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백양사 단풍, 그 오묘한 조화

나무와 물과 누각과 바위산이 어우러진 교향악

등록|2009.10.27 16:14 수정|2009.10.27 16:14

선문(禪門)을 지키는 단풍백양사 단풍은 싱싱하다. ⓒ 김진수


한국의 단풍, 내장산 국립공원을 비켜서서야 어찌 논할 수 있겠습니까? 내장산 국립공원 뒤쪽이 전북 고창의 내장산이요, 앞쪽은 전남 장성의 백암산이죠.

백암산은 내장산 국립공원의 연륜 깊은 얼굴마담답게 이 가을 아리따운 분단장으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암산의 중심에 천하명찰 백양사가 있어, 백양사를 통하지 않고는 단풍을 논할 수 없겠죠.

▲ 단풍색 깊게 들 날을 돌탑도 기다리는가? ⓒ 김진수


가을이 되면 단풍 기사가 다투어 인터넷 신문을 달굽니다. 그런데 이 가을, 오마이뉴스에 내장산, 백암산 단풍 기사가 어째 뜸하다 하였는데, 이유가 있더군요. 단풍이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고운 얼굴 내밀 자연은 깊은 내공에 싸여 있는데, 성급한 인간은 얼른 그 얼굴 보이라 재촉합니다. 나무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입니다.

나 또한  이곳저곳 인터넷을 보며 백양산 단풍을 사진으로 보아 온 터라, 가히 그 선경을 확인하고픈 기대감이 왜 없었겠습니까?  머릿속으로는 이미 본 단풍 사진의 구도를 흉내라도 내볼까 하여 작정하고 떠났습니다.

입구에서 서옹 스님의 한시 한 수를 만났습니다.

열반에 이르는 노래스님께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까? ⓒ 김진수


                             운문의 해는 긴데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고,
                              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백학이 한번 나니 천년 동안 고요하고,
                              솔솔 부는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낸다.

(서옹스님은 조계종 5대 종정으로, 불교 최고의 선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시는 2003년 12월, 스님께서 열반을 며칠 앞두고 썼다고 전해진다.)

10월 24일, 이곳 단풍은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백암산 백양사 단풍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알았습니다.

가을 단풍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고루 갖췄더군요.

백양사 입구 가로수는 온통 단풍나무입니다. 단풍나무는 약간 그늘지고 물기 있는 토양을 좋아합니다. 백양사 단풍나무는 그런 조건으로 인하여 무성하고 싱싱합니다. 당연 때깔도 으뜸이죠. 그리고 백암산 계곡수를 모아 이곳저곳에 동그마니 못을 만들어 잔잔히 머물게 했습니다. 그 못엔 자연석 방축이 있어 물 위를 거닐 듯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다정한 모습이 있습니다.

              

▲ 호수와 단풍 ⓒ 김진수


▲ 단풍 속인가, 물 속인가? 백양사 단풍은 오묘한 자연의 조화에 있다. ⓒ 김진수


▲ 여심과 수심(水心)의 교감 ⓒ 김진수


그리고 물위에 뜬 것처럼 고고한 백양사 쌍계루가 있습니다.

단풍나무와 호수와 물위의 사람, 호수를 배경으로 한 쌍계루, 그리고 미끈한 암석덩이, 백학봉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단풍 연주를 위한 훌륭한 악기들입니다.

단풍잎 하나하나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습니다. 퉤퉤하고 바스러져 있습니다. 단풍은 바로 자연의 조화, 나무와 물과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져 있는 자연의 교향곡입니다.

백암산 백양사는 이런 조건을 훌륭히 갖춘 명실 공히 단풍의 전당이었습니다. 명가의 단풍은 뭔가가 달랐습니다. 이 가을 찍사들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다음 주쯤이면 이곳 백양사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때를 모르고 서둘러 갔다 온 나는 손해 본 느낌입니다.

백학봉의 단풍오매, 언제 단풍 들랑가이... ⓒ 김진수


▲ 백학을 머리에 인 백양사 대웅전 ⓒ 김진수


약사암에서 본 백양사 전경약사암은 백학봉의 중턱에 있다. 약수가 있어 암자를 찾는 이에게 시원함을 선사한다. ⓒ 김진수


지금에서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영락(零落)에 든 깊은 겨울날, 이곳 백양사를 다시 찾아 쌍계루에서 나목(裸木)이 들려주는 음악소리를 듣고 싶은 것입니다.

국기단(國祈檀)나라에 재앙이 있을 때 조정에서 제를 올리던 곳이다. ⓒ 김진수


▲ 국기단 앞에서 아이는 무엇을 생각하며 한 개 돌을 올리는 것일까? ⓒ 김진수


덧붙여 백양사 일대 원시림은 매우 다양한 수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갈참나무와 비자나무를 들 수 있는데, 백양사 박물관 근처 맞은 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수령 700년)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 원시 비자나무 군락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그런데 단풍은 단풍이고 한마디 붙입니다. 백양사를 비롯하여 전통 사찰 구경이 좀 비싸더군요. 입장료 1인 2500원, 주차료 5000원입니다. 단체 관람객은 입장료를 20% 할인하는데, 그 단체의 기준이 12명입니다. 어떤 기준에 의하는지 모르지만, 3인이 작당하여 한 사람을 두들기면, 이는 집단폭행죄로 무겁게 처벌합니다. 집단이란 단체를 이뤘다는 말인데, 형법 따로 문화재 관리법 따로입니까? 형법에서는 3 이란 숫자를 중시하면서 문화재나 시설 입장료는 단체 규정이 들쭉날쭉하는지...단체 12명이란 규정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군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