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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에 살아있는 구국의 함성

의병장 김세근(1550~1592)

등록|2009.10.21 15:50 수정|2009.10.21 15:50
 백마산에 살아있는 구국의 함성


- 의병장 김세근(1550~1592)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 뒷자락에는 해발 134m의 나지막한 백마산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500여 명을 이끌고 금산전투에서 싸우다 숨진 삽봉 김세근(金世斤) 의병장의 숨결이 도처에 살아 있는 곳이다. 산자락에는 수련골, 옥동샘, 차일봉, 장수굴 등이 있다. 수련골은 그가 병사들의 수련을 연마 시켰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며 장수굴 역시 그가 심신을 단련 시켰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김세근 의병장은 경남 함안군 마륜동 출생이다. 김해김씨인 김세근 의병장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그의 방조 김일손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참살을 당하자 그의 아버지 김석경(金碩慶)이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곳 세하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하동은 그의 이름 '세(世)'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일합방 이후부터는 세(細)를 쓰고 있다.

 김세근 의병장은 문과에 급제하여 종 6품 주부 벼슬을 하던 중 율곡이이와 함께 양병설'을 주장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세하동으로 낙향을 한다. 백마산 수련골에서 그는 장정들을 모아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수련 연마를 한다. 이 소문이 장성, 나주, 화순, 일대에 퍼져  그 수가 수백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임진왜란(1592년)이 터졌다. 김세근 의병장은 주저 할 것도 없이 의병 500 여명을 이끌고, 고경명 의병장이 있는 금산으로 향한다. 금산전투에서 김세근 의병장은 고경명, 유팽노, 안영 등과 함께 격렬하게 싸우다 왜적의 조총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 한씨는'부사어충 처사어열 인지본'이란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다. '지아비는 충(忠) 에 죽고 지어미는 열(烈)에 죽으니 이는 곧 사람된 당연한 도리리라'13년 뒤(선조38) 선조임금은 김세근 의병장에게 병조참판을, 부인 한씨에게는 정부인을 증(贈)한다.

  광주유림 들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52년 서창동 불암마을에 학산사를 건립하였다.천추에 서린 장군의 한을 풀고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학산사에는 그의 영정과 함께 녹권, 통문 등 유품이 소장되어 있다.

학산사 전경김세근 의병장의 영정과 함께 녹권, 통문 등 유품이 소장 되어 있는 학산사 ⓒ 문화재예방관리센터



 김세근 의병장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는  많다. 그 중의 하나는, 백마산의 김장사와 무등산의 김장사가 힘겨루기 시합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소문난 두 장사가 어느 날 힘겨루기를 하였다고 한다. 백마산의 김장사(김세근)가 던진 바위는 무등산에 떨어졌는데, 무등산의 김장사(김덕령)가 던진 바위는 백마산에 못 미쳐 동하마을 김성의 집에 떨어졌다. 동하마을(세하동132-1) 김성의 집안 담장에는 아직도 그 바위가 남아 있다.

 또한 백마산 장수굴에 가면 동굴 윗부분에 구멍이 수없이 나 있다. 기골이 장대한 김세근 의병장이 동굴을 드나들면서 상투 끝에 부딪혀 생긴 구멍들이라고 한다. 그만큼 동굴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힘겨루기 바위김덕령 장군의 힘이 못 미쳐 백마산에 가야 할 바위가 김성의 집 마당에 떨어져다는 바위 ⓒ 문화재예방관리센터





  학산사 근처 팔학산 기슭에는 김세근 의병장 묘가 있다. 시신을 찾지 못해 초혼장으로 치러진 묘는 400여년의 시간을 망주석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다.

"모진 바람이 지난 이후에야 어느 풀이 억센가를 알 수 있고, 또 나라가 어지러운 이후에야 참다운 충신을 알 수 있다"라고 옛 시(詩)는 말한다. 김세근 의병장은 시신도 없지만 후손들에게 호국충절의 정신, 아름다운 정신을 남겨 주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광주 서구의 인물  김세근 의병장! 그분의 빛나는 얼이 백마산과 학산사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처럼 퍼지고 있다.

 산들 바람이 불어온다.
억새의 울음 마냥 질기고 강한 우리 역사!
역사의 고비마다 서려있는 아픔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간을 넘어 다가옴을 바람속에서 느낀다.
선조들이 남겨 주신 강한 정신력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까?

김세근 장군의 무덤시신을 찾지 못해 초혼장으로 치려진 김세근 의병장묘 ⓒ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선조들이 남긴  "정신적 가치"를  후대에 남겨 주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먼저 남아 있는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문화유산이 없는 민족은 그 나라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말하기 어렵다'라고 한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소실되었다. 이후에도 해외로 빠져나간 문화재가 7만329점이나 된다.(1999년 통계)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더 이상 문화재가 국외로 빠져나가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남겨져 있는 모든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는 물론이거니와 지정되지 않는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문화 경쟁 시대' 라고 한다.'문화'는 그 나라의 재산이자 권력이요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을 소중히 가꾸는 일은 의무이자 권리이며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재 예방관리센터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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