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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 퇴출 요구는 명백한 정치 탄압이다

MB 정권, 얼마나 더 정치적 인신공양을 원하는가

등록|2009.10.23 14:48 수정|2009.10.23 14:48

▲ 개그맨 김구라. 사진은 지난 2006년 10월 19일 오후 여의도의 한 찜질방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 '라디오스타 '양김' 찜질방 시사토크' ⓒ 오마이뉴스 안홍기


얼마나 더 많은 제물이 필요한가. 얼마나 더 많은 희생양이 필요한가. 그것도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제물로 삼는 마녀사냥식 굿판은 언제 끝날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원순, 진중권, 김제동에 이어 이제 김구라까지 정치적 제물이 되고 있다.

'이명박식 인신공양'은 정말 섬뜩하기까지 하다. 옛날 중남미 아즈텍 제국에서 태양신을 위해 인간을 제물로 바치던 시대도 아닌데,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탄압받고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하는가. 이러다가 진보개혁인사뿐 아니라, 합리적인 중도인물들마저 우리 사회에서 씨가 마를 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1년 반이나 훨씬 지났는데, 아직도 정치적 분풀이가 끝나지 않았는가.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정치적 보복과 탄압, 정치적 분풀이와 숙청으로 날을 새울 것 같다. 걱정이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패자는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는 정치보복 없이,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기대했던 중도실용의 모습은 더욱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점은 이명박 정권과 보수세력이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는 인신공양의 거대한 검은 장막이다. 오락프로에 출연하는 방송인 김구라까지 제물로 삼으려는 그들의 치밀하면서도 조직적인 그림자가 장막 위에 어른거린다. 전방위적이고 상하구분 없는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축출 음모다. 김제동이 마지막 제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김구라까지 그들은 요구한다. 김구라 이후에 그들이 노리는 먹잇감이 또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식 인신공양의 끝은 어디에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에서 '김구라 퇴출'을 제기한 것은 보수세력의 전형적인 정치적 반대자 죽이기 수순이다. 진 의원의 '말'은 김구라의 '막말'이지만, 진 의원의 '가슴'은 김구라의 '전력'에 꽂혀 있다. 김제동의 KBS 퇴출 이유가 겉으로는 '출연료'였지만, 속으로는 '전력'이었던 것과 같다. 옛 노무현 정권에 가깝고, 현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다.

나는 16대 국회의원 시절,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속해 있는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으로 방송사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벌인 적이 있다. 그때도 방송프로의 불건전성과 출연자의 막말이나 비속어 사용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방송사를 상대로 하는 국정감사에서는 매년 나오는 지적이다. 김구라의 막말 사용이 지상파 방송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면 당연히 국회에서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인 KBS 사장에게 특정 연예인을 지목해 공개적으로 퇴출시키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은 명백히 다르다. 진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더라도, 김구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방송출연자들도 막말 사용으로 방송통신심의위의 지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김구라가 출연한 프로가 뉴스나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아니고, 심야시간대 오락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구라 개인을 특정해 방송퇴출을 요구한 것은 명백히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적 이유가 깔린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김구라 퇴출시도가 명백한 정치적 탄압인 이유

▲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 ⓒ 남소연

진 의원의 '김구라 퇴출 발언'은 보수세력의 각본에 따른 수순이기 때문이다. 진 의원의 발언에 앞서 한 인터넷 보수논객은 며칠 전 '김구라, 노무현의 정적들을 짓밟으며 출세했다'며 사실상 김구라의 방송 퇴출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예전 노무현 정부시절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탄핵 주도세력에 대해 신랄히 비판했으며, 지금은 '막말'로 인기를 유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구라=노무현사람'으로 먼저 낙인을 찍어버렸다.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이슈화 시켰다.

탄핵이 언제 적 얘기인데, 이제 와서 그 당시의 발언을 문제 삼는다는 말인가. 인터넷 보수논객의 느닷없는 김구라 문제제기와 진 의원의 김구라 퇴출발언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김구라의 과거 '전력'과 현재의 '막말'을 보수논객이 지적하자, 한나라당 진 의원이 이를 받아서 '김구라 퇴출'을 요구하는 셈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오비이락'이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요 서로 죽이 잘 맞는 보수세력의 부창부수다.

사용자 참여의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보니, "김구라는 예전 인터넷 방송 시절에는 각종 음담패설과 독설 등으로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이러한 발언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많이 존재한다"며 "하지만, 공중파에 진출한 지금은 잊힌 연예인이나 잠재력 있는 연예인들을 방송에서 많이 거론하며 재활 및 재기를 성공적으로 도와줘 '연예계의 재활공장장'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의 평가는 일반 시청자들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전 김구라의 일부 거친 표현은 나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현재의 김구라는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생물이 변하듯, 나는 김구라에게서도 '진화하는 방송인'의 모습을 본다. 김구라가 출연하는 개그나 풍자 속에는 다른 프로그램보다는 독설의 허용기준이 넓을 수밖에 없다.

보수세력, 김구라의 '입'에서 '정치적 과거'를 본다

보수세력들은 김구라의 '입'을 통해 김구라의 '정치적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이다. 김구라에 대한 방송퇴출 요구는 노 전 대통령에 이은 잇따른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자 정치적 타살이다. 정치적 이유라는 본질에서 어떠한 차이도 없다. 김구라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방송 퇴출로 이어지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반대자 축출의 수순 밟기는 한결 같이 닮은꼴이다.

인터넷 보수 논객들이 마녀사냥의 대상을 지목해 문제 제기하는 글을 쓰면, 보수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해 사회문제화시키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정치적 논쟁으로 끌어올리고, 행정부나 정권의 영향력 아래 있는 기구들이 알아서 이들을 제거하는 수순이다.

특히 방송의 경우에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정권의 손아귀에 들어간 KBS 이사진과 뉴라이트 출신이 포진한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자연스럽게 문제제기를 한 뒤에 정치적 반대자들을 방송에서 퇴출시키고 있다.

완장 권력의 광기

보수세력들의 이런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에 의해 정권이 바뀐 뒤 지난 1년 반 동안, 얼마나 많은 진보개혁적 인사들이 희생을 당했는가. 정치적 이유로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탄압받아 희생된 인신공양의 제물들이 우리 사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지 않은가.

정치계 제물로는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이미 제단에 바쳐졌고, 그리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검찰과 법원에 의한 사법살인의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 방송계 제물로는 정연주 KBS 사장과 노종면 YTN 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 MBC <PD수첩>의 제작 PD들, 신경민 MBC 앵커가 있으며, 엄기영 MBC 사장은 희생양 대기자로 거론되고 있다.

방송사의 시사토론 진행자로는 KBS 정관용에 이어 MBC 손석희도 마침내 퇴출되었다. 일반 오락이나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는 윤도현에 이어 김제동이 퇴출되었고, 이제 김구라 차례다.

인터넷 논객으로는 '미네르바' 박대성과 진중권이 대표적 희생양이며, 시민운동가로는 최열과 박원순이 이미 탄압을 받고 있으며, 교육문화계에서는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쫓겨났으며,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도 정권에 희생당했다.

이들뿐 아니라 방송프로의 보조적 역할을 하는 MBC <PD수첩>의 작가와, 촛불정국 당시 계약직 기자로 있던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해고된 뒤 현재 KBS 인터넷방송 프로를 맡고 있는 한 프리랜서 기자도 퇴출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보수세력의 제단에 인신공양된 희생양들이거나 대기자들이다.

이 정도면, 말 그대로 총체적 마녀사냥이다. 이명박 정권이 '전 사회의 보수화' 깃발을 내걸고 벌이는 인신공양 굿판의 실상이다. 마치 핀셋으로 뽑아내듯 야금야금 정치적 반대자들을 사회에서 솎아내고 있다. 이들이 언제 핀셋의 대상을 정치적 이유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이들 희생양 중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합리적 중도인사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합리성 여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느냐 아니냐는 칼날의 이분법이다.

이들에게서 팔목에 완장을 찬 권력의 광기와 무서움을 본다. 역사적으로 쿠데타 권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완장 권력이다. 이명박 정권은 완장 권력이다. 오로지 내 편이냐 네 편이냐는 편가르기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송연예인조차도. 노 전 대통령 수사 때 전직 대통령 딸의 미국 주택구입 의혹에 대해 샅샅이 파헤치던 검찰은 이 대통령의 사돈인 효성그룹 사주 일가의 무더기 미국 호화주택 불법구입 의혹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의 이중성이다.

그러다 보니,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09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47위에서 무려 69위로 떨어졌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39위에서 이명박 정권 들어서 47위에 이어 69위로 끝없는 추락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하는데, 이명박 정부의 민주지수는 날개 잃은 독수리의 추락을 보는 듯하다.

▲ 미디어행동 회원들과 KBS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사원들이 14일 오후 KBS 본관 앞에서 "김제동씨 퇴출은 이병순 사장의 연임을 위한 막장 개편"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김구라를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김구라 문제를 보면서,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을 떠올린다. 나치가 공산당과 유대인을 탄압할 때 침묵했더니 결국 자신을 잡으러 왔으나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던 마틴 뇌묄러 목사의 고백도 들린다. 이명박 정권은 왜 자꾸 오래전에 죽은 작가들의 말을 떠오르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을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우리나라의 대중예술인에게도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적 이유로 방송연예인들이 정권에 따라 출연 정지되거나 방송에서 퇴출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도 미국처럼 방송인의 정치적 의견에 대해서는 개인의 소신이자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옛날 대선 때 다른 후보를 밀었던 개그맨 심현섭이 오랫동안 정상적인 방송활동을 못한 것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고 잘못된 일이다. 다시는 심현섭도 윤도현도 김제동도 김구라의 불행도 나와서는 안 된다. 정치로부터 대중연예인들을 해방시키는 일은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대중연예인을 거론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김구라 문제는 막말의 문제가 아니다. 막말이 문제라면 시정하면 되는 것이지, 대중예술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방송퇴출의 대상이 아니다. 본질은 보수세력이 치밀하게 계획한 마녀사냥이며 정치적 탄압일 뿐이다. 그래서 김구라를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노회찬과 박원순, 진중권, 김제동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막말'을 했느냐 여부로 김구라와 이들을 구분짓지 말자. 정치적 탄압 앞에서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부차적인 문제다. 다양성을 표방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가 누구든 정치적 이유로 탄압받는 것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웃에 내미는 따뜻한 손길에서 민주주의는 싹튼다. 그 따뜻한 손길이 사회적 연대의 출발이다. 김구라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그를 지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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