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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바람에 석불과 석탑만 덩그라니 남아

우리문화 답사기(28) - 당진 안국사지를 가다

등록|2009.10.28 11:13 수정|2009.10.28 11:13
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에는 고려 때의 절이었던 안국사지가 있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를 않아 언제 이 절이 창건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발굴조사시 발견된 유물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절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후 조선시대에 폐사가 되었던 것을 1929년 승려 임용준이 중창을 하였으나, 다시 폐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절들이 이렇게 중건과 소실, 혹은 폐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긴 시간을 전해진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석불과 석탑 등이 남아 그 역사의 흔적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역사의 흔적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때야 추정이 가능하지만, 지금처럼 이리저리 그 소중한 문화재들을 옮겨다니면 그도 힘들어질까 걱정이 된다.

안국사지당진군 정미면 수당리에 있는 안국사지 ⓒ 하주성




현재 안국사지에는 보물 제100호인 <석불입상>과 제101호인 <석탑>, 그리고 배모양의 돌에 음각한 충남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안국사지 매향암각>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가끔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사지 안에 무분별하게 법당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 사지를 이용한 포교의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자칫 사지의 형태를 훼손할 수도 있고, 더욱 그 법당들로 인해 사지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법당들의 난립은 오래 방치되어 온 중요한 문화재의 주변에 있는 주택들을 매입해, 차츰 늘려나가는 식으로 사지의 모습을 망가트리고 있다. 사지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사지를 이용하는 법당의 난립을 막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석불입상고려 현종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는 안국사지 석불입상 ⓒ 하주성




안국사지에는 석불입상이 있다. 좌우에 협시보살이 서 있고 중앙에 본존불이 서 있는 삼존불의 형태다. 2003년 발굴 조사 때 출토된 연호를 보아 고려 현종 12 ~ 21년 때인 1021~1030년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에 서 있는 본존불은 원통형의 관 위에 보개를 씌었는데, 그 형태가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만들어 보기에도 불안정하다.

양편에 선 협시보살도 하나의 돌에 조각을 한 수법을 택했다. 조각을 한 수법이 소박한 것으로, 이러한 조각수법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조각기술이다.

석불입상중앙의 본존불의 관 위에 씌운 보개, 너무 커서 불안한 느낌을 준다 ⓒ 하주성



석불입상두팔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모습이다 ⓒ 하주성




본존불의 두 손은 돋을새김을 하였는데, 몸에 비해 길고 빈약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지가 않는다. 이 지방에서 고려시대의 석불에 많이 나타나는 형태로 형식화 되고, 제작기술이 쇠퇴한 지방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현재 이 석불입상은 보물 제100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석불입상 앞에는 보물 제101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석탑 한 기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101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 하주성




이 석탑은 현재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 위에 4매의 지붕틀이 얹혀 있는 모습이다. 아마 몸돌이 사라져버린 듯하다. 많은 문화재들의 훼손이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점이다. 원형의 형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1층 몸돌의 형태는 매우 간단히 처리를 하였다. 3면에는 여래좌상을 돋을새김을 하였고, 한 면에는 문고리를 조각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대개 4면 전체에 좌불을 새기거나 양편에는 문고리, 남은 방위에는 창살 등을 조각하는 데 비해, 기본형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석탑몸돌에 새겨진 여래좌상 ⓒ 하주성



안국사지 석불몸돌과 같은 돌로만든 석조물 ⓒ 하주성




고려탑의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는 석탑은 추녀가 심하게 올라간 편이며,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4단씩 조각되어 있다. 석불입상의 뒤에는 배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다. 흔히 배바위라고 부르는 이 바위에는 암각문이 두 군데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글씨를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판독을 한 결과, 바위를 바라보고 왼편에는 목공전설이 오른편에는 매향비문이 새겨져 있다. 현재 충남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배바위매향비문이 새겨져 있다 ⓒ 하주성



암각문글이 마모가 심해 육안으로도 식별이 어렵다 ⓒ 하주성



암각문배바위에 새겨져 있는 암각문 ⓒ 하주성




배처럼 생긴 바위에 적은 암각문을 판독을 한 결과 이 매향비문은 경오년 2월이라고 적혀있어, 1330년이나 1390년에 음각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매향비문은 돌을 다듬어 적기도 하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안국사지의 매향비문은 배처럼 생긴 바위에 음각을 하였다.

한 곳의 사지를 둘러보는 데는 길게는 한 나절에서 짧게는 두세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찬찬히 들러보고 나와도, 후에 또 다른 것이 나타나면 늘 후회를 하는 것이 현지답사다. 언제나 하나하나 다시 둘러보는 것도 그러한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당진 안국사지. 그 형태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아 있는 유적에서 그 모습을 찾아본다. 머리 속에 그려지는 절의 모습이 확연치가 않은 것은, 주변을 너무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역사는 많은 것들을 변하게 만들지만, 그 모습이나마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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