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그랜드 바겐' 제의에 대한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커트 캠벨의 '모르겠다'는 발언과 이 대통령의 '아무개가 모른다 한들 어떠하리' 받아치기 이후, 확실히 한미동맹이 이상하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방관이 10월 22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참석차 방한하는 길에도 적지 않은 삐걱거림이 들려온다.
"오바마 정부 중하위급 관리자들, MB정부와 일하는 것에 불편함 느끼고 있다"
게이츠 장관을 수행 중인 고위급 인사가 '북한의 대외정책은 자주 크게 바뀌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슬쩍 거론한 남북정상회담 문제가 소동의 빌미가 되었다. 얼마 전 주미한국대사관 국정감사차 워싱턴을 방문한 어느 여권 국회의원은 오바마 정부에서 한국업무를 담당하는 중하위급 관리들이 최근 한미관계, 특히 이명박 정부와 일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실제는 이것보다 더 강한 톤인데 필자는 전해들은 것이라서 이 정도로 완화해서 표현했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참여정부 시절 한미관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나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보겠다.
최근 들어 참여정부 시절 한미관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쁘지 좋았다는 평가가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동맹정책과 안보정책을 설명하는 어조(tone)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내용(substance)은 진취적이고 바람직했으며 진정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식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관계 추진 방향은 다음과 같다. (1) 한미동맹을 미국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해가면서도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의 역할과 지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추구해 할 방향이었다. (2) 최전방에 주둔하고 있는 미2사단과 서울 도심에 자리 잡은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며, 앞으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이 행사한다. 마치 뭔가 누리던 것을 뺏기는 기분이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3) 능동적으로 미래지향적 군구조 개편을 추진하며, 기동성과 정보력을 신장시키고 주변국의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는 핵심전력을 구비한다. 국방예산만큼은 적극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해 애를 썼다. (4)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은 병행해서 추진함으로써, 한반도 사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발언권과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했다. (5) 이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로부터의 강한 비판을 무릅쓰고 이라크에 2차례에 걸쳐 파병을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정책에 대해 워싱턴의 느낌은 정확히 그 반대이다. 2008년 봄 이명박 정부가 전략동맹을 들고 나왔을 때 미국에서는 두 가지 의문을 가졌다. 한미양국이 전략적 수준에서 국제안보사안을 함께 관리하고 다룰 만한 단계에 온 것은 아닌데 전략동맹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두번째는 만약 한미동맹이 서로 절실히 협력해야 할 당면 현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지 못한다면 전략동맹이라는 표현은 곧 한미동맹을 전략적으로 그때그때 활용한다는 뜻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한미동맹을 안보정책의 중심에 놓겠다고 하니 미국으로서는 나쁠 게 없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주요 안보사안을 놓고 양국 정부 사이에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없다. 이것이 워싱턴 현지에서 서서히 일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한미 전략동맹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래서 다시 첫 번째 의문으로 돌아간다. 전략동맹이라고 하는데, 아프간전에 파병을 할 것인가? 그리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능동적으로 미국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이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내 전문가 "아프간문제,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계 가늠하는 척도"
우선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간전 참전 문제를 짚어보자. 워싱턴 싱크탱크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크고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고 있는 브루킹스연구소 마이클 오핸런(Michael O'Hanlon) 박사는 같은 연구소 브루스 라이델(Bruce Riedel, 취임초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파키스탄문제 태스크포스 책임자)과 함께 미국 내에서 이 문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필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아프간 문제는 미국이 여러 동맹국들과 얼마나 가깝고 어느 정도 질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takes the temperature)이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과 달리 아프간 전쟁은 정통성이 있다. 9.11 테러를 일으킨 바로 그 핵심 세력이 아프간에 암약하고 있으며 여전히 미국을 또다시 테러를 벌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아프간에서의 미국의 대외정책을 두고 정통성이 없다거나 미국이 잘못이라는 식의 비판을 받아야할 만한 근거는 약하다. 그러므로 각각 미국의 다른 여러 동맹국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솔직히 말해 최근 유럽의 동맹국들이 보여줬던 모습에 약간 고무되어 있다. 호주와 캐나다도 과거보다 적극적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실망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실망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미동맹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공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지구상 여러 곳에서 함께 싸워온 것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확신이 없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동맹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희망해왔던 것만큼 그렇게 가깝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오핸런 박사의 사견이다. 그러나 충분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 아프간 전쟁을 놓고 그것이 부시의 전쟁이냐 오바마의 전쟁이냐 하는 정치 공방이 뜨겁다. 부시가 아프간 전쟁을 대충 마무리 짓는 듯하더니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정책의 중점이 반테러 전쟁이 아닌 사담 후세인 정권 교체로 바뀐 것은 중대한 오류였다. 이라크로 전장을 옮기기보다는 아프간 내 오사마 빈라덴 근거지를 제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 뒷감당을 하기 위해 아프간에 어떤 식으로든 병력파견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아프간의 주민들, 종교지도자들과 접촉을 확대해서 미국과 NATO의 군사행동이 지역주민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테러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또한 경제개발 원조를 통해 더 이상 아편을 거래하거나 알카에다 요원이 되어야만 생계가 해결되는 극심한 빈곤 상태에서 어느 정도라도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추진하려면 동맹국과 우방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몇 개월간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부시의 일방주의적 밀어붙이기가 아닌 스스로 판단해서 협력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마냥 기다려도 반응이 없었다. 마이클 오핸런의 발언은 그런 심정을 잘 드러낸다. 미국의 국방부 관계자 입에서 남북정상회담 타진 등과 같은 말도 일종의 불만의 한 형태로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거다. 불만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북한은 늘 미국에 신정부가 들어서면 일단 도발적인 조치로 흔들어 본 다음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도발적인 행동을 계속하면서 위기로 몰아갔지만 이제 미국과 양자회담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아주 초보적인 의사표시가 북한으로부터 있었다고 알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반도의 안보정세는 냉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안정된다면 아프간 파병 등 미국의 요청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냐.'
이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취소, 정정하는 데 매몰되는 것은 엇박자를 더 키울 뿐이다. 아프간 문제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의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국방부 당국자의 언급은 정말 이상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에 예정대로 전환하고, 북한이 핵포기를 해야 하지만 만약 핵무기를 한국측에 사용한다면 '확장적 억제력'(extended deterrence)으로 방위하겠으며, 평택기지 조성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여 용산기지와 미2사단의 이전을 원활히 추진한다는 등은 이미 이슈가 아니다. 지난 2006년 이후 동일한 문장의 반복이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도 중요한 의제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중순 미국과 중국의 안보관계연구소가 베이징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비공개 토의에서 중국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제 원자바오 총리가 가서 보았더니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일은 없겠더라. 미국은 북한과 열심히 핵문제해결을 위해 대화 하면 된다. 설령 무슨 일이 있다 하든 중국이 북한과 협력해서 대처할 일이다." 이제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아프간 파병만이 가장 중요한 동맹현안이라는 것을.
부시의 파병요청때 거품 물던, 한미동맹 맹신론자들은 어디 갔나
부시가 노무현 정부에 대해 파병을 요청했을 때 거품물던 한미동맹 맹신론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이라크에 재건, 지원 임무를 수행할 3700명 규모의 부대를 파병하여 하나의 지역을 독자적으로 관리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방침에 대해 미진하다느니 미국은 7000-8000여명의 전투부대 아니면 안 받을 것이라는 등 온갖 음해성 발언으로 한국 정부의 결정을 비하하던 한나라당의 열혈동맹론자들은 막상 정권을 잡자 단 한 명의 파병도 약속하지 못할 정도로 '현명'(?)해진 것인가? 지금이라도 당시 노무현 정부의 비전투병 파병 방침을 조롱했던 '피터지게 뜨거웠던 동맹 전사들'은 사과를 해야 한다.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우유부단을 비난하며 성조기를 흔들든지 해야 할 것이다.
동맹이라는 것은 나의 요청을 받아주면 좋은 것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 요구하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안보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군사력까지 동원해서 협력하기로 한 국가간 최고 수준의 협력관계가 바로 동맹이다. 참여정부는 능력이 되는 만큼 최선을 다했고, 모자라는 부분은 부분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그대신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들어 동맹은 퇴조하고 있다. 21세기 한미동맹을 북한 정권교체시 흡수통일의 보장장치로 삼으려 하거나, 북한 핵문제 해결에 필수 과정인 미-북 양자회담은 6자회담이 열리기 전 한 번에 국한해야 하며 그것도 가급적 고위급 인사가 직접 평양에 가는 것보다는 실무급 인사가 제3국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발목잡기의 언턱거리로 인식한다면 미래는 어둡다.
필자는 아프간 파병요청에 적극 응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들의 총의를 모아야 할 일이다. 부시의 전쟁과 오바마의 전쟁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물쭈물 뭉개려 하지 말고 책임 있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파병 논의도 싫고 미북 양자회담도 싫고 오로지 남북대결을 추구할 테니 미국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현재의 한국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떼쓰기만큼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방관이 10월 22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참석차 방한하는 길에도 적지 않은 삐걱거림이 들려온다.
게이츠 장관을 수행 중인 고위급 인사가 '북한의 대외정책은 자주 크게 바뀌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슬쩍 거론한 남북정상회담 문제가 소동의 빌미가 되었다. 얼마 전 주미한국대사관 국정감사차 워싱턴을 방문한 어느 여권 국회의원은 오바마 정부에서 한국업무를 담당하는 중하위급 관리들이 최근 한미관계, 특히 이명박 정부와 일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실제는 이것보다 더 강한 톤인데 필자는 전해들은 것이라서 이 정도로 완화해서 표현했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참여정부 시절 한미관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나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보겠다.
최근 들어 참여정부 시절 한미관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쁘지 좋았다는 평가가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동맹정책과 안보정책을 설명하는 어조(tone)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내용(substance)은 진취적이고 바람직했으며 진정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식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관계 추진 방향은 다음과 같다. (1) 한미동맹을 미국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해가면서도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의 역할과 지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추구해 할 방향이었다. (2) 최전방에 주둔하고 있는 미2사단과 서울 도심에 자리 잡은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며, 앞으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이 행사한다. 마치 뭔가 누리던 것을 뺏기는 기분이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3) 능동적으로 미래지향적 군구조 개편을 추진하며, 기동성과 정보력을 신장시키고 주변국의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는 핵심전력을 구비한다. 국방예산만큼은 적극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해 애를 썼다. (4)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은 병행해서 추진함으로써, 한반도 사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발언권과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했다. (5) 이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로부터의 강한 비판을 무릅쓰고 이라크에 2차례에 걸쳐 파병을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정책에 대해 워싱턴의 느낌은 정확히 그 반대이다. 2008년 봄 이명박 정부가 전략동맹을 들고 나왔을 때 미국에서는 두 가지 의문을 가졌다. 한미양국이 전략적 수준에서 국제안보사안을 함께 관리하고 다룰 만한 단계에 온 것은 아닌데 전략동맹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두번째는 만약 한미동맹이 서로 절실히 협력해야 할 당면 현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지 못한다면 전략동맹이라는 표현은 곧 한미동맹을 전략적으로 그때그때 활용한다는 뜻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한미동맹을 안보정책의 중심에 놓겠다고 하니 미국으로서는 나쁠 게 없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주요 안보사안을 놓고 양국 정부 사이에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없다. 이것이 워싱턴 현지에서 서서히 일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한미 전략동맹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래서 다시 첫 번째 의문으로 돌아간다. 전략동맹이라고 하는데, 아프간전에 파병을 할 것인가? 그리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능동적으로 미국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이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내 전문가 "아프간문제,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계 가늠하는 척도"
우선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간전 참전 문제를 짚어보자. 워싱턴 싱크탱크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크고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고 있는 브루킹스연구소 마이클 오핸런(Michael O'Hanlon) 박사는 같은 연구소 브루스 라이델(Bruce Riedel, 취임초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파키스탄문제 태스크포스 책임자)과 함께 미국 내에서 이 문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필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아프간 문제는 미국이 여러 동맹국들과 얼마나 가깝고 어느 정도 질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takes the temperature)이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과 달리 아프간 전쟁은 정통성이 있다. 9.11 테러를 일으킨 바로 그 핵심 세력이 아프간에 암약하고 있으며 여전히 미국을 또다시 테러를 벌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아프간에서의 미국의 대외정책을 두고 정통성이 없다거나 미국이 잘못이라는 식의 비판을 받아야할 만한 근거는 약하다. 그러므로 각각 미국의 다른 여러 동맹국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솔직히 말해 최근 유럽의 동맹국들이 보여줬던 모습에 약간 고무되어 있다. 호주와 캐나다도 과거보다 적극적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실망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실망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미동맹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공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지구상 여러 곳에서 함께 싸워온 것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확신이 없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동맹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희망해왔던 것만큼 그렇게 가깝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오핸런 박사의 사견이다. 그러나 충분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 아프간 전쟁을 놓고 그것이 부시의 전쟁이냐 오바마의 전쟁이냐 하는 정치 공방이 뜨겁다. 부시가 아프간 전쟁을 대충 마무리 짓는 듯하더니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정책의 중점이 반테러 전쟁이 아닌 사담 후세인 정권 교체로 바뀐 것은 중대한 오류였다. 이라크로 전장을 옮기기보다는 아프간 내 오사마 빈라덴 근거지를 제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 뒷감당을 하기 위해 아프간에 어떤 식으로든 병력파견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아프간의 주민들, 종교지도자들과 접촉을 확대해서 미국과 NATO의 군사행동이 지역주민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테러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또한 경제개발 원조를 통해 더 이상 아편을 거래하거나 알카에다 요원이 되어야만 생계가 해결되는 극심한 빈곤 상태에서 어느 정도라도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추진하려면 동맹국과 우방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몇 개월간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부시의 일방주의적 밀어붙이기가 아닌 스스로 판단해서 협력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마냥 기다려도 반응이 없었다. 마이클 오핸런의 발언은 그런 심정을 잘 드러낸다. 미국의 국방부 관계자 입에서 남북정상회담 타진 등과 같은 말도 일종의 불만의 한 형태로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거다. 불만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북한은 늘 미국에 신정부가 들어서면 일단 도발적인 조치로 흔들어 본 다음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도발적인 행동을 계속하면서 위기로 몰아갔지만 이제 미국과 양자회담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아주 초보적인 의사표시가 북한으로부터 있었다고 알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반도의 안보정세는 냉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안정된다면 아프간 파병 등 미국의 요청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냐.'
이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취소, 정정하는 데 매몰되는 것은 엇박자를 더 키울 뿐이다. 아프간 문제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의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국방부 당국자의 언급은 정말 이상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에 예정대로 전환하고, 북한이 핵포기를 해야 하지만 만약 핵무기를 한국측에 사용한다면 '확장적 억제력'(extended deterrence)으로 방위하겠으며, 평택기지 조성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여 용산기지와 미2사단의 이전을 원활히 추진한다는 등은 이미 이슈가 아니다. 지난 2006년 이후 동일한 문장의 반복이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도 중요한 의제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중순 미국과 중국의 안보관계연구소가 베이징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비공개 토의에서 중국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제 원자바오 총리가 가서 보았더니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일은 없겠더라. 미국은 북한과 열심히 핵문제해결을 위해 대화 하면 된다. 설령 무슨 일이 있다 하든 중국이 북한과 협력해서 대처할 일이다." 이제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아프간 파병만이 가장 중요한 동맹현안이라는 것을.
부시의 파병요청때 거품 물던, 한미동맹 맹신론자들은 어디 갔나
부시가 노무현 정부에 대해 파병을 요청했을 때 거품물던 한미동맹 맹신론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이라크에 재건, 지원 임무를 수행할 3700명 규모의 부대를 파병하여 하나의 지역을 독자적으로 관리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방침에 대해 미진하다느니 미국은 7000-8000여명의 전투부대 아니면 안 받을 것이라는 등 온갖 음해성 발언으로 한국 정부의 결정을 비하하던 한나라당의 열혈동맹론자들은 막상 정권을 잡자 단 한 명의 파병도 약속하지 못할 정도로 '현명'(?)해진 것인가? 지금이라도 당시 노무현 정부의 비전투병 파병 방침을 조롱했던 '피터지게 뜨거웠던 동맹 전사들'은 사과를 해야 한다.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우유부단을 비난하며 성조기를 흔들든지 해야 할 것이다.
동맹이라는 것은 나의 요청을 받아주면 좋은 것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 요구하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안보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군사력까지 동원해서 협력하기로 한 국가간 최고 수준의 협력관계가 바로 동맹이다. 참여정부는 능력이 되는 만큼 최선을 다했고, 모자라는 부분은 부분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그대신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들어 동맹은 퇴조하고 있다. 21세기 한미동맹을 북한 정권교체시 흡수통일의 보장장치로 삼으려 하거나, 북한 핵문제 해결에 필수 과정인 미-북 양자회담은 6자회담이 열리기 전 한 번에 국한해야 하며 그것도 가급적 고위급 인사가 직접 평양에 가는 것보다는 실무급 인사가 제3국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발목잡기의 언턱거리로 인식한다면 미래는 어둡다.
필자는 아프간 파병요청에 적극 응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들의 총의를 모아야 할 일이다. 부시의 전쟁과 오바마의 전쟁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물쭈물 뭉개려 하지 말고 책임 있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파병 논의도 싫고 미북 양자회담도 싫고 오로지 남북대결을 추구할 테니 미국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현재의 한국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떼쓰기만큼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박선원 기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냈으며, 현재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이며, 한국 미래발전연구원 연구실장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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