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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정이 배추'와 맞짱 뜬 지 4년, 희망이 보인다

[체험기] 초국적 종자업체에 도전장을 내다

등록|2009.10.22 09:49 수정|2009.10.22 11:40

▲ 5년째 쭉정이 배추 씨앗으로 모종을 키워 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 송성영


아내 말대로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참 어리석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고 매년 수백 포기 배추 농사를 짓고 있지만 김장철이 돌아오면 꼬박꼬박 농약 친 배추를 사다가 담그고 있습니다. 그게 뭔 소리냐구요?  우리 배추 밭에서는 5년 전부터 무도 배추도 아닌 요상한 것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그동안 아내의 불만은 불 보듯 빤한 게 아니겠습니까?

"김장도 할 수 없는 배추를 뭐 하러 죽어라 심고 있어. 속도 안 차는데."
"기다려 보라고 언젠가는 꼬갱이 실한 녀석들이 나올 테니께."
"어이그 참내, 그 놈의 고집은. 그런다고 그런 실한 배추가 나오겠어?"
"안 나오면 무슨 방법이 있겠지."

무도 배추도 아니게 생긴 요상한 것은 분명 배추입니다. 씨앗이 분명히 배추씨앗이니까요. 그런데 왜냐구요? 5년 전부터 종묘상에서 구입한 배추씨를 대대로 받아 수백 포기를 심고 있는데 노란 고갱이가 들어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년 김장은 물 건너 간 것이지요. 그 녀석이 어떻게 생겼냐? 미친 여자 바람에 휘날리는 치맛자락처럼 푸른 잎이 너덜너덜한 '쭉정이 배추'입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뭔가 제대로 된 녀석들이 나오겠지 기대했지만 올해도 여전히 배추밭은 김장용으로는 자격 미달인 쭉정이 배추들로 수두룩합니다. 몬산토와 같은 거대 종자업체들이 씨앗을 조작했기 때문입니다. 몬산토는 한번 파종해 재배한 작물로는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씨 말리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 몇 포기의 배추에서 나온 씨앗들. 배추 씨는 다른 씨앗에 비해 비싼 편입니다. 이 만큼을 종묘상에서 구입하면 이 삼십만원 어치가 넘을 것입니다. ⓒ 송성영


한마디로 말하자면 씨앗을 받아쓰지 말고 꼬박꼬박 사서 쓰라는 것입니다. 야금야금 농민들 등골 파먹는 종자값 올려가면서 말입니다. 배추씨는 다른 씨앗에 비해 그 가격이 아주 비싼 편입니다. 돈으로 따지면 단 몇 포기의 배추에서 20만~30만 원 어치 이상의 씨앗을 받아 낼 수 있는데 그들이 그것을 허락하겠습니까? 한 번 심고 나면 더 이상 배추로서의 상품성이 없는 쭉정이 배추가 나오도록 조작한 것이지요. 그들은 그렇게 생명을 난도질한 대가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괴물같은 존재들이지요.

홍농종묘를 비롯한 한국 종자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했던 종묘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이런 살벌한 몬산토 같은 초국적 기업에 합병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세계 최대의 종자업체 몬산토도 국내에 세미니스코리아를 두고 있으며 국내 종자시장의 20%를 점하고 있다. 몬산토는 2007년 종자부문에서만 49억64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거대 자본이다. 업계는 신젠타 종묘 등 다른 외국계 업체까지 포함해 외국 종자업체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장광순 기자의 '몬산토·신젠타 등 국내 종자시장 40% 이상 잠식' - 경향닷컴 2009-04-16 입력 기사 중에서)

종자와 농약, 살충제를 판매하는 거대 농업기업인 신젠타라는 괴물은 특정 농약을 쓰지 않으면 작물 싹이 트지 않도록 하는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다 합니다. 이런 농작물을 섭취하고 있다는 게 소름이 돋지 않습니까?

우리 밭에서 재배하는 농작물 중에는 과학 공상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무시무시한 기업들이 만들어낸 작물들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땀 흘려 농사 지어 결국은 이런 추악한 기업들의 배때기를 채워 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생명을 난도질하는 잔혹한 그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하여 배추 씨앗은 물론이고 상추, 무, 시금치, 쑥갓, 수세미, 오이 심지어는 케일 씨앗 등등에 이르기까지 밭농사를 통해 수확할 수 있는 온갖 씨앗들은 직접 받아쓰고 있습니다.

▲ 마곡사 스님들이 대대로 재배해 왔다는 토종 오이씨를 구해 10년 가까이 받아 쓰고 있습니다. ⓒ 송성영


▲ 도라지 씨앗 ⓒ 송성영


무, 시금치, 오이, 수세미, 상추 등은 대대로 씨앗을 받아쓰고 있다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산 것이었기에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지만 우리 식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배추는 끊임없이 쭉정이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김장철만 돌아오면 아내에게 된통 구박을 당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백전백패였습니다. 그 씨앗을 받아 수백 포기 모종을 만들어 재배해 왔지만 김장을 제대로 담가 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매년 쭉정이 배추 밭에서 그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한두 번 겪게 되면 이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지난해에는 닭 사료용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워 쭉정이 배추들을 줄줄이 엮어 처마 끝에 매달았습니다. 보통 배추 잎보다는 뻣뻣하고 무청보다는 부드러운 속성을 지닌 쭉정이 배추이기에 잘 말려 씨래기용으로 쓰기로 했던 것입니다.

▲ 김장을 담글 수 없는 쭉정이 배추. 처마 끝에 매달아 씨래기를 만들었습니다. ⓒ 송성영


주변 사람들을 죄 불러 모아 사랑방 아궁이 가마솥 처마 끝에 적당히 말린 쭉정이배추 씨래기를 팍팍 넣고 뼈다귀 탕을 끓여 내놓았더니 다들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씨래기 국밥 장사해도 되겠는데요."
"인효 엄마, 우리 이사 가면 이거 많이 많이 재배해서 씨래기 국밥 장사 할까?"
"좋지. 어쩐 일여? 장사를 다 하자고 하게."

돈벌이를 적게 하고 사는 것을 무슨 낙으로 삼고 있는 인간 쪼가리가 돈 되는 국밥 장사를 하자니까 아내가 대번에 반겼습니다. 김장 김치도 담그지 못하는 쭉정이 배추를 고집해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좀더 궁리해 보면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올해는 그 쭉정이 배추씨앗을 상추씨처럼 밭에 줄줄이 뿌려 놓고 그걸 솎아 쌈용으로 쓰고 겉절이도 해먹었습니다. 종묘상에서 구입한 씨앗으로 그렇게 한다면 종자 값이 꽤 많이 들어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직접 씨앗을 받아 쓰기에 돈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뿌릴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잘만 하면 '괴물 업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농가 소득에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배때기를 채우는 저들과 무모한 맞짱을 뜬 지 4년 만에 실낱 같은 희망이 보였습니다.

올 봄에도 씨앗을 받았습니다. 5대째 키운 배추에서 씨를 받고, 무씨를 받았습니다. 제 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케일씨는 밭 한 편에서 싹을 트워 큼직하게 자라기도 했습니다. 이번 가을에도 씨를 받았습니다. 도라지씨를 받고 오이씨며 수세미씨도 받아 놓았습니다. 내년 여름, 새 터로 이사 갈 때 우리 식구와 함께 떠날 씨앗들입니다. 씨알머리 있는 녀석들입니다. 내년 봄이 돌아오면 역시 6대째 배추 씨앗을 받아 놓을 것입니다. 그 녀석들도 데리고 갈 것입니다.

▲ 아내가 만들어준 주머니에 씨앗을 보관해 두고 있습니다. ⓒ 송성영


조작된 씨앗들로 자란 배추들은 분명 화려해 보이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이지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합니다. 그 모습은 거기서 끝입니다. 본래의 생명력이 더 이상 연장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그러하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인간사에 눈을 돌리다 보니 조작된 씨앗으로 재배한 배추는 어딘가 모르게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 정책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은 어린 씨앗들을 생명력 있게 키우는 일입니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생명력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중 고등학생들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의 어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박 터지게 경쟁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 본래의 생명력을 죽이고 경쟁력 있는 어른, 상품성 있는 어른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추악한 종자 업자들이 씨앗을 조작하여 경쟁력 있고 상품성 있는 배추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경쟁을 위한 교육에는 사랑과 평화가 없습니다. 생명력이 없는 씨알머리 없는 교육입니다. 한번 자라고 나면 더 이상 생명력이 없게 되는 조작된 배추씨앗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끔찍한 일입니다.

씨알머리 없는 무한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짓밟아가며 용케 살아남은 자들은 온갖 뇌물을 받아 편법으로 재산 늘려가며 뻔뻔한 낯짝 내밀고 씨알머리 없는 대통령, 총리, 장관도 해먹겠지요. 자신들을 닮은 씨알머리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겠지요. 끔찍한 일입니다.

씨알머리 없는 놈들은 생명의 큰 틀에서 놓고 보면 조작된 씨앗으로 겉만 뻔지르르한 씨알머리 없는 배추와 다를 바 없습니다. 쭉정이 배추보다도 못한 존재들입니다. 쭉정이 배추는 자손대대로 쌈이 되고 겉절이가 되고 또 씨래기가 되어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국 한 그릇이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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