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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의 항변 "제 책임만큼 금융당국도 책임 있다"

[국감-정무위] 금감원장 "황 전 회장은 희생양 아니다"... 황영기 사태 공방 치열

등록|2009.10.23 18:36 수정|2009.10.23 18:52

▲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 겸 우리은행장(자료 사진). ⓒ 우리은행 제공

"제가 책임 있는 만큼 (금융) 당국도 책임이 있으며, (제가) 책임이 없는 만큼 당국도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작심한 듯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다.

이날 국감장은 미소금융과 이정환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 사퇴 파문 등 정부의 관치금융 문제뿐만 아니라, 이른바 '황영기 사태'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의 금융 정책당국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다.

황 전 회장은 지난달 정부 금융당국으로부터 과거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큰 손실(1조6000억원)을 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KB 금융지주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황 전 회장은 이후 "억울하다"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발언을 자제해 왔다.

특히 이날 국감 증인으로 나온 황 전 회장이 어떤 발언을 할지, 또 금융정책 당국이 어떻게 반박할지 관심을 모았다. 실제 우리은행 투자 과정과 징계 등에 대한 황 전 회장과 금융감독 당국의 견해는 확연히 달랐다. 황 전 회장은 이번 징계에 대해 "향후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황 전 회장은 희생양이 아니며, 부실투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황영기 전 회장 "구체적 투자 지시 없었고, 투자상품 몰랐다"

여야 의원들은 우리은행의 투자 손실에 대해 황 전 회장 등 우리은행의 무리한 외형 확대 경쟁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대주주였던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의 책임론도 강하게 따져 물었다.

우선 우리은행이 지난 2005년에서 2007년까지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투자한 것에 대해,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황 전 회장에게 "파생상품 투자는 본인의 아이디어였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황 전 회장은 "해당 상품에 투자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우리은행장 시절 이런 파생상품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인기가 있는 상품이었다"면서 "당시 투자은행(IB)사업단에 선진적인 상품에 투자하라고 주문은 했지만, 이 상품에 투자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용등급) A등급 이상의 상품에 투자하게 돼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상품에 투자하는지는 실무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상품에 대한 투자 지시는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참고인으로 나온 홍대희 당시 우리은행 IB사업단장도 '황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투자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은행장의) 지시에 따라 투자하지 않았다"면서 "(투자) 전결권이 (부행장급으로) 내려와 있어서 특이한 사항 외에 보고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해당 금융상품의 위험성은 몰랐느냐'는 질문에 대해, 황 전 회장은 "은행의 리스크관리위원회에 투자는 A등급 이상의 (금융상품에) 투자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 전 회장이 해당 금융상품이 A등급 이상인 우량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하자,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우량 상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정부 징계 내용이 유일한 진실인양, 사실과 달라"- "무엇이 다른가"

▲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3일 오전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감사시작을 기다리며 물을 마시고 있다. ⓒ 남소연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나왔다. 우리은행의 대주주였던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상품의 손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때가 지난 2007년 3월인데다, 뒤늦게 2년이 지나서 황 전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처분 등의 징계를 내린 부분을 문제 삼았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금융당국이 그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이 나오니까 뒤늦게 증인(황 전 회장)에게 잘못을 덮어씌운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은행에서 CDO, CDS 손실이 계속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금융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가장 크다"며 "결국 책임을 회피하려고 황 전 회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여당인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도 "황영기 회장도 시대의 희생양이 아닌가 싶다"면서 "과연 금융당국의 위기 관리가 충분할 정도로 돼 있었느냐는 맥락에서 보면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황 전 회장에게 "이번 투자 손실에 대해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황 전 회장은 "제가 책임이 있는 만큼 (금융) 당국도 책임이 있으며, (제가) 책임이 없는 만큼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황 전 회장은 또 "(금융)감독원의 징계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소명하려고 애를 썼다"면서도 "금감원에서 징계를 발표하면서 저의 소명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고, 유일한 진실인양 알려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창 감독원장은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 구체적으로 내놔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종창 감독원장 "황 전 회장은 희생양 아니라, 부실투자에 대해 책임진 것"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진동수 금융위원장에게 "황 전 회장의 구체적인 징계사유를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진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장이 자세히 알기 때문에 (금감원장이) 답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이 의원은 다시 "금융위에서 최종 징계를 의결했는데, 위원장이 어떻게 국감장에 사유도 모르고 나올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뒤늦게 나서 "은행법 23조3항의 내부통제 규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있다"고 답하자, "고의로 위반한 것인가, 과실인가"라고 이 의원이 물었고, 다시 김 원장은 "위반과 관련한 규정이 여러 가지로 많고, 일일이 말하기에는 시간이 걸려서..."라고 답했다.

이어 김 원장은 "황 전 회장에 대한 징계는 (파생상품에) 투자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내부통제 등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법령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황 전 회장은) 희생양이 아니라, 투자 과정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 투자 손실에 대한 예금보험공사나 금융당국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진동수 위원장은 "예보에 대해선 기관주의 조치를 취했고, 관련 인사에 대한 징계 여부는 예보사장과 앞으로 의논해 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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