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호의 사각지대는 얼마나 될까?
[새사연의 '생얼' 한국경제(21)] '영양실조'에 걸린 한국의 사회보장 체계
1990년대 미국이 한창 잘 나갈 때 '유럽 복지병'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럽의 많은 시민들이 국가가 지급하는 각종 수당에만 의지해 살아가려고 해서 결국 국가 전체의 성장률이 하락하고 실업률은 증가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이다.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발생하고 전 세계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돌입하고 난 뒤로는 '유럽 복지병'이라 비아냥대던 말도 조금 잦아든 것 같다. 1990년대 미국의 고도성장과 낮은 실업률이 한편으로는 금융 파생상품에 기댄 성장이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기댄 저실업이었다는 사실이 보다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반복된 이미지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중요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의 판단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복지 환자병'은 공적 재원을 착복하는 공무원이나 정치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서민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생존과 근로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보호의무를 필요로 한다. 현재와 같이 경제가 장기간 불안한 안개 속에서 헤매어야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에서 복지는 '복지병'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어떤 누리꾼의 표현대로 '복지 영양실조'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기초적인 사회보장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빈곤율이 점점 상승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보장 체계 가운데 고용 부문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지난 1995년 최후로 도입된 사회보험인 '고용보험'이 분석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고용보험은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유일한 고용안전망 제도이다. 독자들도 같이 확인하면서 자신의 위치는 어디인지 찾아보기 바란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는 1050만 명에 달한다
고용보험은 단순히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소극적인 제도가 아니다. 취업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서도 각종 보조금과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고용지원센터와 같은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부 예산 가운데 노사가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되는 예산이 50퍼센트를, 일반회계에서 지출되는 예산은 1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나머지 40퍼센트도 산재, 장애인 등 각종 기금으로 역시 일반회계에서는 지원되지 않는다) 고용보험은 조금 과장한다면 '국가의 고용정책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고용보험이 어느 정도의 '영양실조' 상태인지는 사각지대 규모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12월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938만 5000명에 이르렀다. 처음 실시되었던 1995년의 400만 명에 비하면 두 배 이상 가입자가 늘었고 그동안 의무가입 범위를 계속 확대해 왔으니 나름의 성과를 폄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용보험을 통한 보호의 수준이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아직도 가입률은 전체 취업자의 4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호대상자의 최소 80퍼센트 수준까지는 고용안전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고용보험은 근로권과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로부터 그 의의가 도출되므로 고용보험의 배제로 인한 기본권의 차별이 광범위하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먼저, 국회예산정책처(2009)는 고용보험 적용 사각지대 규모를 취업자 2274만 명의 58.8퍼센트인 1336만 명으로 보고 있다. 이 규모는 현재의 고용보험이 임금노동자의 일부만을 보호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들의 경우에는 법적으로 아예 고용보험 가입이 배제되어 있다(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임의가입을 허용하는 특례가 있긴 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상태).
또한 임금노동자 가운데 상당수는 사업주와 근로자에 의해 가입이 기피되고 있다. 노동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료 자체는 임금의 0.45퍼센트로 얼마 되지 않지만, 고용보험 가입에 의해 다른 사회보험 가입이 강제될 경우 임금의 16.91퍼센트(노사 부담 합계)에 이르는 보험료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저임금노동자, 그러니까 정말 보호가 절실한 계층들이 오히려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정확히 규모를 알고자 한다면, 임금노동자 가운데 공무원과 사립교직원 등을 보호대상자에서 빼는 것이 타당하다. 이들은 현재 고용보험에 들어 있지 않지만 신분 보장 수준이 높고 직역연금으로 실직 후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한편 실업자 가운데 상당수는 실업급여 자체를 수급 받고 있지 못하다(실업자 대비 수급률 35퍼센트 수준).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상당히 엄격한 편이기 때문이다. 전병유(2009)은 대체로 이런 기준에 따를 경우 사각지대의 규모를 총 823만 명으로 추정한다.
전병유(2009)의 추정은 국회 예산정책처(2009)의 추정보다는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조금 더 정확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아직도 고려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의 대부분은 바로 청년실업자들이다. 김병권(새사연 브리핑, 고용대란 시대, '전국민 고용보험제'도입하자, 2009.02.17)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에서도 고용보험의 적용을 필요로 하는 인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취업준비생 60만 명과 '그냥 쉬었음' 인구 170만 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이 비경제활동 상태에 놓인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고용안전망을 필요로 하는 대상자는 총 2400만 명에 달하고 사각지대 규모는 앞서 전병유(2009)의 계산값에 230만 명을 추가해 총 1050만 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편적 사회보장을 위해 대상을 확대해야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부류 중에서 대표적인 집단 세 가지를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로서 사회보험료 납부의 부담을 느끼고 있는 집단, 둘째, 자영업자들로써 법적으로 아예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배제된 집단, 그리고 셋째, 청년실업자들로서 현행 보험중심의 고용안전망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들이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흔히 한국의 고용안전망이 정규직 임금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경직된 '보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보자면, 의무가입의 대상을 확대하거나 연대급여와 같은 부조 성격의 제도를 가미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국가가 부담하거나 누진적 요소를 강화함은 물론이다. 예컨대, 청년실업자 등 실업급여 수급이 배제된 자에 대한 2차 급여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최저임금미달 소득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면제와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사회보험료 부과를 동시에 실시함으로써 재원을 확보하기도 한다.
고용안전망의 확대는 '배제된 자'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것으로써 필요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경제적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금융과 부채로 소비를 만들어내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넘어서 고용으로부터 안정적인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은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불안은 급격한 소득 감소를 낳고 이는 소비 위축과 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으로 나아간다는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도 도출된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반복된 이미지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중요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의 판단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보장 체계 가운데 고용 부문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지난 1995년 최후로 도입된 사회보험인 '고용보험'이 분석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고용보험은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유일한 고용안전망 제도이다. 독자들도 같이 확인하면서 자신의 위치는 어디인지 찾아보기 바란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는 1050만 명에 달한다
고용보험은 단순히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소극적인 제도가 아니다. 취업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서도 각종 보조금과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고용지원센터와 같은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부 예산 가운데 노사가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되는 예산이 50퍼센트를, 일반회계에서 지출되는 예산은 1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나머지 40퍼센트도 산재, 장애인 등 각종 기금으로 역시 일반회계에서는 지원되지 않는다) 고용보험은 조금 과장한다면 '국가의 고용정책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고용보험이 어느 정도의 '영양실조' 상태인지는 사각지대 규모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12월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938만 5000명에 이르렀다. 처음 실시되었던 1995년의 400만 명에 비하면 두 배 이상 가입자가 늘었고 그동안 의무가입 범위를 계속 확대해 왔으니 나름의 성과를 폄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용보험을 통한 보호의 수준이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아직도 가입률은 전체 취업자의 4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호대상자의 최소 80퍼센트 수준까지는 고용안전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고용보험은 근로권과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로부터 그 의의가 도출되므로 고용보험의 배제로 인한 기본권의 차별이 광범위하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먼저, 국회예산정책처(2009)는 고용보험 적용 사각지대 규모를 취업자 2274만 명의 58.8퍼센트인 1336만 명으로 보고 있다. 이 규모는 현재의 고용보험이 임금노동자의 일부만을 보호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들의 경우에는 법적으로 아예 고용보험 가입이 배제되어 있다(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임의가입을 허용하는 특례가 있긴 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상태).
또한 임금노동자 가운데 상당수는 사업주와 근로자에 의해 가입이 기피되고 있다. 노동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료 자체는 임금의 0.45퍼센트로 얼마 되지 않지만, 고용보험 가입에 의해 다른 사회보험 가입이 강제될 경우 임금의 16.91퍼센트(노사 부담 합계)에 이르는 보험료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저임금노동자, 그러니까 정말 보호가 절실한 계층들이 오히려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림1] 고용보험 적용 사각지대 현황(* 자료: 국회예산정책처(2009), “추가경정 예산안 쟁점분석” 111쪽) ⓒ 새사연
조금 더 정확히 규모를 알고자 한다면, 임금노동자 가운데 공무원과 사립교직원 등을 보호대상자에서 빼는 것이 타당하다. 이들은 현재 고용보험에 들어 있지 않지만 신분 보장 수준이 높고 직역연금으로 실직 후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한편 실업자 가운데 상당수는 실업급여 자체를 수급 받고 있지 못하다(실업자 대비 수급률 35퍼센트 수준).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상당히 엄격한 편이기 때문이다. 전병유(2009)은 대체로 이런 기준에 따를 경우 사각지대의 규모를 총 823만 명으로 추정한다.
▲ [표1] 고용보험 관련 취업자 수 현황 추정치(2009년 1월, 단위: 만 명)(*자료: 전병유, 2009년, ‘심화되는 경제위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새사연
전병유(2009)의 추정은 국회 예산정책처(2009)의 추정보다는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조금 더 정확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아직도 고려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의 대부분은 바로 청년실업자들이다. 김병권(새사연 브리핑, 고용대란 시대, '전국민 고용보험제'도입하자, 2009.02.17)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에서도 고용보험의 적용을 필요로 하는 인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취업준비생 60만 명과 '그냥 쉬었음' 인구 170만 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이 비경제활동 상태에 놓인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고용안전망을 필요로 하는 대상자는 총 2400만 명에 달하고 사각지대 규모는 앞서 전병유(2009)의 계산값에 230만 명을 추가해 총 1050만 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 [그림2] 고용보호 대상자 ⓒ 새사연
보편적 사회보장을 위해 대상을 확대해야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부류 중에서 대표적인 집단 세 가지를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로서 사회보험료 납부의 부담을 느끼고 있는 집단, 둘째, 자영업자들로써 법적으로 아예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배제된 집단, 그리고 셋째, 청년실업자들로서 현행 보험중심의 고용안전망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들이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흔히 한국의 고용안전망이 정규직 임금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경직된 '보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보자면, 의무가입의 대상을 확대하거나 연대급여와 같은 부조 성격의 제도를 가미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국가가 부담하거나 누진적 요소를 강화함은 물론이다. 예컨대, 청년실업자 등 실업급여 수급이 배제된 자에 대한 2차 급여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최저임금미달 소득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면제와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사회보험료 부과를 동시에 실시함으로써 재원을 확보하기도 한다.
고용안전망의 확대는 '배제된 자'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것으로써 필요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경제적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금융과 부채로 소비를 만들어내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넘어서 고용으로부터 안정적인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은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불안은 급격한 소득 감소를 낳고 이는 소비 위축과 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으로 나아간다는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도 도출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상동 기자는 새사연 경제연구센터장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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