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47)
[우리 말에 마음쓰기 785] '훨씬 소중한 존재', '그 나무를 위해서만 존재' 다듬기
ㄱ. 훨씬 소중한 존재
.. '코우'는 내 소꿉친구. 아니, 아니야. 소꿉친구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 .. 《타나카노카/손희정 옮김-타비와 길동무 (1)》(학산문화사,2008) 18쪽
┌ 소꿉친구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
│
│→ 소꿉동무보다 훨씬 소중한 동무
│→ 소꿉동무보다 훨씬 살가운 사람
│→ 소꿉동무보다 훨씬 애틋한 사람
│→ 소꿉동무보다 훨씬 깊은 벗
│→ 소꿉동무보다 훨씬 좋은 님
└ …
소꿉동무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놀던 동무를 가리킵니다. 중국사람한테는 '죽마고우'인 셈입니다. 이들, 소꿉동무나 죽마고우는 여느 동무하고는 견줄 수 없이 가까운 사이입니다. 살가움을 느끼고 애틋함을 느끼며 그리움과 반가움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오래 사귀며 알고 지냈으니 마음속 깊이 헤아립니다. 말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좋은 사람이곤 합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생각과 마음을 읽기도 하니, '너나들이'나 '어깨동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 소꿉동무보다 훨씬 그리운 사람
├ 소꿉동무보다 훨씬 보고픈 사람
├ 소꿉동무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사람
├ 소꿉동무보다 훨씬 생각나는 사람
└ …
보기글에서는 '코우'라고 하는 소꿉동무가 그 누구보다 떠오르면서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다면 소꿉동무 가운데 가장 살가운 소꿉동무라 할 텐데, 이런 소꿉동무는 우리한테 어떻게 느껴질까요.
사람마다 다르리라 봅니다. 누군가한테는 그리움으로, 누군가한테는 보고픔으로, 누군가한테는 사랑으로, 누군가한테는 지워도 지워도 또다시 되살아나는 이야기로.
그리우니 그립다 하고, 보고프니 보고프다 하며, 사랑스러우니 사랑한다고 합니다. 저마다 달리 느낄 이 마음을 꾸밈없이 드러내거나 내보일 때, 바야흐로 가장 알맞는 말 한 마디 시나브로 태어납니다. 한 마디 말 붙잡으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살포시 펼쳐 봅니다.
ㄴ. 그 나무를 위해서만 존재하였고
.. 그날 밤 달은 그 나무를 위해서만 존재하였고, 그 나무는 달을 위해서 팔도 벌려 주고 옆으로 비켜서기도 하였다 .. 《남난희-낮은 산이 낫다》(학고재,2004) 166쪽
"그 나무를 위(爲)해서만"은 "그 나무를 생각해서만"이나 "그 나무를 비추려고만"으로 다듬어 봅니다. "달을 위(爲)해서"는 "달을 올려다보며"나 "달을 생각해서"나 "달을 바라보며"로 손질해 줍니다.
┌ 그 나무를 위해서만 존재하였고
│
│→ 그 나무 때문에만 있었고
│→ 그 나무를 비추려고만 떴고
│→ 그 나무를 감싸려고만 달렸고
│→ 그 나무를 생각해서만 떠 있었고
│→ 그 나무만 비추고 있었고
└ …
깊은 밤에 둥그렇게 뜬 달을 숲속에서 홀로 올려다볼 때 느낌은 밝은 전기불이 번쩍거리는 도심지 시끄러운 술집거리에서 밀리고 치이면서 올려다볼 때하고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하얀 달한테서 사랑과 믿음과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달을 달 그대로 느끼려 한다면 아무래도 한결 조용하거나 고즈넉하거나 느긋한 곳에 있어야 하겠지요. 보기글에서 말하듯이 달이 나무 한 그루만 생각하듯이 떠 있는 곳에 있거나, 달이 나 하나만 살피듯이 떠 있는 곳에 있을 때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곳에서도 매한가지가 된다고 느낍니다. 서로를 한결 깊이 들여다보거나 좀더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곳에 있을 때에 더욱 사랑스럽다고 느끼고 고맙다고 느끼며 아름답다고 느끼지 싶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 있거나, 온갖 일에 얽매이는 자리에 있거나, 사람은 업신여기며 돈을 섬기는 데에 있다면, 우리들이 사랑이나 믿음이나 아름다움을 나누기란 어렵구나 싶습니다.
서로를 한껏 북돋우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곳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랑과 믿음이 싹트겠지만, 이와 함께 우리 삶은 알차고 아름다우면서,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말마디와 글줄 또한 알차거나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를 한껏 북돋우기 어려운 곳에 있다 보면 사람값이 사람값이 아닌 한편, 우리가 나누는 말마디와 글줄마저 고꾸라지거나 뒤틀리고 맙니다.
┌ 그 나무 하나 때문에 있었고
├ 그 나무 하나만 생각해서 떠 있었고
├ 그 나무 하나만 비추고 있었고
├ 그 나무 하나만 비추며 떠 있었고
└ …
볼일이 있어 서울로 마실을 할 때면 으레 느끼는데, 서울은 사람도 많고 문화도 너르며 돈 또한 넘칩니다. 무엇이든 가득가득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사람이 서로서로 홀로 더 붙잡거나 움켜쥐고파 하는 까닭에, 따스한 마음결이나 넉넉한 마음씨를 찾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서울사람들은 시골에 가면서 '따뜻한 마음이 좋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읊는데, 서울사람 스스로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이나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따숩게 마음을 쓰거나 넉넉하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 드뭅니다. 겉으로는 넘치거나 가득해 보이는 서울 삶이지만, 속으로는 곪거나 찌든 서울 삶이라고 할까요. 이리하여 서울사람들 말씨나 글씨는 사랑스러움과 믿음직함보다는 겉멋과 겉치레가 넘친다고 할까요.
돈은 많으나 따스함이 없기에 거칠고 메말라 버립니다. 집은 넓으나 넉넉함이 없기에 팍팍하고 차갑고 맙니다. 이름이 있고 힘이 세지만 너그러움이 없기에 입에 발린 사랑만이 온통 우리 삶터를 휘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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