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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의 마을 약속, '태인 고현동 향약'

국립중앙박물관, 태인 관련 유물 집중 전시

등록|2009.10.28 14:01 수정|2009.10.28 14:29

▲ 500여 년의 마을 약속 - 태인 고현동 향약 ⓒ 김상기



국립중앙박물관이 10월 27일부터 2010년 1월 31일까지 역사문화유산 조사사업의 성과를 공개하는 테마전 '500여 년의 마을 약속 - 태인 고현동 향약'을 개최한다.

'향약'(鄕約)은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이다. 시행시기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유교적인 예속을 보급하고, 농민들을 향촌사회 단위로 묶어 토지로부터의 이탈을 막고 공동체적으로 결속시킴으로써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실시됐다.

중앙박물관 역사부의 역사문화유산 조사사업은 국내외의 다양한 역사문화유산,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문화유산을 집중 조사한 후, 그 내용을 전시로 공개하고 학술자료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전라도 태인현과 관련된 총 47건 84점이 소개된다.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유물은 보물 제1181호로 지정된 '태인 고현동 향약'(泰仁古縣洞鄕約)이다. 고현동 향약은 성종 6년(1475) 정극인(1401∼1481)이 처음으로 만들고, 송세림(1479~1519)이 기반을 닦아 시행된 이래 500여 년 동안 태인현 고현동(현재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ㆍ무성리 일대)에서 꾸준히 운영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향약이다.

고현동 향약은 17세기 초까지 양반만 참여하는 모임의 성격이 강했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서얼은 물론 일반 백성도 향약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18세기 중엽까지 향약이 활발히 운영되면서 향약 구성원들 간의 상례와 혼례에 대한 부조, 가난한 사람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이 이뤄지기도 했다. 19세기 무렵부터는 향약이 침체되면서 교육기능이 중시됐다.

현재 15~16세기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선조 35년(1602)부터 1977년까지 400여 년간의 자료가 남아 보존돼 있다. 이 향약은 풍부한 관련 문서와 함께 500여 년간 계승돼온 유례가 드문 사례다.    

한편, 태인현은 신라 말 유학자 최치원(857∼?)이 태수로 부임한 이래 정극인, 이항 등 조선시대 호남을 대표하는 사림들이 활동하면서 일찍부터 유학이 발달했던 곳이다. 또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선비들이 앞장섰던 지역이기도 하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지킨 것도 바로 태인현 선비들이었다. 그 밖에 태인현에는 최초의 가사 '상춘곡'의 전통을 이은 가사문학, 풍수지리사상, 민간 신앙과 관련된 자료가 잘 전승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 각종 정보와 자료를 제공한 정읍시 칠보면 소재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의 안성열 관장은 "중앙박물관이 고현동 향약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하면서 향약의 성립 동기나 무성서원과의 연관성, 이 지역 선비들의 절개 등이 집중 조명될 것"이라며 "예전 태인현의 역사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라고 평가했다.

전시기획을 맡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효종 학예연구사도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생활상과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케 하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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