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우리 학교도 습격하다
지난 주부터 우후죽순 늘어나는 환자들... 뒤숭숭한 학교
▲ 신종인플루엔자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주고 있다. ⓒ 유성호
"겨울이 다가오면서 신종플루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최근 9시 뉴스에서 이 멘트가 흘러나올 때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에서 신종플루 환자가 나왔네, 학교를 휴교했네 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우리 학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학원에 가고, 체육 경기도 보러 가고, 놀러도 다니지만 신종플루에 걸린 학생은 '그동안'은 없었다.
연락을 받자마자 소독제를 들고 교실로 달려갔다. 그 학생이 앉았던 책상, 의자에 소독제를 뿌렸고, 다른 학생들 책상에도 다 소독제를 뿌렸다. 같은 반 친구가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분류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내게 이렇게 부탁했다. "선생님 제 책상에 많이 좀 뿌려 주세요." 교실 문 손잡이에도 소독제를 뿌리고, 사물함에도 뿌리고, 환기도 확실하게 하고 매 시간마다 손을 씻고 다니라고 학생들에게 당부를 한 후 교무실로 올라왔다.
일부 학생들이 신종플루에 일부러 걸려서 학교를 빼먹으려 한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손을 씻고, 손 소독도 열심히 한다. 두 반에 한 통씩 나누어 준 손 세정제를 며칠만에 거의 다 쓴 걸 보면 확실히 느낄 수가 있다.
신종플루 환자 발생 후 달라진 학교 풍경
▲ 지난 8월 27일 오전 서울 신용산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 지난 8월 27일 오전 서울 신용산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 벽에 붙여진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 안내문을 보고 있다. ⓒ 유성호
요즘 교무실에는 쉬는 시간마다 "열이 나는 것 같다"며 열을 재겠다고 올라온 학생들이 많다. 현재 각 학년 교무실에는 보건실에서 나누어 준 귀체온계가 두 개씩 비치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이 체온계 쓰는 방법을 연습하기 위해 자기 체온이나 재 보았을 뿐 거의 써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체온계가 유용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학교 내에도 마스크를 쓴 학생들과 교사들이 크게 늘었다. 언론에서 거리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를 아무리 해도 '뭐 그리 유별을 떨고 있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 학교에 신종플루에 걸린 이들이 생겨나니 이제는 나도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고 권장하게 된다.
매일 아침 보건 선생님은 신종플루 환자 현황을 보고해 달라고 각 반 담임 선생님들에게 교내 메신저를 이용해 쪽지를 보낸다. 전에는 거의 의례적인 것이어서 답장을 보낼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모든 반이 우리 반, 몇 번, 어느 학생이 무슨 증세라며 꼼꼼히 적어서 보건 선생님께 답쪽지를 보낸다. 하루하루 환자는 늘어가고 지각생, 결석생도 매일 한 명 이상 생겨나고 있다. 오늘(27일) 아침에도 어제까지 멀쩡해 보였던 학생 학부모가 "(아이에게) 열이 나는데 떨어지지 않는다"며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학생들과 싸움을 벌이면서까지 잘 빼주지 않던 야간 자율 학습도 "선생님 저 열나는 것 같아요"라고 하면, 체온계로 열을 잰 뒤 당장 병원으로 보낸다. 그냥 남아서 야간 자율 학습을 하겠다는 학생도 열이 나면 당장 집에 가라며 쫓아보낸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들이 심각하게 건의를 해 보았다. 야간 자율 학습을 당분간이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지만 부장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산을 막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현재 우리 학교의 야간 자율 학습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반별로 불참자가 참 많아졌을 뿐이다.
이런 소동은 오버인 걸까?
▲ 신종인플루엔자 예방백신 접종이 거점병원 등 의료종사자 대상으로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에서 의료진들이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 유성호
소독도 하고, 학생들에게 자주 손씻고 조심하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어떤 때는 독감 정도의 질병인데 너무 호들갑떠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반에도 의심환자가 두 명이나 있지만 아직 나는 걸리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만약 내가 걸리더라도 감기나 독감 수준으로 앓으면 낫는 것이라고 하니 크게 겁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린 아기가 있는 선생님들의 생각은 다르다. 고위험군인 아기들은 신종플루가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른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매우 걱정을 한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중 벌써 세 분이 신종플루에 걸렸다. 아기가 있는 선생님들은 혹시라도 감염되어 아기에게 옮기게 되지 않을까 매우 불안해 한다. 그래서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기가 곁에 오지 못하게 한 후, 목욕을 하고 손도 깨끗이 씻은 후에야 아기 곁에 간다고 한다. 나 같은 노처녀야 내 한 몸 앓고 나면 끝이지만, 아기의 부모님들은 나처럼 편안하게 생각하실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학교 상황은 이렇다고 친구들과 함께 만든 커뮤니티에 글을 쓰니까 서울 어느 중학교에서 교사를 하는 내 친구는 이렇게 답글을 달았다.
"원래 한 둘 나올 때가 가장 시끄럽다가 수십 명이 되면 아무 소리도 없단다. 우리 학교는 이제 지나간 거 같긴 한데, 심한 반은 거의 절반 정도가 앓고 지나간 듯하다. 아이들이 전부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비싼 비용 문제 등으로), 정확한 명수는 모르지만 우리 학교도 공식적으로 10~20명 까지는 계산하다가 그 이후에는 그냥… 많다~가 되면서 교사 한명도 걸렸다가 나아서 오고… 이제 전체가 다 잠잠하다. 수련회도 다녀오는 거 봐라. 요즘 교육청 지침도 해당자만 격리 하는 것으로 하고 학교는 그냥 운영되는 것으로 결정했다더라."
오늘도 반마다 새로운 환자가 나왔고 여러 학생들이 병원으로 집으로 향했다. 친구네 학교처럼 우리 학교도 더 이상 감당이 안 되어 "많다~" 하면서 지나가게 될까? 겉으로 보기에 학교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많이 뒤숭숭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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