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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짜리 도로 맞아? 엉덩이 불나겠네

[우리동네 자전거길① 인천] 인천시청 주변

등록|2009.10.30 18:54 수정|2009.10.30 18:54
불과 몇 년 만에 자전거 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앞 다퉈 '자전거길'을 만들 정도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래서 직접 자전거길을 찾아 진단을 해봤습니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 온 시민기자들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자주 애용하는 자전거길을 찾아 문제점과 개선사항 등을 짚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일요일(25일) 낮 2009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정규리그 마지막 안방 경기(vs FC 서울)를 보러 가기 위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집에서 남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월드컵경기장까지는 자전거로 65~70분 정도가 걸린다.

몇 해 전부터 달린 길(계산동-청천동-산곡동-부안 고가-간석오거리-인천시청-문화예술회관-월드컵경기장)이라 이제는 꽤 익숙해졌는데 최근에 인천 시청을 중심으로 새 자전거 길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300억원 자전거길 직접 달려봤더니...

▲ 구월중학교에서 인천 시청 방향의 오르막 ⓒ 심재철


인천시는 지난 6월부터 300억원 가까이 써 가면서 남동구와 연수구에 약 100km에 이르는 자전거 길을 새로 꾸몄다고 알려졌고 연말까지 다른 곳에도 자전거 길을 꾸미기 위해 몇 십억의 예산을 더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13년 5개월 넘게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는 고마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만든 길을 달려보니 고마운 마음이 가을 바람과 함께 싹 달아나고 말았다. 직접 타 본 사람들이 설계한 길이라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마디로 그럴싸해 보이기만 하는 자전거 길이었다.

▲ 인천 문예회관 사거리에서 시청 방향을 바라 본 자전거 길 ⓒ 심재철


인천 문화예술회관 사거리에서 인천 시청 방향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왕복 자전거 길을 새로 꾸민 것 때문에 이 길은 비교적 한가한 일요일임에도 상습 정체 구역으로 변하고 말았다. 만든 지 조금 오래 되었지만 보도 위에 이미 자전거 길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차도를 왕창 빼앗아 버려 '낭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 평일에 이 자전거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말 궁금하다. 카메라를 들고 서 있던 약 5분간 이 길을 자전거로 지나간 사람은 나 말고 단 한 사람 뿐이었다. 도심에 이 정도 규모의 자전거 길을 만든 이유가 뭘까? 통행량 조사는 제대로 한 뒤에 만들어 놓은 것일까? 인천 유나이티드 FC 주중(수요일) 경기에도 종종 달려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곳이 자전거 길로서는 얼마나 한가한 길인가를 잘 안다.

왕복 자전거길도 좋지만, 교통량 조사는 제대로 한 건지

▲ 중앙도서관 삼거리의 자전거 길 ⓒ 심재철


또한, 구조적으로 안전 운행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구석도 눈에 띄었다. 시청 옆 중앙도서관 삼거리의 횡단보도와 나란히 그어 놓은 자전거 길은 문화예술회관에서 시청 방향으로 우회전하는 차량과 항상 만나게 되어 있다. 차량 운전자나 자전거 운전자 모두 이러한 형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매우 위험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걷는 길과 자전거 길의 자연스러운 연결 구조를 융통성 있게 활용하면 이러한 위험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분리해 놓은 횡단보도 구조는 얼핏 보면 신선해 보이지만 이처럼 세심한 배려와 안전 조치가 모자랐다.

쭉 뻗는 자전거길, 엉덩이에 불 나겠네

이 사진은 지난해 인천 시청 주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때 새로 꾸며놓은 자전거 길이다. 인천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상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보기에는 시원스럽게 뻗어 있어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자전거 길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평탄 작업을 잘못한 길이다.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기 힘들 정도로 덜컹거린다.

▲ 석천 사거리에서 간석 오거리 방향의 자전거 길 ⓒ 심재철


이처럼 자전거 길 꾸미는 일은 보기에만 그럴듯하게 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준비 단계부터 매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실제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계획이 서 있다고 해도 꾸민 뒤에 실무자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폐해는 자전거 이용자만 입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더 이상 자전거 길이 애물단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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