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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부끄러운 '담양 창평 슬로시티', 체계적인 관리 아쉬워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에 가다

등록|2009.10.26 17:44 수정|2009.10.27 14:37

▲ 삼지천마을 토담 길은 향촌 마을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 조찬현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곳, 느리고 불편해서 이름난 곳이 있다. 그러나 이름은 좀 생경하다. '슬로시티'다. 담양 삼지천마을, 장흥 유치면,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2007년), 하동 악양면(2009년)이다. 이 5개 마을은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그중 '담양 창평 슬로시티' 삼지천마을을 찾아가봤다. 삼지천은 월봉산에서 발원한 세 개의 물줄기(월봉천, 운암천, 유천)가 마을로 모여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담양 창평면 삼지천마을의 물줄기는 아쉽게도 수십 년 전 하천복개공사로 인해 말라 버렸다.

▲ 면사무소 앞 7그루의 느티나무는 그 수령이 자그마치 130~200년이나 됐다. ⓒ 조찬현


삼지천마을 토담 길은 향촌 마을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면사무소 앞 7그루의 느티나무는 그 수령이 자그마치 130~200년이나 됐다. 느티나무의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창평면이 슬로시티에 포함되어서일까. 창평 어느 곳에도 슬로시티를 알리는 이정표나 입간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곳 관계자는 초행길이라는 어느 관광객이 무심코 내던진 "이정표가 하나도 없네! 창평 엿이 유명하다던데 초행길 관광객에게 엿 먹이려는 건지 이거~ 원!" 말을 새겨들을 일이다.

이강식(45.경기도 오산)씨는 대충 짐작으로 찾아왔다며 오는 길에 이정표를 전혀 볼 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오는 길에 이정표가 하나도 없었어요, 대충 짐작으로 왔어요."

▲ 새롭게 쌓아올린 담장을 보고 한 관광객은 옛 정취를 느낄 수가 없어 아쉽다고 했다. ⓒ 조찬현


▲ 담장에 돌출된 현대식 시멘트 건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조찬현


토담 길을 걷는다. 길 초입에서부터 새롭게 쌓아올린 담장을 보고 한 관광객은 옛 정취를 느낄 수가 없어 아쉽다고 했다. 도로는 시멘트 포장길이다. 담장에 돌출된 현대식 건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옛 담장에 기대선 전봇대 역시 이빨에 낀 음식찌꺼기 마냥 거북살스럽다.

광주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창평 삼지천의 슬로시티가 너무 산만하다고 지적했다.

"너무 산만하네요."

충북 진천의 임승혁(48)씨는 담장에 "황토 흙을 사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할려면 제대로 했으면 좋았을 걸."

관광객들은 대체로 담장을 복원하는데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옛 가옥을 복원하고 있는 건설업체 관계자는 "여기는 황토가 귀해요, 그래서 논흙을 쓴 거죠"라고 말했다.

창평 고씨 집성촌인 삼지천 마을에는 100여 년 전 한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재환(고광표) 고가, 고재욱 고가, 고재선 고가 등이 남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토담 길에서 여유로움을 언제나 느껴볼 수 있을까. 대문에는 이 마을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었던 '창평엿'이라고 쓰인 낡은 간판이 허허롭다.

▲ 물의 흔적도 없이 말라버린 연못의 섬에 오죽들은 시름시름 앓기라도 한 듯 힘이 없어 보인다. ⓒ 조찬현


▲ 방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다. ⓒ 조찬현


▲ 고풍스런 외형과 방의 곰팡이가 사뭇 대조적이다. ⓒ 조찬현


▲ 옛 돌담길에 현대식 대문, 신구의 묘한 조화가 슬로시티 마을과는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 조찬현


고재선 가옥은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 헛간채가 있다. 입구에서 동네 아낙들이 모여 콩 타작을 하고 있다. 마당에 가로 놓인 기와 길이 이채롭다. 물의 흔적도 없이 말라버린 연못의 섬에 오죽들은 시름시름 앓기라도 한 듯 힘이 없어 보인다. 열린 문을 들여다봤다. 방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다. 고풍스런 외형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고재선 가옥은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5호다. 보다 철저한 관리가 아쉬운 대목이다. 이어지는 돌담길, 옛 돌담길에 현대식 대문, 신구의 묘한 조화가 슬로시티 마을과는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차 없는 거리 조성에 다함께 동참합시다."

▲ 내걸린 현수막이 낯부끄러울 정도다. 현수막 너머로 차량들의 물결이다. ⓒ 조찬현


▲ 고샅길도 마찬가지, 차량들이 군데군데 차지하고 있다. ⓒ 조찬현


내걸린 현수막이 낯부끄러울 정도다. 현수막 너머로 차량들의 물결이다. 고샅길도 마찬가지, 차량들이 군데군데 차지하고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통행에 많은 불편을 준다.

'느려서 행복한 삶~ 담양 창평 슬로시티' 구호가 공허하다. 아직은 느려서 속 터진다.

슬로시티(Slow city)운동은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에서 시작됐다. 슬로시티의 슬로건은 한가롭게 거닐기, 듣기, 권태롭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을 찾기, 글쓰기 등 무한 속도 경쟁의 디지털 시대보다 여유로운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슬로시티(SIow City)는 '불편함이 아닌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다림'을 주제로 하며, 급하고 빠르게 사는 것보다 천천히 살며. 자연과 인간의 삶을 조화롭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추구하면서,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내 이웃과 더불어 사회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지향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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