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85) 정도
[우리 말에 마음쓰기 779] '중간 정도 길이', '겨우 보일 정도' 다듬기
ㄱ. 중간 정도 길이
.. 어떤 크기든 상관이 없지만 중간 정도 길이로 하면 작업이 훨씬 더 번잡하고 곤란하다 .. 《호리 신이치로/김은산 옮김-키노쿠니 어린이 마을》(민들레,2001) 60쪽
"상관(相關)이 없지만"은 "괜찮지만"이나 "되지만"으로 다듬고, '작업(作業)이'는 '일이'나 '일하기가'로 다듬습니다. "번잡(煩雜)하고 곤란(困難)하다"는 "번거롭고 까다롭다"나 "번거롭고 힘들다"로 손질해 줍니다.
┌ 정도(正度)
│ (1) 바른 규칙
│ (2) 규칙을 바로잡음
├ 정도(正道) : 올바른 길. 또는 정당한 도리
├ 정도(正導) : 바른 인도(引導)
├ 정도(定度) : 이미 정하여진 제도나 법도
├ 정도(定都) : 도읍을 정함
├ 정도(定道)
│ (1) 자연적으로 정하여진 도리
│ (2) 이미 정하여져서 바꿀 수 없는
├ 정도(定賭) : 풍년이나 흉년에 관계없이 해마다 일정한 금액으로 정하여진
│ 소작료
├ 정도(征途)
│ (1) 정벌하러 가는 길
│ (2) 여행하는 길
├ 정도(政道) : 정치를 하는 방침
├ 정도(情到) : 애정이 깊음
├ 정도(程度)
│ (1) 사물의 성질이나 가치를 양부(良否), 우열 따위에서 본 분량이나 수준
│ - 정도의 차이 / 중학생이 풀 정도의 문제 / 목숨을 걸 정도의 깊은 사랑 /
│ 어느 정도 예상한 일 / 수해의 피해 정도 /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다
│ (2) 알맞은 한도
│ - 정도에 맞는 생활 / 정도를 넘는 호화 생활 / 정도를 벗어나다
│ (3)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그만큼가량의 분량
│ - 20리 정도의 거리 / 한 시간 정도의 시간 / 다섯 사람 정도 품을 사다 /
│ 오천 원 정도 필요하다 / 나이가 40세 정도이다
├ 정도(程道) = 노정(路程)
├ 정도(精到) : 매우 섬세하고 교묘한 경지에까지 이름
├ 정도(精度) = 정밀도
│
├ 중간 정도 길이로 하면
│→ 중간 길이로 하면
│→ 중간쯤 길이로 하면
│→ 길이를 중간쯤으로 하면
│→ 길이를 중간쯤 되게 하면
└ …
한자말 '정도'를 모두 열네 가지 낱말 올려놓은 국어사전입니다. 이렇게나 많은 '정도'가 있었나 싶어 놀랍니다. 낱말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올바른 규칙이나 올바른 길을 가리킨다는 '정도(正度/正道)'부터, 서울을 잡는다고 하는 '정도(定都)'나, 여행하는 길이나 정벌하러 가는 길이라는 '정도(征途)'에, 애정이 깊다는 '정도(情到)' 들은 얼마나 쓰일 만한지 궁금합니다. 아니, 굳이 이런 말마디를 한자에 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른길'이라 해도 되고 '바른규칙'이라 해도 되며 '깊은사랑'이라 하면 됩니다. '나들이길/여행길'이나 '정벌길'이라 해도 될 테지요.
'정밀도'를 줄여서 구태여 '정도(精度)'로 적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한 글자를 줄인다고 해서 더 낫거나 좋지 않습니다. 정밀도는 그저 '정밀도'일 뿐입니다. '노정(路程)'을 가리킨다는 '정도(程道)' 같은 낱말을 쓰는 사람은 몇이나 꼽을 수 있을까요.
'政道'라야 정치를 잘한다거나 정치를 슬기롭게 펼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정치길'이라 해도 되고, 정치를 바르게 하고프다면 '바른정치'나 '옳은정치'라 하면 됩니다. 예전에 "定都 500년"이라 하면서, 이 나라에서 서울특별시를 서울로 삼은 일을 기린 적이 있는데, 그냥 "서울 500년"이나 "서울 500해"이나 "서울 500돌"이라 하면 넉넉합니다.
┌ 정도의 차이야 → 크기가 달라 / 한 일이 달라 / 느낌이 달라 / 그릇이 달라
├ 중학생이 풀 정도의 문제 → 중학생이 풀 만한 문제
├ 목숨을 걸 정도의 깊은 사랑 →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사랑
├ 어느 정도 예상한 일 → 어느 만큼 내다본 일 / 얼추 생각한 일
├ 수해의 피해 정도 → 물난리 겪은 크기
└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다 → 소문이 나돌았을 만큼이다
열네 가지 한자말 '정도' 가운데 우리한테 쓸 만하거나 쓰고 있는 낱말은 오로지 하나, '정도(程度)'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낱말은 퍽 널리 쓰고 있습니다. 한자말 '정도(程度)'를 쓰는 자리는 예부터 '만큼'이나 '만한'을 으레 쓰고 있었으나, 오늘날 '만큼'이나 '만한'을 알맞게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냥저냥 '정도'라고만 이야기합니다. "너와 그 사람은 정도가 달라" 하는 자리에도 손쉽게 '정도'를 넣는데, 때와 곳과 흐름에 걸맞게 넣어야 할 말을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습니다. 콕콕 집어서 알맞춤하게 말하던 우리 문화가 어느새 옅어지거나 사라집니다.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사랑"이라거나 "목숨을 걸도록 깊은 사랑"이라거나 "목숨을 거는 깊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눈에 뜨이게 줄어듭니다. "어느 만큼 내다본 일"이라거나 "얼추 생각한 일"이라거나 "웬만큼 헤아린 일"이라거나 "제법 어림한 일"이라고 말하는 분들은 쉬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정도에 맞는 생활 → 주제에 맞는 삶
├ 정도를 넘는 호화 생활 → 주제를 넘는 호화 생활 / 지나치게 헤픈 삶
└ 정도를 벗어나다 → 주제를 벗어나다 / 제길을 벗어나다
그리고, '주제꼴'을 뜻하는 '주제'를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들 또한 나날이 사라집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주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텐데, 참말로 우리는 우리 말이고 생각이고 넋이고 마음이고 삶이고 슬기고 뜻이고를 찾지 않습니다. 우리 주제를 우리 스스로 내팽개칩니다.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우리 얼굴을 꾸밈없이 살피지 못하며, 우리 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20리 정도의 거리 → 20리쯤 되는 거리 / 20리 남짓한 길
├ 한 시간 정도의 시간 → 한 시간 남짓한 시간 / 한 시간 즈음
├ 오천 원 정도 필요하다 → 오천 원쯤 있어야 한다 / 오천 원쯤 든다
└ 나이가 40세 정도이다 → 나이가 마흔 안팎이다 / 나이가 마흔쯤 된다
한자말이든 아니든 쓸 만한 말은 써야 합니다. 미국말이든 아니든 쓸모있는 말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쓸 만하지 않은 말을 억지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쓸모없는 말을 끝없이 받아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생각을 키우고, 우리 삶을 북돋우며, 우리 넋을 보듬고, 우리 사랑과 믿음을 얼싸안는 말마디와 글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내남없이 오붓하게 주고받을 말마디를 찾고, 허물없이 오순도순 함께 나눌 글줄을 찾아야 합니다.
ㄴ. 겨우 보일 정도다
.. 이 식물도 꽃을 피우기는 하는데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보일 정도다 .. 《조안 말루프/주혜명 옮김-나무를 안아 보았나요》(아르고스,2005) 52쪽
'식물(植物)'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풀'이나 '푸나무'로 다듬어도 됩니다. 글흐름을 살피면서 '들풀'이라든지 '작은 풀'이라고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 겨우 보일 정도다
│
│→ 겨우 보일 만하다
│→ 겨우 보일까 하다
│→ 겨우 보일까 말까 한다
│→ 겨우 보일락 말락이다
│→ 겨우 보인다
└ …
여러모로 말끝을 달리하면서 느낌을 조금씩 달리하는 우리네 말씀씀이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 말이요, 토씨와 말끝이 저마다 다른 우리 말입니다. 말끝 하나로 사람을 웃기거나 울리고, 말씨 하나로 서로한테 기쁨이나 슬픔을 베풉니다. 말 한 마디 잘 가누면서 나와 내 둘레 사람 모두를 흐뭇하게 이끕니다. 글 한 줄 잘못 다스리면서 나와 내 둘레 사람 모두를 고달프게 하거나 힘겹게 합니다.
말이란 하기 나름이고 글이란 쓰기 나름입니다. 말이란 생각하기 나름이고 글이란 헤아리기 나름입니다. 깊이 살피고 돌아보는 가운데 알맞고 싱그러운 말마디를 일굽니다. 널리 알아보고 톺아보는 동안 살갑고 따스한 글줄을 가꿉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나없이 먹고살기에 빠듯하고 하루하루 끄달리며 한결같이 어수선합니다만, 조금 더 마음을 쏟으면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어제에 이어 앞날을 살아갈 우리들은 누구나 힘겹고 고난한 나날이라지만, 가끔은 다리쉼을 하고 머리쉼도 하면서 내 삶과 이웃 삶을 따스하게 껴안는 몸짓을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마음이 먼저 넉넉해야 삶을 넉넉하게 가꿀 수 있고, 삶을 넉넉하게 가꿀 수 있어야 내 입에서 튀어나오고 내 손에서 적히는 말과 글이 넉넉합니다. 가슴이 먼저 푸근해야 삶을 푸근하게 꾸릴 수 있고, 삶을 푸근하게 꾸릴 수 있어야 우리가 내놓고 나누는 말과 글이 푸근하게 이어가면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을 들여다봐야 한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 아니면 볼 수 없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을 써야 한다
└ …
한자말 '정도'를 쓰고 싶은 마음이라면 그대로 쓸 노릇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왜 이 한자말에만 그리 매달리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 이 한자말 한 마디를 쓰는 동안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은 말투는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못 보고 못 느끼며 못 가꾸고 있는 우리 말과 글을 다문 한 해에 하루쯤이라도 느끼거나 깨달으며 달라질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 어떤 크기든 상관이 없지만 중간 정도 길이로 하면 작업이 훨씬 더 번잡하고 곤란하다 .. 《호리 신이치로/김은산 옮김-키노쿠니 어린이 마을》(민들레,2001) 60쪽
┌ 정도(正度)
│ (1) 바른 규칙
│ (2) 규칙을 바로잡음
├ 정도(正道) : 올바른 길. 또는 정당한 도리
├ 정도(正導) : 바른 인도(引導)
├ 정도(定度) : 이미 정하여진 제도나 법도
├ 정도(定都) : 도읍을 정함
├ 정도(定道)
│ (1) 자연적으로 정하여진 도리
│ (2) 이미 정하여져서 바꿀 수 없는
├ 정도(定賭) : 풍년이나 흉년에 관계없이 해마다 일정한 금액으로 정하여진
│ 소작료
├ 정도(征途)
│ (1) 정벌하러 가는 길
│ (2) 여행하는 길
├ 정도(政道) : 정치를 하는 방침
├ 정도(情到) : 애정이 깊음
├ 정도(程度)
│ (1) 사물의 성질이나 가치를 양부(良否), 우열 따위에서 본 분량이나 수준
│ - 정도의 차이 / 중학생이 풀 정도의 문제 / 목숨을 걸 정도의 깊은 사랑 /
│ 어느 정도 예상한 일 / 수해의 피해 정도 /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다
│ (2) 알맞은 한도
│ - 정도에 맞는 생활 / 정도를 넘는 호화 생활 / 정도를 벗어나다
│ (3)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그만큼가량의 분량
│ - 20리 정도의 거리 / 한 시간 정도의 시간 / 다섯 사람 정도 품을 사다 /
│ 오천 원 정도 필요하다 / 나이가 40세 정도이다
├ 정도(程道) = 노정(路程)
├ 정도(精到) : 매우 섬세하고 교묘한 경지에까지 이름
├ 정도(精度) = 정밀도
│
├ 중간 정도 길이로 하면
│→ 중간 길이로 하면
│→ 중간쯤 길이로 하면
│→ 길이를 중간쯤으로 하면
│→ 길이를 중간쯤 되게 하면
└ …
한자말 '정도'를 모두 열네 가지 낱말 올려놓은 국어사전입니다. 이렇게나 많은 '정도'가 있었나 싶어 놀랍니다. 낱말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올바른 규칙이나 올바른 길을 가리킨다는 '정도(正度/正道)'부터, 서울을 잡는다고 하는 '정도(定都)'나, 여행하는 길이나 정벌하러 가는 길이라는 '정도(征途)'에, 애정이 깊다는 '정도(情到)' 들은 얼마나 쓰일 만한지 궁금합니다. 아니, 굳이 이런 말마디를 한자에 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른길'이라 해도 되고 '바른규칙'이라 해도 되며 '깊은사랑'이라 하면 됩니다. '나들이길/여행길'이나 '정벌길'이라 해도 될 테지요.
'정밀도'를 줄여서 구태여 '정도(精度)'로 적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한 글자를 줄인다고 해서 더 낫거나 좋지 않습니다. 정밀도는 그저 '정밀도'일 뿐입니다. '노정(路程)'을 가리킨다는 '정도(程道)' 같은 낱말을 쓰는 사람은 몇이나 꼽을 수 있을까요.
'政道'라야 정치를 잘한다거나 정치를 슬기롭게 펼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정치길'이라 해도 되고, 정치를 바르게 하고프다면 '바른정치'나 '옳은정치'라 하면 됩니다. 예전에 "定都 500년"이라 하면서, 이 나라에서 서울특별시를 서울로 삼은 일을 기린 적이 있는데, 그냥 "서울 500년"이나 "서울 500해"이나 "서울 500돌"이라 하면 넉넉합니다.
┌ 정도의 차이야 → 크기가 달라 / 한 일이 달라 / 느낌이 달라 / 그릇이 달라
├ 중학생이 풀 정도의 문제 → 중학생이 풀 만한 문제
├ 목숨을 걸 정도의 깊은 사랑 →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사랑
├ 어느 정도 예상한 일 → 어느 만큼 내다본 일 / 얼추 생각한 일
├ 수해의 피해 정도 → 물난리 겪은 크기
└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다 → 소문이 나돌았을 만큼이다
열네 가지 한자말 '정도' 가운데 우리한테 쓸 만하거나 쓰고 있는 낱말은 오로지 하나, '정도(程度)'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낱말은 퍽 널리 쓰고 있습니다. 한자말 '정도(程度)'를 쓰는 자리는 예부터 '만큼'이나 '만한'을 으레 쓰고 있었으나, 오늘날 '만큼'이나 '만한'을 알맞게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냥저냥 '정도'라고만 이야기합니다. "너와 그 사람은 정도가 달라" 하는 자리에도 손쉽게 '정도'를 넣는데, 때와 곳과 흐름에 걸맞게 넣어야 할 말을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습니다. 콕콕 집어서 알맞춤하게 말하던 우리 문화가 어느새 옅어지거나 사라집니다.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사랑"이라거나 "목숨을 걸도록 깊은 사랑"이라거나 "목숨을 거는 깊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눈에 뜨이게 줄어듭니다. "어느 만큼 내다본 일"이라거나 "얼추 생각한 일"이라거나 "웬만큼 헤아린 일"이라거나 "제법 어림한 일"이라고 말하는 분들은 쉬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정도에 맞는 생활 → 주제에 맞는 삶
├ 정도를 넘는 호화 생활 → 주제를 넘는 호화 생활 / 지나치게 헤픈 삶
└ 정도를 벗어나다 → 주제를 벗어나다 / 제길을 벗어나다
그리고, '주제꼴'을 뜻하는 '주제'를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들 또한 나날이 사라집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주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텐데, 참말로 우리는 우리 말이고 생각이고 넋이고 마음이고 삶이고 슬기고 뜻이고를 찾지 않습니다. 우리 주제를 우리 스스로 내팽개칩니다.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우리 얼굴을 꾸밈없이 살피지 못하며, 우리 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20리 정도의 거리 → 20리쯤 되는 거리 / 20리 남짓한 길
├ 한 시간 정도의 시간 → 한 시간 남짓한 시간 / 한 시간 즈음
├ 오천 원 정도 필요하다 → 오천 원쯤 있어야 한다 / 오천 원쯤 든다
└ 나이가 40세 정도이다 → 나이가 마흔 안팎이다 / 나이가 마흔쯤 된다
한자말이든 아니든 쓸 만한 말은 써야 합니다. 미국말이든 아니든 쓸모있는 말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쓸 만하지 않은 말을 억지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쓸모없는 말을 끝없이 받아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생각을 키우고, 우리 삶을 북돋우며, 우리 넋을 보듬고, 우리 사랑과 믿음을 얼싸안는 말마디와 글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내남없이 오붓하게 주고받을 말마디를 찾고, 허물없이 오순도순 함께 나눌 글줄을 찾아야 합니다.
ㄴ. 겨우 보일 정도다
.. 이 식물도 꽃을 피우기는 하는데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보일 정도다 .. 《조안 말루프/주혜명 옮김-나무를 안아 보았나요》(아르고스,2005) 52쪽
'식물(植物)'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풀'이나 '푸나무'로 다듬어도 됩니다. 글흐름을 살피면서 '들풀'이라든지 '작은 풀'이라고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 겨우 보일 정도다
│
│→ 겨우 보일 만하다
│→ 겨우 보일까 하다
│→ 겨우 보일까 말까 한다
│→ 겨우 보일락 말락이다
│→ 겨우 보인다
└ …
여러모로 말끝을 달리하면서 느낌을 조금씩 달리하는 우리네 말씀씀이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 말이요, 토씨와 말끝이 저마다 다른 우리 말입니다. 말끝 하나로 사람을 웃기거나 울리고, 말씨 하나로 서로한테 기쁨이나 슬픔을 베풉니다. 말 한 마디 잘 가누면서 나와 내 둘레 사람 모두를 흐뭇하게 이끕니다. 글 한 줄 잘못 다스리면서 나와 내 둘레 사람 모두를 고달프게 하거나 힘겹게 합니다.
말이란 하기 나름이고 글이란 쓰기 나름입니다. 말이란 생각하기 나름이고 글이란 헤아리기 나름입니다. 깊이 살피고 돌아보는 가운데 알맞고 싱그러운 말마디를 일굽니다. 널리 알아보고 톺아보는 동안 살갑고 따스한 글줄을 가꿉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나없이 먹고살기에 빠듯하고 하루하루 끄달리며 한결같이 어수선합니다만, 조금 더 마음을 쏟으면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어제에 이어 앞날을 살아갈 우리들은 누구나 힘겹고 고난한 나날이라지만, 가끔은 다리쉼을 하고 머리쉼도 하면서 내 삶과 이웃 삶을 따스하게 껴안는 몸짓을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마음이 먼저 넉넉해야 삶을 넉넉하게 가꿀 수 있고, 삶을 넉넉하게 가꿀 수 있어야 내 입에서 튀어나오고 내 손에서 적히는 말과 글이 넉넉합니다. 가슴이 먼저 푸근해야 삶을 푸근하게 꾸릴 수 있고, 삶을 푸근하게 꾸릴 수 있어야 우리가 내놓고 나누는 말과 글이 푸근하게 이어가면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을 들여다봐야 한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 아니면 볼 수 없다
├ 너무 작아서 현미경을 써야 한다
└ …
한자말 '정도'를 쓰고 싶은 마음이라면 그대로 쓸 노릇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왜 이 한자말에만 그리 매달리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 이 한자말 한 마디를 쓰는 동안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은 말투는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못 보고 못 느끼며 못 가꾸고 있는 우리 말과 글을 다문 한 해에 하루쯤이라도 느끼거나 깨달으며 달라질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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