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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가슴이 떨릴 땐 여행을 떠나라!

동료들과 떠난 지리산 천왕봉 여행기 "상고대 활짝 피어"

등록|2009.10.22 13:46 수정|2009.10.22 16:31
산이 사람을 부른다. 누군가 "오르면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오르냐"고 묻지만 산을 오르는 이유는 비단 산(山)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곳엔 사람이 있고, 정(情)이 있고 산행을 통해 느끼는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 지리산 산행에 앞서 동료들이 거림 휴게소에서 코스를 확인하고 있다. ⓒ 심명남


▲ 가을에 익은 단풍나무에 단풍이 빨갛게 물들었다. ⓒ 심명남


"거림-세석-장터목-천왕봉-중산리" 신령산으로 출발

진달래도 피고 뻐꾸기가 울어대며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도착,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는 것은 퍽 다행이다. 지난 20일 가슴 떨리는 동료들과 천왕봉 정복에 나섰다.

지리산을 만난다는 설렘에 가슴 조이며 이른 새벽 여수를 출발, 경남 산청군 내대리 휴게소에 도착했다. 7시40분에 시작된 산행은 장장 9시간 동안 거림-세석-장터목-천왕봉을 찍고 중산리에 내려온 시간은 16시 40분. 12시간의 평균 산행코스를 3시간씩이나 앞당겼다.

▲ 노랗고 빨갛게 단풍이 물든 지리산 ⓒ 심명남


▲ 마치 바위로 수놓은 병풍을 연상케 하는 지리산 ⓒ 심명남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은 우리나라 3대 삼신산(三神山)에 속한다. 이중 '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계시는 산'이란 뜻의 지리산(智異山)은 백두산의 맥이 굽이굽이 뻗어 흐른다. 지리산 탐방코스는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의 삼대 주봉을 연결하는 종주능선(22.5Km)과 삼대에 걸쳐 공을 들여야만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日出)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또한 지리10경과 반달곰은 산행 중 또 다른 볼거리다

특히 산을 오르다 보면 여기저기 반달곰 주의 안내문이 걸려있다. 산행을 하다 곰과 마주칠 경우 대처요령과 곰 출현 주의보인데 이는 곰에 대한 두려움보다 곰을 볼 수 있다는 신비감이 더 앞선다.  이곳은 2001년 8월 반달가슴곰을 방생해 복원에 성공했는데 현재는 20여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결국 지리산은 곰을 마스코트화해 지리산하면 반달곰으로 결부된다. 또한 세석산장에 오르면 '촛대봉과 세석철쭉 이야기'속에는 곰 때문에 생긴 한 연인의 슬픈 전설이 담겨있다.

▲ 등반을 하다보면 등산로에 곰출연주의라는 팻말이 눈길을 끈다. ⓒ 심명남


▲ 등반객이 반달곰에 얽힌 촛대봉과 세석철쭉 이야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 심명남


반달곰에 얽힌 촛대봉과 세석철쭉 이야기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연인이 행복하게 살았다. 아무 부러울 게 없는 이들의 고민은 자식이 없다는 것. 어느 날 곰이 찾아와 연진 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 샘이 있는데 이 물을 마시고 산신령에게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준다. 연진은 너무 기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이 샘터에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산신령의 노여움을 산다. 이에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일러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다.

이후 연진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해 속죄하다 돌로 굳어버렸다. 또한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갔으나 연진을 만날 수 없게 되자 절벽 위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을 불렀다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운다하여 촛대봉 바위는 바로 연진이 굳어 버린 모습이라 한다.

▲ 언덕위의 집을 연상하는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산장의 모습 ⓒ 심명남


▲ 세석산장을 지난 장터목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안내 팻말이 갈대와 조화를 이뤘다. ⓒ 심명남


가을에 본 지리산의 백미 상고대 "원더풀"

촛대봉을 지나 연하봉에 오르니 나뭇가지에 온통 눈꽃이 맺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는 눈꽃이 아닌 상고대란다. 상고대는 서울대처럼 어느 대학 이름이 아니다. 서리꽃이라 부르는 상고대는 수증기의 승화작용으로 안개나 서리가 얼어서 나뭇가지를 하얗게 수놓은 것이다. 추운 겨울 높은 산에 등산한다고 해서 무조건 상고대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하 6도 이하와 습도가 90% 이상 풍속3m/s의 조건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아름다운 자태의 상고대를 볼 수 있다. 이렇듯 눈꽃이 아닌 상고대는 등산을 자주 해도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다.

▲ 지리산 제석봉에 피어난 상고대의 모습 ⓒ 심명남


▲ 지리산 제석봉에 피어난 상고대의 모습 ⓒ 심명남


상고대의 서리꽃을 만끽하는 사이 동료는 휴대폰으로 현장의 모습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누군가 그랬듯이 요즘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가 하도 사방에 휴대폰이 널려있어 바로 바로 전송이 되기 때문에 보안 유지가 어려워 서라는 말이 딱 맞는 풍경이다.

▲ 고사목 위로 피어난 상고대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 심명남


▲ 상고대가 내려 바위에 붙은 난이 서리꽃으로 활짝 피었다. ⓒ 심명남


▲ 서리꽃 상고대에 묻혀 휴대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등반객의 모습 ⓒ 심명남


상고대의 풍경을 뒤로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부지런히 장터목 산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배시계가 촐촐한걸 보니 어느덧 정오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전문 산악인도 놀란 장터목 점심메뉴 "자연산 전복죽 요리"

장터목 산장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준비해온 점심을 끊이기 시작했다. 이날 동료가 준비한 점심메뉴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 다름아닌 오늘의 특식메뉴는 전복 죽이다. 살아있는 전복과 찹쌀을 참기름에 볶아와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온 신선한 전복죽은 안나푸르나 봉을 정복하고 내년 초 에베레스트 산의 출정을 준비한다는 이진호씨도 깜짝 놀란 기막힌 요리로 평가 받았다. 좋은 인심속에 다들 어찌나 맛나게 먹었던지 여기서 나눈 이야기와 점심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 장터목에서 화제가 된 특식메뉴인 전복죽이 보글보글 끊고 있다. ⓒ 심명남


▲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 팔았다 옛날 장터목의 모습 ⓒ 심명남


장터목의 유래가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 팔던 곳에서 유래되었듯 이곳 장터목 산장은 수용인원은 40명에서 시작 이제는 하루 150명의 탐방객을 수용할 수 있는 꽤 큰 규모로 확대되었다.

韓國人(한국인)의 氣像(기상) 여기서 發源(발원)되다! "노-케이블카"

장터목을 출발 제석봉을 거쳐 어느덧 지리산의 정산인 천왕봉(1915m)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본 풍경은 천왕봉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상고대로 뒤덮였고 다른쪽은 단풍에 물들어 가을과 겨울이 확연히 구분되는 두 개의 산을 보았다. 3대의 덕(德)을 쌓은 탓일까? 확 트인 시야와 맑게 개인 가을 속 지리산의 최고봉을 정복한 이들에게 오늘 신(神)은 우리에게 최고의 날씨를 선사했다.

▲ 천왕봉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여천NCC 동료들의 모습 ⓒ 심명남


▲ 환경운동단체가 세운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심명남


하지만 천왕봉 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바로 지리산의 3대 주봉인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까지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환경단체에서 세운 '어머니 지리산에 철탑을 꽂지 말라'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개발과 보존을 사이에 두고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한바탕 충돌이 예상된다. 이 좋은 산을 깎아 철탑을 꽂고 산 위로 케이블이 널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개발과 보존의 논리속에 과연 후대를 위해 어느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까?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오르면 내려갈 산을 왜 굳이 힘들게 오르냐고 묻지만 다시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려가야만 한다. 산은 나눔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산도 내게 더 많은 것을 안겨주었기에 오늘 나와 동료들이 나눈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산과 나눈 산사랑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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