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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에 나는 어떻게 될까, 또다시 백수?

행정인턴 계약종료 앞두고 밤새도록 이력서를 써보지만

등록|2009.10.27 08:32 수정|2009.10.27 08:32
2009년 1월 19일, 집 근처 주민센터에 행정인턴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나이는 먹어가는데 아무것도 안 하냐'는 어머니의 성화에 정말 울며 겨자먹기로 지원했던 행정인턴이었다.

행정직과 기술직, 사회복지직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처음엔 행정직으로 쓸까 고민도 했었다. 사회복지로 지원한 사람이 적으면 행정 지원자 중에서 채운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래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아서 행정직 대신 사회복지직을 택했고, 난 집 근처 주민센터에서 약 10개월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약 20년을 살면서 '우리 동 주민센터(내가 사는 곳은 울산 남구 삼산동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많아서 복지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먼저 행정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 없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아예 가서 읽을 책까지 챙겨서 출근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 책을 펼 수 없었다. 주민센터 민원대 뒤에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내가 앉아있는 바로 그 자리, 사회복지업무를 보는 곳이 그 전쟁의 중심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행정인턴

사회복지 업무 행정인턴교육지난 2월 12일 오전 숙명여대에서 보건복지가족부 주최로 열린 '사회복지 업무 행정인턴교육'에서 인턴 대학생들이 관계자로부터 직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첫 날은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인터넷만 하다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내게 일이 하나씩 주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복지대상자들의 전출입 관리 업무가 주어졌고, 그 업무가 손에 익을 때쯤 영유아 보육료 지원 지침을 익히게 되었다.

지침을 겨우 익힐 때쯤 보육료 집중 신청기간이 되어 하루에도 10여명씩 몰려오는 민원인들을 일일이 상대하고 쏟아져오는 문의 전화들을 다 받아냈고, 집중신청기간이 끝나 있을 땐 지침을 보지 않아도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민원인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후 기초생활수급자와 법정 한부모가정의 전출입 서류를 체크하고 보육료 지원자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를 조사하는 것까지 맡게 되었으며, 지금은 수급자나 한부모 가정의 혜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기초적인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가끔 수급자분들이 나를 보고 '복지사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 정도로, 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많이 맡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면서 조금이라도 혜택을 보려는 부모들과 또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에 갑자기 직장을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겉으로 보기엔 잘 사는 동네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복지 혜택이 아예 필요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일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복지 혜택을 많이 알게 되어 '사회복지분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라는 목표를 나름대로 달성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기초생활수급자와 법정 한부모 가정, 영유아 보육료 지원, 기초노령연금, 장애인 등록과 복지혜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물론 이 혜택 하나하나가 사회복지 창구를 전쟁터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살짝 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보람있게 일을 하고 있다.

한 달 뒤면 계약 종료, 별 도움 안되는 취업 지원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종합고용센터에서 구직공고를 살피고 있는 한 실직자의 모습 ⓒ 송주민

하지만 이런 보람도 이제 한 달 뒤면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된다. 2009년 11월 18일부로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 그래서 밤마다 취업사이트를 쑤시고 다니며 입사지원서를 계속 넣어보지만, 내게 돌아오는 대답은 '서류전형 탈락'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가끔 면접을 보러 가도 그뿐. 면접 이후에 더 이상 소식 없는 회사들. 계약 종료는 하루 하루 다가오는데, 불안함과 초조함,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울 때가 많다.

시청과 구청에서도 계약기간 후반기가 될 때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인턴들이 많아서 그런지 취업 관련 교육을 듣게 한다. 나 역시 시청에서 한 번, 구청에서 한 번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형식적인 강의에 그친다.

처음엔 국정 홍보 동영상을 보여주고, 그 다음엔 유망 직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하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으며, 면접은 또 어떻게 보면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이 강의 자체는 유익한 편에 속하지만, 결국 몇 번 듣다 보면 다 비슷한 내용의 강의가 전부다.

그리고 행정인턴 중 우수 행정인턴 10%를 선발하여 입사추천서를 써주는데, 문제는 이 입사추천서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느냐이다. 시청에서 취업 교육을 할 때 나눠준 책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추천조회(reference check)는 미국 등에서 보편화된 채용절차 중 하나로, 이력서에 나타나지 않는 품성, 네트워크 등을 확인하는데 효과적임'.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채용절차가 보편화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입사추천서를 내주려면 그 입사추천서가 취업 때 어느 정도 가산점이 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놓거나 회사의 채용 조건 중 우대사항에 '행정인턴 입사추천서' 등을 넣게 해야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제도적인 장치가 없는 이상, 입사추천서는 그저 프린트된 종이 한 장에 불과할 뿐이다.

여전히 불안한 내 마음, 한 달 뒤에는 어떻게 될까?

이제 남은 기간은 한 달 정도. 인턴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 감사했던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 기간 동안 배운 실무적인 부분들은 행정기관을 벗어나면 쓸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턴 교육 때마다 어느 기관이든 행정기관과 연계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인턴의 경험이 매우 소중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그것도 다 취업이 된 이후에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불안한 내 마음. 한 달 뒤의 난 어떻게 될까? 다시 도서관과 집을 전전하면서 살게 될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시기에 계약이 끝나는 1만 8천여명의 인턴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위로를 받으며, 오늘 하루도 그렇게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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