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계약서조차 없는 그들을 학생은 교수라 부른다

[보따리강사 이야기 22] 국감서 제기된 시간강사 문제, 또 일회용?

등록|2009.10.25 21:34 수정|2009.10.25 21:34
"시간강사 수당 최저1만9000원"
"국공립대 62%, 시간강사와 근로계약서 작성 안해"
"전체 시간강사 88.3%, 6개월 이내 단기계약으로 고용불안"

올 국정감사에서 시간강사 문제가 전례 없이 부각됐다. 지난 7월부터 효력을 발휘한 비정규직법의 적용을 놓고 각 대학들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서 많은 시강강사들이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정규직법 발효 후 전국 각 대학 시간강사들 중 전화 한 통에 강단을 등진 이들이 1000여명이 넘는다. 국감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 문제는 논란이 됐다. 지난 9월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에서 제출받은 '대학별 시간강사 해촉 현황'에 의하면 전국 112개 대학에서 시간강사 1219명이 해고됐다.

시간강사 문제 국감서 집중 거론...'국감용', '일회성 폭로용' 의구심

교육부 국정감사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이주호 1차관이 6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해촉된 강사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 시간강사들은 대학본부와 근로계약서도 없이 각 학과 사무실 조교와 전화 또는 구두로 맺어진 계약관계기 때문에 아직도 해촉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강사들이 부지기수라는 게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측의 주장이다.

그나마 올 정기 국감에서 '대학의 유령', '보따리 장사', '상아탑 노예'로 일컬어져 왔던 시간강사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적과 논의가 정기국회에서 다뤄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문제가 단순한 '국감용'이란 지적은 지나친 기우이길 바라는 강사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동안 국회에서는 각 대학들 마다 안고 있는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자 큰 병폐로 지적돼 온 비정규직 교수들의 교원지위회복에 관한 문제, 즉 시간강사들의 불안정한 신분과 맞물린 고등교육법개정안을 몇몇 의원들이 발의했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번번이 자동폐기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동안 진행돼 온 국감에서 제기된 대학 비정규교수 문제들을 정리하고 남은 과제들을 짚어보기로 하자.

우선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교과위) 소속 의원들은 국감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9월부터 시간강사 문제에 불씨를 던지기 시작했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10일 교과부에서 제출받은 '대학별 시간강사 해촉 현황' 자료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어 22일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교과부에서 제출받은 전국 117개 대학에서 제출한 시간강사 4대 보험 적용 현황 자료를 공개해 거센 해고바람을 맞고 있는 전국 각 대학 시간강사들에게 충격을 더했다.

여기에 29일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4년제 170개 대학으로부터 받은 '2008년도 시간강사 급여 및 강의비율'을 공개해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게 했다. 강사들의 실질적 급여나 다름없는 시간당 수당이 최저 1만9000원부터 최고 9만7000원까지 4~5배에 달하는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국내 국공립대 62% 시간강사와 근로계약서 작성하지 않아" 충격

그러나 논란만 증폭되었을 뿐 전국 112개 대학에서 해고된 대학 시간강사의 수 1219명 외에 추가 자료가 밝혀지거나 공개되지 않았다. 또 대학마다 천차만별인 시간강사 강의료 공개를 놓고도 각 대학이 이를 보도하거나 공개한 언론사나 기관에 강한 불만과 항의표시를 하는 바람에 쟁점이 점점 희석되고 말았다. 결국 '국감용' 또는 '일회성 폭로용'이라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교과부와 해당 대학들도 분명히 드러난 문제점과 부당한 처우에 관해서 그저 방관만하고 있을 뿐, 별다른 후속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도 '짜고 치는 쇼'라는 의구심에 한 표를 더해준다. 다행히 부당한 시간강사 처우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아탑 내부의 문제들이 국감 종료 시점까지 계속 공개됐다는 점에선 과거와 분명 달랐다.  

국감 막판까지 대학사회에 충격적인 자료들이 공개됐다. 국내 국공립대 가운데 62%가 시간강사와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강사들과의 법적 분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22일 교과회 소속 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이 전국 국공립대 21곳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13개(61.9%) 대학에서 시간강사에 대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대학은 부산대, 인천대, 한국체육대, 충남대 제주대, 안동대, 서울산업대, 강원대, 금오공대 등 8개교(38.1%)에 그쳤다.

사립대 등 다른 대학들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대학들이 근로조건과 이행의 가장 전제가 되는 유상쌍무계약서를 구두계약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것은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대학 시간강사는 근로기준법상 기간제 또는 단기간근로자에 해당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며 노동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이를 어길 경우 500만원 미만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에 대해 임 의원은 "대학의 시간강사는 근로기준법상 기간제 또는 단기간근로자에 해당하므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현재와 같이 시간강사의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명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적 분쟁이 증가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임교원 확보율 저조...정부 스스로 대학 위법행위 눈감아 주는 꼴"

이렇듯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오늘 대학사회 현실이다. 대학교육의 3분의1을 시간강사에게 의존하면서 근로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다면 교육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각 대학들이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음이 국감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한 지방대 국감을 마친 뒤 "시간강사 처우문제를 고질적 문제로 취급해 외면하기보다 현재 시간강사들이 겪고 있는 불안정한 신분과 불합리한 급여조건이 교육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시간강사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전임교수 확보율을 높일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대학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전문대학의 평균 교원확보율은 53.7%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영아 의원이 지난 12일 '2008~2009년 전국 지역별 전문대학의 전임교수 확보율'을 분석한 결과, 전국 146개 전문대학의 평균 교원확보율은 53.7%로 겸임교수와 초빙교수 등을 포함하더라도 84.3%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시간강사 담당비율은 30% 미만인 곳이 4년제 대학의 경우 40.5%인 것에 반해 전문대학은 19.8%로 크게 뒤쳐졌다. 반대로 시간강사가 50% 이상 수업을 맡고 있는 곳이 4년제 대학의 경우 7.5%에 불과했지만, 전문대학은 35.3%나 돼 극심한 차이를 보였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대학설립운영규정 제 6조 제1항 및 2항에 의거한 대학 내 교원법정정원 산출기준이 명백히 정해져 있지만, 전국의 모든 전문대학은 시간강사에만 의존한 나머지 법으로 정해진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이를 가리켜 "정부 스스로 대학의 위법행위를 눈감아 주고 있는 꼴"이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국내 시간강사들의 평균 수당은 37000원인 것으로 나타났고 가장 적게는 1만9000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8000명이 넘는 시간강사들이 3개 이상의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것으로 국감 과정에서 드러났다.

"시간강사뿐만 아니라 초빙교원 등에 대한 인사규정도 개선해야"

"전업 강사 지위 보장 시급하다"14일 <교수신문>의 기고 글. ⓒ 교수신문




이처럼 대학 시간강사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감 때마다 이슈로 제기되고, 국회가 바뀔 때마다 시간강사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되지만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법 개정 논의가 제자리를 맴돌면서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이 교과부에서 제출받은 117개 4년제 대학의 4대 보험 가입 현황(2009년 기준)을 보면 국민연금을 보장하고 있는 대학은 1곳(0.9%)에 불과했다. 건강보험을 보장하고 있는 대학도 3곳(0.9%)뿐이었다.

2003년부터 법적으로 가입이 가능해진 고용보험의 경우에도 가입률이 50.4%(59곳)에 그쳤고, 그나마 산재보험만 85개 대학(72.6%)이 가입돼 있다. 2007년부터 최근 3년간 4대 보험 가입률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시간강사의 88.3%가 6개월 이내의 단기계약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재윤 한국교육개발원·수석연구위원 14일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 '전업 강사 지위 보장 시급하다'에서 "그렇다면 향후 시간강사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라고 물은 뒤 대안을 이렇게 제시했다.

"대학은 그 인사규정에서 시간강사 모두를 비전임이라 하여 획일적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세분해 직업 보유 여부, 강의 담당 시간 수 등을 고려해 전업시간강사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등교육법은 모든 시간강사를 비전임으로 취급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만약  현행 고등교육법 제17조가 모든 시간강사를 비전임으로 취급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면 시간강사 중 사실상 전임 교원 만큼 일하는 사람들은 그에 상응한 대우를 하도록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는 "나아가 대학들은 시간강사뿐만 아니라 초빙교원 등에 대한 인사규정도 개선해야 한다"며 "시간강사, 겸임교원, 초빙교원 등 다양한 교원들을 비전임 교원으로 획일화해취급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합리적이고 세부적인 규정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비정규교수 노조,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루 빨리 교원지위 부여해야"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 홈페이지국감이 끝나자 마자 성명을 낸 비정규교수 노조. ⓒ 한국비정규교수 노조




이처럼 올 국정감사 기간 동안 시간강사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과 현행 고등교육법의 개정 필요성 등에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럼에도 이러한 심각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정작 해당 부처와 국회 내부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위원장 윤정원)은 국감이 사실상 마무리 된 지난 23일 '국회와 교육과학기술부의 무사안일한 행태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교과부는 대학을 감독할 의무가 있음에도 대학의 편법을 눈감아 왔다"며 "국회와 정치권은 선거 때만 되면 비정규교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매번 내년 아니면 다음 국회에서 보자고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더구나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회와 교과부는 비정규교수들에게 교원의 지위를 회복시켜 대학교육을 제대로 세워보고자 하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며 "이에 우리 비정규교수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교과부와 각 대학은 지난 30여 년간 비정규교수에게 대학 강의의 절반을 맡겨놓고도 비인간적인 처우를 해왔다"며 "그들은 비정규교수들에게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시간급 대우를 하고, 거의 모든 사회안전망에서 배제시켜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의 대학은 '개혁'이나 '혁신'이 필요한 단계가 아니라,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정상화'없이 이루어지는 대학개혁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책임을 국회와 교과부가 통감하고 시급히 올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고등교육법을 개정하여 대학 강사와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루 빨리 비정규교수들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며 "그 길만이 한국의 대학이 정상화되고, 진정으로 대학이 개혁되고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