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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외롭지 않습니다"

'대마도는 본시 우리 나라땅' 돌비

등록|2009.10.26 21:57 수정|2009.10.26 21:57
독도에 사는 사람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우리땅!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도동 1번지 동경 백 삼십이 북위 삼십 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땅 우리땅!"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의 전화 통화연결음의 2절가사가 다 흘러나올 때까지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시 핸드폰으로 번호를 눌렀습니다.
"김성도입니다."
"집 전화를 받지않아서요."
"바다에 나왔습니다."

독도주민 김성도씨에게 전화를 드린 시간이 아침7시였습니다. 매일 아침 6시부터 2시간쯤 독도 주변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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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2006년 2월부터 독도에 거주하고 있는 김성도씨는 주로 방어나 문어 같은 것을 잡아 어민숙소에 함께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생계는 제주도 해녀출신의 부인께서 물질을 해서 잡는 홍합을 울릉도로 가는 관광선에 실어 보내는 방식으로 꾸리고 있습니다. 김선생님 부부는 국토해양부에 소속된 서도의 주민숙소에서 생활합니다.

최초의 독도 주민이었던 최종덕씨가 살던 곳에 97년 새로 건립한 주민숙소는 창고를 겸하고 있는 지층의 기반시설인 피트feet를 제외하면 2층의 콘크리트구조물입니다. 파도가 직접적으로 들이치는 것을 줄여주는 완파緩防波시설이 곁들여졌으며 1층의 한 공간과 2층의 3공간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1층은 현재 '독도 문화재관리인'2인이 상주하고 있고 2층의 3공간 중 한 공간은 김선생님 부부가 사용하고 있고, 한 공간은 포항MBC에서 제작하고 있는 '독도 365일 자연다큐'의 제작팀이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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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독도는 우리땅'가사는 일부 바뀌어야합니다. 2절의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도동 1번지'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가 되어야하지요. 2000년 울릉군 의회에서 '독도리(里) 신설과 관련된 조례안'이 의결, 공포됨에 따라 도동 소속에서 독도리로 새로운 주소가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성도씨(68세)는 현재 울릉읍 독도리의 이장입니다. 현재 독도에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이는 총 4명. 이장님의 부인인 김신열선생님(70세)과 등대원 2명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을 포함한 4인을 행정적으로 대표하고 있지요.

독도에는 총 47명 정도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김선생님 부부와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명, 포항지방해운항만청 소속의 등대원 2명, 그리고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의 독도경비대원들입니다. 포항MBC의 다큐제작팀 같은 임시 체류자를 제외한 숫자입니다.

울릉도는 2005년 6월에 울릉군청의 문화관광과에서 관장하던 독도업무를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를 신설하고 이 사무소로 이관했습니다. 독도관리사무소 18명의 직원 중 독도를 관장하는 행정선인 177톤급의 '평화호'에 7명이 근무하고, 6명이 '문화재관리인'으로 독도에 10일씩 교대로 어민숙소 1층에서 상주근무하고 있습니다. 저와 오늘 긴 시간 통화하신 오병훈씨도 이 6인중의 한사람입니다.

등대원은 총6명이지만 숙식이 가능한 등대에서 3명씩 한 달 간격으로 교대근무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에너지 자원인 불타는 얼음 '가스 하이드레이트

저는 지난 2009년 8월 18일 '헤이리 영토문화관 독도'가 주최한 '문화예술인 독도 탐방단'의 일원으로 독도 땅을 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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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독도는 전형적인 행양성 기후로 연중 85%가 흐리거나 눈비가 온답니다. 단지 54일 정도만 맑은 날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3월초부터 11월말까지 하루에 두차례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삼봉호의 최흥식선장님께서는 기상 때문에 10번에 4번 정도만이 접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독도를 찾아오더라도 60%의 사람들은 섬을 선회하는 배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접도를 하드라도 '20분 체류규정'때문에 20분간 접안지에서 머물다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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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독도에 발을 딛는 사람들은 대부분 감격스럽거나 감동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마치 길에서 잃었던 어린 아들을 천신만고 끝에 다시 만난 어머니의 마음 같다고나 할까요.

저희 일행도 애국가 연주, 시낭송, 서예퍼포먼스, 위문품전달 등 각 단체의 독도사랑 행사에 열중한 나머지 특별히 허가받은 80분간의 체류시간을 모두 허비하고 동도의 정상에 오르도록 사전에 어렵게 허가받은 일정을 뒤로 하고 다시 승선해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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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독도에서 돌아온 후 헤이리주민들을 대상으로 독도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헤이리영토문화관독도'의 안재영관장께서 독도의 가치에 대해 강연하시고 저는 독도여행에 대한 발표를 가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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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안선생님은 열띤 강연은 여러 사람들에게 막연했던 독도의 가치를 훨씬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했습니다.

"독도는 지상에 보이는  동도와 서도인 2개의 바위섬과 주위 89개 바위와 암초의 5만7천평이 전부가 아닙니다. 바다 밑에는 한라산보다 높은 2,268m의 해산이 있으며 인근 해역에는 불타는 얼음이라고 일컬어지는 미래의 에너지 자원인 '가스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가 엄청난 양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법상 섬으로 이정받기위한 물이 나오고 나무가 자라며 사람이 살 수 있는 자연 섬이어야 된다는 3가지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도는 영해 12해리 수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일본의 터무니없는 탐욕으로 인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외측 한계선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지요. 일본이 혼슈에서 남쪽으로 1,740km나 떨어진 '오키노도리'라는 직경 5미터도 안 되는 바위 위에 480억엔(약5000억원)이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높이3미터 길이 50미터가 넘는 인공섬을 만들어서 그 섬을 중심으로 영해와 경제수역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독도가 지닌 가치가 자명해집니다. 독도가 일본의 소유가 되었을 때를 가정한다면 반대로 독도를 기준으로 한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이 설정될 것이고 이것은 군사적으로도 일본의 고성능잠수함들에게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포함한 동해의 해상통제권을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는 셈입니다."

전직 독도경비대장과의 대화를 통해서 독도의 가치는 더욱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독도의 영해 밖에는 일본의 순시선이 일주일에 평균 한 번씩은 나타나 영해 밖에서 선회하고 갑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레이더에 나타난 것을 통보하면 해경정이 연해안에서 그들을 막고 감시하게 됩니다. 독도 근해는 중요한 바닷길이기도합니다. 레이더에는 어선과 상선 그리고 순시선이 다르게 구분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무시로 러시아 상선이 통과합니다."

.울릉도의 독도전망대. 이곳에서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는 날은 연중 50일 정도의 맑은 날에만 가능합니다. ⓒ 이안수


독도를 여전히 한국땅일 수 있게 한 것은 이 땅의 범부들

전세계의 굿디자인상품을 취급하는 무역회사인 두레샘의 대표이기도 한 안재영관장은 20여 년 전 대학3학년 때 활동했던 '외대독도연구회'의 일원으로 독도관련 자료를 모으고 '울릉도-독도' 뗏목탐사'에 참여했던 열정을 가슴속에 불씨로 간직해오다가 사재를 투입하여 헤이리에 영토문화관을 세워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90%가 넘는 국가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가르치고 있는 현실에서 '조선시대 고지도'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구호만으로 일본이 망언하는 입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중앙정부의 관심 밖이었던 독도를 지켜낸 것은 이 땅의 범부凡夫들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어부 안용복과 울릉도 주민들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들이었지요. 독도는 이렇듯 범부의 관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범부인 제가 나선 것일 뿐입니다. "

.울릉군의 독도 박물관에 전시된 안용복의 도일 행로도.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등 2차례에 걸쳐 도일해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영토분쟁에 대해 일본측의 잘못을 인정받았습니다. ⓒ 독도박물관


.영토문화관독도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재영관장 ⓒ 이안수


울릉도의 한 주민이 얘기했습니다.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은 1년에 30만 명쯤입니다. 제주도는 일일 20만 명이나 된답니다. 울릉도는 평지가 없는 악산이므로 농사를 지을 수도, 점점 고기가 사라지는 바다의 소출에 목을 맬 수도 없습니다. 점점 더 관광객들에게 기대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관광객이 제일 많이 오는 때가 언제인지아세요? 7-8월 휴가철? 아닙니다. 일본이 독도를 찝쩍거릴 때입니다. 그 때는 대한민국의 애국자들이 너나없이 울릉도로 몰려옵니다. 그러니 울릉도가 잘 살기위해서는 수시로 일본이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찝쩍거려주어야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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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안재영관장이나 울릉도 주민의 말처럼 일본과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논쟁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 명백한 일본의 국토 침탈행위에 대한 대응은 일회성의 각종 퍼포먼스 같은 감성적인 대응보다는 국제적으로 일본의 부당함을 입증할 수 있는 논리적인 대응이 더 절실합니다.

10월 25일은 울릉군이 '독도의 날'로 선포한 날입니다. 고종황제께서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를 통하여 울릉도와 석도(독도의 옛 이름)를 울릉군수가 관할토록 공포한 날'을 기념한 것입니다. 경북도의회는 10월을 '독도의 달'로 정했습니다. 또한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하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2004년 12월, 국회에 대한 1차 청원이 있었고, 2008년 8월 80여명의 국회의원과 일반인 59,268의 서명을 받아 2차 청원을 한 상태입니다.
독도의날 제정과 관련해 안재영관장님이 마음을 쓰는 일이 있습니다.

"청원이 받아들여져서 국회가 독도의 날을 제정하드라도 제정년도에 관계없이 '제1회'가 아니라 고종황제 칙령 41호가 공포되었던 1900년10월 25일을 기점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2005년 2월 22일부터 독도의 일본식 표시인, 다께시마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는 일본측의 조치에 끌려가는 빌미를 줄 수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 한다면 올해는 바로 109돌 독도 주권 선포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도의 날'의 제정은 두가지면에서 사리에 맞지 않다, 싶습니다. 첫째는 독도의 날이 필요하다면 '마라도의 날'도, '홍도의 날'도, '백령도의 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대한미국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땅에 발 딛고 살므로 '대한민국의 날'의 제정이 필요하지 않듯 '독도의 날'이 필요치않다는 것입니다. 단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제정은 사실과 다른 억지 주장을 홍보하기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겠지요. 두번째는 '독도의 날'이라는 것이 오늘만 독도에 관심을 보이면 나머지 날들에 무심해도 면피가 되는 면죄부를 주는 듯 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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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대마도는 본시 우리 나라땅

일본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대응해 마산시 의회가 조선 초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을 기념일로해서 제정한 '대마도의 날'은 시마네현의 억지에 '눈에는 눈'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식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차라리 합당하다 싶습니다.

독도박물관 입구의 독도야외박물원에는 '대마도는 본시 우리 나라땅'이라는 자연석에 음각된 돌비가 있습니다.

그 기단에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의 명령으로 일본측에서 제작한 '조선국지리도朝鮮國地理圖'의 '팔도총도八道總圖'에 대마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지도와 대마도가 '경상도 계림에 속한 본시 우리 땅'이며 '본래 조선의 말 기르는 땅'이라는 '세종실록'의 기록 등이 새겨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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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울릉도에서 가장 경기가 가장 좋을 때는 관광성수기 때가 아니라 일본이 '독도가 아니라 다케시마'라고 독도의 일본영유권을 주장하는 망언이 나올 때'라고 했던 울릉도 주민의 얘기가 여전히 뇌리에 맴돕니다. 그때는 위정자들과 애국자를 자처하는 단체의 장들이 몰려가겠지요. 방송과 신문 등 온갖 미디어들의 카메라들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미디어의 카메라 모델이 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나도 범부들의 노력은 여전히 독도에 남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달에 10일씩 독도에 근무하고 있는 오병훈씨의 말을 통해 고립된 곳의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상이 악화되면 동도와 서도를 왕래할 수도 없습니다. 부식이 끊길 때는 물고기가 식량대용일 때도 있습니다. 혹 병이 나거나 집안에 긴급한 일이 생겨도 날씨가 도와 주지않는 한 울릉도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개를  벗 삼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3마리의 물개가 동도와 서도 중간의 촛대바위에서 놀다갔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한 달이나 독도에서 지냈습니다."

독도 바다에서 어업 중에 전화를 받은 김성도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참 고요하고 멋지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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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과 홈페이지 www.motif1.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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