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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걱정하다가 1주일 다 보냈다

등록|2009.10.31 19:05 수정|2009.10.31 19:05

▲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자료 사진). ⓒ 남소연


지난 일요일부터 우리 집은 비상이었다. 4학년 딸이 오후 예배를 드리지 못할 정도로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만은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일요일이지만 365일 24시간 진료하는 어린이 전문 병원이 가까이 있어 예배를 마치고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정말 병원은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우리 가족만 마스크를 하지 않았을 뿐 대부분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신종플루가 바로 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신종플루가 겁나기는 겁난 모양이에요. 우리만 마스크 안 했어요."
"사람들이 열만 조금 나도 무조건 병원에 오는 것 같아요."

"전에는 조금 아파도 참거나 약국에서 약 사 먹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지요."
"서헌이도 걱정이에요."
"설마 신종플루겠어요?"

다행히 딸은 신종플루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날 5학년 아들이 학교를 다녀온 후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 갔는데 미열이지만 하루만 더 지켜보고 열이 더 나면 거점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동네병원에서는 의심 증상이 있으면 타미플루 처방을 할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거점병원만 가라고 했다.

"인헌아 너희 반에도 신종플루 걸린 동무들이 있어?"
"없어요."
"그럼 학교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12명인가 걸렸대요."
"12명. 걱정이다."

"신종플루 걸리면 학교 안 가는데 너 걸리고 싶지 않니?"
"아빠, 왜 그러세요. 걸리면 안 되지요."
"아빠가 그냥 해 본 소리야. 한 번 웃자고."


약을 먹고 열이 내려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수요일부터 열이 나면서 몸저 누웠다. 특히 B형 간염 보균자로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두 아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신종플루에 걸려 숨졌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입이 말랐다.

"여보 나도 열이 나는데 어떻게 해요."
"빨리 병원 가야지."
"걱정돼요?"
"아니 그것을 말이라고 해요. 신종플루 걸리는 것도 걱정인데, 당신은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더 걱정이지."

"당신은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싫어하잖아요."
"뭐라고 나만큼 당신 생각하는 남편 별로 없어요. 방금도 병원부터 가라고 했잖아요."

"아프다고 누워있으면 귀찮기 때문에 빨리 일어나라고, 병원 가라고 하는 것 아니에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픈 사람 보고 병원 가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 오늘도 내가 죽 끓이고, 얼굴에 물수건 올려 주었어요. 이 정도 하면 100점은 아니지만 70점은 받을 수 있어요."

"그래 70점은 줄게요."
"이번 주는 신종플루 걱정하다가 다 보내겠어요."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예요."

아내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아내가 아프면 조금 귀찮다. 집안 일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안 일 정말 힘들다. 쉴 틈이 없다. 아내가 아플 때 집안일을 해보면 정말 한국 주부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내 얼굴에 수건도 올려주어야 하고 죽도 끓여주지만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아프면 아내는 온 정성을 다해 수건을 올려주고, 죽을 끓여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금요일 저녁부터 열이 조금씩 내리더니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 밥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지난 1주일 우리 집은 신종플루 걱정하다가 다 보냈다. 전에는 열 나면 얼굴에 물수건 올리는 것으로 지냈는데 이제는 신종플루 때문에 병원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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