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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가을에는 '쌀타클로스'를 못 보는구나

막개발로 농지 사라져 '벼농사 그만' 선언하신 아버지

등록|2009.10.29 18:17 수정|2009.10.29 18:17

▲ 늦은 저녁에야 정미소 '쌀타클로스'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 이장연


 고향땅에서 60 평생 농사만 지어온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벼농사는 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기력이 쇠해 농사일이 더욱 힘들어졌고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논밭을 인천시가 '2014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으로 막개발 하면 농사지을 곳이 아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웃밭에서 아버지와 함께 꽃농사를 짓는 아는 동생은 꽃도 안 팔려 이제 그만두고 싶다는데 아저씨는 지방으로 내려가 계속 농사를 지을 생각이라 합니다. 정든 고향과 평생 일궈온 논밭을 보잘것 없는 보상에 내어주고 더불어 살아온 이웃들마저 마을을 떠나 뿔뿔이 흩어질 지경입니다.

▲ 현관 한편에 쌓아두었던 쌀가마를 2층으로 올렸습니다. ⓒ 이장연

올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에 다시 볍씨를 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난감한 지경입니다. 농사일 밖에 모르는 농군들이 괜한 걱정거리에 빠져 있을 새도 없이 풍성한 가을걷이가 정신없이 이어졌습니다. 고구마를 캐고 깨를 털어 말리고 벼를 베고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추도 마저 따냈습니다.

그렇게 탐스럽게 여문 농작물들을 하나 둘 수확하고 컴컴한 저녁이 되자 그분이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성탄절 전날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아이들에게 선물꾸러미를 나눠주는 산타클로스처럼, 햅쌀을 가득 실은 정미소 '쌀타클로스'가 온 것입니다.

▲ 아버지가 땀흘려 지은 올해 첫 햅쌀입니다. ⓒ 이장연




벼 타작을 마치고 건조기로 볍씨를 말린 후 저 멀리 검단에 있는 정미소까지 온 동네 볍씨가마를 실어날라 하루종일 찧어온 쌀가마가 트럭에 가득했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트럭에서 내린 40kg짜리 쌀가마가 현관 한편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후딱 우리 쌀을 내려놓은 쌀타클로스 트럭은 다시 나머지 쌀을 이웃들에게 전해주러 밤길을 달려갔습니다. 올해 아버지가 땀흘려 얻은 쌀가마니를 차곡차곡 쌓은 뒤 햅쌀로 지은 흰밥을 한 공기 먹고 나니 쌀의 소중함이 새삼스러워졌습니다.

▲ 햅쌀로 밥을 지었더니 갑자기 밥알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 보였습니다. ⓒ 이장연



이젠 더 이상 쌀타클로스를 보지 못하고 쌀도 돈 주고 사먹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밥알 한알 한알이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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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타클로스, 내년 가을에는 볼 수 없을 것 같네!! ⓒ 이장연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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