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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둥거리는 문어 ... 물고기 경매장에 가다

바다가 있기에 더욱 그리운 마음의 고향 '녹동'

등록|2009.10.22 14:26 수정|2009.10.22 14:43

공판장녹동수협공판장에서는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2시에 자연산 물고기 경매를 시작한다 ⓒ 윤병하


웅성거림.

주저 없이 내미는 손에는 알듯 말듯한 숫자들이 적혀 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물이 질질 흘러내리는 바구니를 끌고 나온다. 주변을 들러보더니 엇비슷해 보이는 중년 아저씨를 향해 바구니를 던지다시피 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또 뭔가를 적는다. 조그마한 수첩 표지면을 옷깃으로 감추고 분필로 재빠르게 글씨를 쓰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표면에 쓴 글씨를 높이 쳐들고 마이크를 향한다. 귀청이 울렁거린다. 마이크에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비음이 쉼 없이 흘러나온다.

혼란스러워 보이면서도 그들의 동작은 재빠르고 질서정연하다. 녹동수협공판장에서 펼쳐진 경매 모습이다. 경매장을 빠져나온 문어가 궁상스런 표정으로 흐늘거린다. 연이어 경매에 올라온 문어가 심하게 요동치며 바구니를 타고 넘는다.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바구니를 한 바퀴 돈다. 능숙한 손놀림은 하나의 예술이다. 바구니를 흔들더니 이번에는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문어가 기절한 걸까(?) 숨 고를 사이도 없이 비닐봉지에 담겨진 문어는 얼음과 함께 스티로폼 상자에서 침묵이다.

경매를 기다린 뒤엉킨 문어들생존을 위한 문어들의 뒤엉킨 몸부림. 때론 보는 이를 아찔하게 한다. ⓒ 윤병하


경매를 기다리는 바다장어이곳에서 경매되는 장어는 연안에서 자란 자연산 장어라고 자랑한다 ⓒ 윤병하


연거푸 찍는 사진이 못마땅한지 아주머니 곁눈질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도 눈치껏 셔터를 누른다. 아무리 봐도 흥미롭다. 한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얼마에 샀느냐고 묻자 "별 놈 다 있네"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편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7만원이란다. 다시 물었다. "얼마라구요?" "7만원." 딱 부러진 목소리가 소음 속에서도 높은 옥타브다. 정말 싸다는 생각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정도 돈은 있는 것 같다. 30여 명이 먹어도 넉넉한 양이다.

사고 싶은 충동을 잠시 접고 바로 옆 경매장으로 향했다. 웅성거림은 마찬가지. 그러나 나오는 물고기는 다르다. 장어와 돔, 숭어 등이 연이어 경매에 나선다. 검은색 힘이 센 장어는 바구니를 돌며 도망갈 태세가 역력하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노련한 경매인들의 손놀림이 그보다 앞선다.

돔은 낚시꾼들이 가장 손맛을 보고 싶어하는 특급 어종. 그런데 바로 그 놈이 눈앞에서 날 잡아 보란 듯이 몸을 뒤척이며 위용을 드러낸다. 좁은 듯 입을 쩍쩍 벌리며 힘찬 몸부림을 할 때마다 물이 찬 바구니 주변은 물바다.

낚시를 다닐 때 이야기다. 이이들 앞에서는 항상 아빠는 굉장한 어부다. 낚시를 갈 때마다 꼭 잡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반은 거짓말이다. 한 마리도 낚지 못한 날이면 그 다음 코스는 어판장. 어쨌든 큰소리치며 집에 들어갔던 옛 일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낚시꾼들의 꿈 - 돔이다힘찬 손맛이 일품인 돔. 그러나 경매에 나온 돔은 작은 바구니 안에서 물장구만 칠 뿐이다. ⓒ 윤병하


경매를 마친 돔의 행방은?경매를 마치자 성급한 손님들이 바로 앞 가게에서 바둥거리는 물고기로 회를 떠가고 ... ⓒ 윤병하


친구가 횟집 앞에서 부른다. 녹동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생인 연숙이다. 그녀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모처럼 찾아온 친구를 위해 이미 값을 지불하고 내 몫을 따로 얼음상자에 포장 중이다. 항상 미안한 친구.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점심이나마 내가 사고 싶었는데. 또 다시 짐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에 머쓱해서 형님 안부만 묻는다.

언젠가 8.15 연휴에 맞춰 찾아간 가족 여행. 녹동항에서 푸른 바다를 가르며 떠나는 제주도 여행은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고는 바로 그 순간. 들어가는 배편이 별로 복잡하지 않아 돌아올 때도 쉽게 배편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한 안일함이 발단. 돌아올 길이 막막했다. 왕복표 예매를 간과한 값은 우리 가족을 순식간에 혼돈으로 몰고 갔다.

방법은 없다. 대기자도 만만찮다. 친구에게 걸어본 전화. 자기 부부도 지금 제주도에 여행 중이란다. 그리고 같은 배로 나갈 예정이라 했다. 구세주였지만 딱히 당장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친구 남편(지금은 존경하는 형님)의 도움으로 함께 귀향한 야밤의 바다 뱃머리에서 나누던 보름달 풍경과 맥주 한 잔. 영원히 그림 같은 추억이다. 

그런 친구에게 매번 신세를 진다. 얼마 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나왔을 때에도 기꺼이 반겨주었던 친구들 사이에 동참한 여장부 친구. 그래서 항상 고마워했는데 또 다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녹동항출항을 기다리는 작은 어선들이 잔잔한 파도에 출렁거리며 망중한을 즐기는 걸까? 주인들은 모두 공판장의 경매에 나선 듯 배들만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 ⓒ 윤병하


우리의 어머니경매를 마친 고기를 받아 길거리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려 보지만 한참을 지나도 사람들의 발길이 없자 고기를 자주 뒤적거리고 ... ⓒ 윤병하


지금 그곳 형님께서는 건강이 완전치 못하다.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리라 서로들 이야기한다. 진심으로 회복된 형님의 모습을 보고 싶다. 중병을 이겨낸 겸손함으로 다시 한 번 제주도에 함께 가고 싶다. 하나님 앞에 손을 모은다. 기도에 응답받지 못함은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미안한 친구. 그러나 친구가 고맙고 착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도 그 손을 잡아 주리라 소망을 갖는다. 녹동항이여! 항상 친구를 위하여 활기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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