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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vs. 동방신기 소송, 한국연예산업에 직격탄

한국 연예산업시스템 재구성은 가능할까?

등록|2009.10.28 12:04 수정|2009.10.28 12:04

▲ KBS 2TV '뮤직뱅크' 연말결산에서 2008년 MVP에 오른 동방신기의 모습 ⓒ KBS


"한국 연예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SM엔터에 대한 동방신기 세 멤버의 가처분 신청 결과를 전해들은 어느 기획사 대표의 말이다. 아직 결정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지만 이번 소송의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기획사의 전속권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속권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의 연예활동 전체를 기획, 운영,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전속권의 핵심은 이러한 일체의 내용을 개별 연예인과 협의하거나 합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기획사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법원의 결정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SM은 이들(동방신기)이 원치 않는 활동을 시키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이 된다. 이번 결정에 전속권 자체가 무효라는 것이 명시되진 않았지만, 그 불합리성에 대해 지적까지 한 마당에는 SM의 '패소'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이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송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나 그 이면의 복잡한 계산과는 상관 없이, 본질적으로 아이돌 가수들에게 13년이란 전속계약기간은 '전부'라 할 만하기 때문에 이번 법원의 결정이 이들의 인권과 상업적 권리를 보호해주는 결정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번 결정으로 과도한 전속기간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도 일부 착취형 기획사들을 솎아내고 연예산업 구조 안에서 좀 더 진보적인 계약관행과 합의가 만들어지리라는 기대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한국연예산업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하게만 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별가수들의 권익신장과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었다는 측면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와 함께 아이돌 그룹을 주력군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군소 연예기획사와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그 존폐가 걱정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현재 스타덤에 오른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전속권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다. 본격적인 소송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SM의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기획사는 전속권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기획사와 연예인들은 저마다 소송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결국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만들어내는' 기존의 연예인제작시스템의 붕괴다.(여기서는 그러한 시스템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전속권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 말해 지금까지에 비해 투자와 상관없이 회수율(?)이 저조해질 것은 당연한데, 신인 제작과 프로듀싱에 많은 돈을 쏟아붓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 문제가 동방신기와 같이 이미 확고부동한 스타의 지위를 가진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신인이나 연습생들에게조차 기획사가 전속적 권리 없이 모든 내용을 상호협의, 혹은 합의해서 진행해야 한다면 아마도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대부분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선언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마지막으로는 이번 결정이 다만 앞으로의 문제뿐 아니라, 동방신기의 경우처럼 이제까지 기획사들의 전속적 권리로 인해 자신들의 수익이 불합리하다고 느끼고 있는 수많은 연예인들의 문제제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이 동일한 다른 경우에 모두 적용된다면 이로 인해 대부분의 아이돌 기획사들은 상당한 금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나 수익금에 대한 재분배 소송에 휘말릴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기획사의 입장에서는 인간적 정리를 바탕으로 원만하게 합의를 하거나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게 되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번 법원 결정은 한국연예산업의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메가톤급 파장을 낳게 될 것이다. 이후의 수순은 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의 줄 소송과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다수의 기획사들이 생겨나고 육성되거나, 조직적으로 양성된 아이돌의 출현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분명히 있다. 게다가 전속권을 불인정하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연예활동을 보장하라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연예산업종사자들은 절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속권 불인정의 판결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획사가 개별연예인들을 만들고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들이 기획사를(매니저를) 고용하는 방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SM이 동방신기를 만들고, 활동시켜서 수익을 배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동방신기가 SM 같은 회사나 조직, 혹은 개인을 고용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배분하는 시스템이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이러한 시스템으로 간다는 것은 기존의 기획사들이 모두 단순 매니지먼트(중계 및 관리업종)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며, 구태여 새로운 투자를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낼 필요도 목적도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연예인을 꿈꾸는 신인들은 철저하게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런칭하고 판매까지 해야 한다. 대중예술인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제 결정은 내려졌다. 모쪼록 합리적인 그리고 건설적인 연예산업을 위해,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할 시기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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