 허리 끊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마누라가 전부 다 찍어 놓았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장난기가 발했다. 어렸을 적에 많이 해 보았던 사진이나 그림에 낙서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낙서를 해 보았다. 두 딸이 나중에 아빠가 쓴 낙서를 보면서 세상을 떠난 아빠를 한 번 더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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