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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운동' 밖에 하지 않는 아빠가 웬 마라톤?

"메달이 무려 두 개? 아빠 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등록|2009.11.02 09:06 수정|2009.11.02 09:52
집에 돌아와 가방에서 메달을 꺼내다 보니 두 개가 들어 있다. '하프코스 완주 메달'과 '6.15km 완주 메달'이다. 오늘(1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린 제4회 경기통일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얻은(?) 메달이다.

▲ 메달 뒷면에 새겨져 있는 '하프' 마라톤 코스 완주 축하 글씨 ⓒ 추광규


오후에 집에 들어와 가방에서 짐을 꺼내고 있는데 둘째아들이 묻는다. 운동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아빠가 마라톤 대회를 갖다 왔다니 자기 딴에도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다.

"아빠 오늘 진짜로 마라톤 뛴 거야?"
"그럼, 이렇게 증거가 있잖아!"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않는 아빠의 운동습관을 잘아는 아이들이 마라톤을 뛰고 왔다니까 도통 믿지를 못하겠다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해서 증거물로 내민 게 완주메달이었다.

하지만 곧 들통이 났다. 한개 정도라면 그런대로 속아 넘어가겠지만 하프 마라톤 즉 무려 21km를 넘게 뛰었다는 증거품과 함께 거기에 더해 6.15km를 뛰었다는 증거품으로 메달을 두 개씩이나 내밀었으니 믿으려야 믿을 수가 없었던 것.

"아빠는 분명히 샛길로 다니다가 결승점에 들어온 후 받았을거야."
"ㅎㅎ"

▲ 마라톤을 뛰기전 몸풀기에 나선 참가자들. 6.15안양본부 회원들이다. 상체를 위로 하고 있는 안양뉴스 이민선 기자를 등으로 받히고 있는 사람의 고통이 생생이 전해졌다. 이민선 기자의 몸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 ⓒ 추광규


# 새벽같이 들어온 핸드폰 문자 메시지 '옷 단단히 챙겨입고...'

오늘(1일) 열린 마라톤 대회는 '6.15경기본부'와 '민주노총경기도본부'가 주최해 열린 대회였다. 지난 2006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4회째를 맞고 있는 것. '희망찬 통일세상에서 달려보자 개성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해마다 늦가을 임진각에서 행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숨쉬기 운동 밖에 하지않는 나로서는 마라톤 대회 참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인데 두어달쯤 전 6.15경기본부 안영욱 위원장이 내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신문고뉴스를 후원사로 이름을 넣겠다고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참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뛰겠다는 것은 아니고 늦가을 임진각 바람이나 쐬겠다는 아주 소박한 꿈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대회 하루를 앞두고 그동안 순탄하던 날씨가 토요일 오후 내내 비가 내리더니 일기예보에서는 첫 겨울 추위가 닥친다면서 야외 나들이를 할 경우 옷을 단단히 챙겨 입으라는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잠을 깬후 가장 먼저 바깥 날씨부터 살펴보니 그나마 비는 그친 것 같다. 안산에서 출발하는 팀은 화랑유원지 앞에서 아침 7시에 집결해 버스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6시경 안산 통일포럼 서상철 위원장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추우니 장갑, 마스크, 겨울옷을 준비하고 오세요'

문자를 받고 보니 아무래도 추울 것 같아 장롱 안쪽 깊숙이 들어 있던 겨울용 등산복을 꺼내서 가방안에 쑤셔 넣을 수밖에. 서둘러 나왔지만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총 네대의 버스 중 세대는 먼저 출발하고 가장 늦게 내가 탄 버스가 출발했다. 하지만 전날 날씨가 좋지 않다는 일기예보 탓인지 상당수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안산 통일포럼 쪽에서는 당초 30명이 참가의사를 밝혔지만 막상 집결지에 나온 분은 18명밖에 안되었다. 전날 일기예보에서 비가 그친뒤 '첫 겨울 추위'라고 호들갑을 떤 것이 영향을 끼친듯 했다. 하지만 바깥 날씨는 활동하기에는 그리 불편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조금 쌀쌀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 식전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출발선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 추광규


# 북측위원회..."따뜻한 동포애적 인사를 보냅니다"

9시 10여분쯤 도착한 임진각 평화누리에는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회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날 참가자가 1200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제대로 마라톤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은 주차장 한 편에서 가볍게 뛰면서 몸풀기에 한참이었다.

검정색 스판 반바지에 헐렁한 상의였다. 바로 마라톤 중계를 보다 보면 익히 볼 수 있는 전문 마라토너의 복장이었다. 거기에 방풍용 안경(고글?)까지. 허름한 운동복에 운동화가 고작인 내가 대회장으로 가기도 전에 지레 주눅이 들 정도였다.

9시 20분쯤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순서가 있었다. 준비위원장의 대회사와 그리고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축전 낭독이 그것. 축전은 다름아닌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가 이날 대회를 맞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기본부'앞으로 팩스를 이용해 축전을 보내온 거 였다.

한명수 준비위원장은 "우리들은 어서 속히 강대국들의 굴레를 벗고 남북이 하나되어 제2의 광복절이 다가올 것을 희구하면서 통일이 이룩될 때까지 끝없이 달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사회자가 대독한 축전에서 "북남공동선언들을 앞장에서 리행해나가려는 귀 단체들과 지역인민들의 드높은 애국의지의 발현이며 자주와 평화번영을 위한 겨레의 통일대진군운동을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의의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날 대회를 축하했다. 내빈소개에서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이 참석해 참가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했다.

▲ 11월 1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가슴에 단 번호판이 파란색깔이 10km참가자들 그리고 분홍색이 6.15km 코스 참가자들이다. ⓒ 추광규


# '6.15km', '10km', '하프'.. 세 코스 중 가장 많은 참가는?

이날 대회에는 총 세 코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짧은 코스가 6.15km를 뛰는 '6.15km'에서부터, 중간 거리인 10km 그리고 가장 장거리 코스인 '하프'마라톤 코스가 그것.

물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를 신청한 코스는 누구나 쉽게 도전 할 수 있을 법한 '6.15km'였다. 6.15km코스 신청자가 남녀 합쳐 706명, 그리고 10km코스가 238명, 하프코스는 143명이었다. 하프코스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척 보기에도 전문 마라토너들 같았다.

복장부터 전문 마라토너를 능가하고 드러난 몸매부터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하프코스에서 1등한 사람이 58분대를 끊었다고 했으니 주자들 선두에서 자전거를 탄 채 코스를 인도했던 행사요원도 꽤나 힘들었을듯 싶었다.

실제 출발 후 30분 정도를 지나 지름길을 질러가 사진을 찍으면서 지켜보고 있는데 하프 마라톤 선두주자는 일반 사람들이 100m를 전력 질주하는 속도로 '휙'하니 지나갔으니 말이다.

이날 대부분 참가자들은 꽤나 여유로운 듯 했다. 가족 나들이 삼아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많은 듯 걸음걸이는 무척이나 느긋했다. 아이를 무등 태운 사람,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후 끌고 가는 사람, 깃발을 흔드는데 더 신경을 쓰는 사람, 뛰는데 신경 쓰기보다는 옆 동료와 담소를 나누며 걷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한가지였다. 바로 자신이 신청한 코스를 완주하는 것. 중간에 거리를 절반 이상 단축할 수 있는 샛길이 있었지만 완주를 포기한 서너사람만 이 길을 택했을 뿐이다.

한 초등학교 여학생과 함께 참석한 아이의 엄마는 여자아이가 발이 아프다고 하자 샛길로 접어들어 완주를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싫다면서 정코스로 다시 들어가자 자신도 서둘러 아이를 뒤쫓아 완주를 택하기도 했다.

대부분 참가자들은 1시간 남짓 자신들의 코스를 완주해 냈다. 바람도 그리 세지 않았다. 일반 나들이객에게는 조금 춥게 느껴졌지만 전문 마라토너 입장에서는 마라톤을 뛰기에는 가장 최적의 날씨라고 했다. 실제 이날 하프 마라톤을 뛴 선수들의 기록도 전반적으로 양호하다고 했다.

▲ 맨발로 10km 코스에 도전한 참가자. 노익장을 과시하듯 몸놀림이 젊은 사람 못지 않았다. ⓒ 추광규


▲ 뛰기보다는 걸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게 목적인 참가자들이 상당수였다. ⓒ 추광규


# 운동한 후 야외에서 먹는 '점심'은 꿀맛 그 자체

대회는 12시 30분경 되어서는 거의 마무리 되었다. 나머지는 시상식. 그리고 각자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는 순서였다. 단체로 참가한 곳은 도시락을 미리 주문해서 먹었지만 대부분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10여 명이 둘러 앉아 각자 도시락을 펼쳐놓은 6.15 안양본부 참가팀의 식탁은 풍성했다. 김밥은 기본이요 유부초밥 그리고 흑임자를 넣고 곱게 만든 주먹밥. 반찬도 다양하다. 유기농으로 키웠다는 풋고추에 호박전 김치전 게다가 잔치집에서 빠질 수 없는 홍어무침 까지. 거기에 더해 이날 협찬사로 나선 국순당에서 무료로 제공한 '생막걸리'까지 몇잔씩 겉들이니 야외에서 먹는 그 맛이 참으로 일품이다.

야외에서 점심을 즐기는 동안 무대에서는 각종 공연이 한창이다. 풍물 길놀이를 시작으로 노래공연, 그리고 힘찬 구령소리가 인상적이었던 '택견시연'등이었다. 또한 행사장 곳곳에는 각종 작은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통일연날리기대회' '페이스 페인팅' '행복통일 깡통치기'등이었다. 이중 '행복통일 깡통치기'는 2인 1조로 이루어졌다. 게임은 3m쯤 후방에서 참가자가 눈을 가린 채 뽕망치를 든 후 함께 참가한 동료로부터 방향에 대해 조언을 들으면서 앞으로 나간 후 뽕망치로 허공에 매달린 깡통을 힘껏 쳐 그 안에 든 사탕을 꺼내는 게임이었다.

▲ 쪽 시계방향으로 행사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여고생, 페이스 페인팅을 멋지게 그린 한 초등학교 여학생, 아빠 무등을 타고 완주한 꼬마소년. 인절미 찧기 행사에 참가한 참가자들 ⓒ 추광규


▲ 참가자들이 각 부스별로 준비해온 점심을 먹고 있다. 좌측에 앉은 사람은 수원시민신문 김삼석 대표. 그는 수원팀에 합류하지 않고 넉살 좋게도 6.15안산본부 팀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한끼를 해결했다. ⓒ 추광규


▲ 행사장 옆 논에는 철새들이 먹이활동에 열심 이었다. ⓒ 추광규


▲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줍기에 열심인 임진각으로 행차한 한 나들이객 ⓒ 추광규


▲ 임진각옆, 임진강역에는 특이하게도 헌병이 역사 출입구 근무를 선채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군사지역이라는 것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 추광규



# 참가자들 관심의 으뜸은 단연 시상식과 경품추첨 

대회 마지막 순서는 바로 시상식과 경품 추천이었다. 가장 큰 상품이 걸린것은 다름아닌 남.여 하프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패와 상품. 상품은 특이했다. 쌀 한가마니 였기 때문. 남여우승자에게는 각각 경기미 80kg이 수여됐다. 나머지 입상자에게도 전부 쌀이 상품으로 주어졌다.

'10km' 코스 남여 우승자에게는 각각 경기미 60kg이, '6.15km' 우승자에게도 마찬가지로 각각 경기미 40kg이 상품으로 주어졌다. 이는 각 코스 순위 10위까지 주어진 나머지 입상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각 코스 10위 입상자에게는 경기미 4kg가 주어졌기 때문.

상과는 거리가 먼 대다수 일반 참가자 들의 관심은 추첨으로 주어지는 특별상에 그 관심이 쏠렸다. 물론 이 특별상에도 쌀이 주를 이뤘다. 최고령 남여 참가자, 최연소 남여 참가자 에게는 경기미 4kg 씩이. 그리고 20여명에게도 추첨을 통해 10kg에서 2kg에 이르기 까지 당첨의 재미를 안겨줬다. 후원사의 협찬을 얻은 듯 2명에게는 음식물쓰레기처리기가 주어지기도 했다.

경품 추첨이 이루어지는 과정 내내 반원형으로 배치된 참가자들의 천막부스에서는 자신들 소속원의 당첨이 확인되는 순간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특히 한 참가부스의 경우 계속해서 한숨소리만 들리더니 끝내 한 소속원이 가장 큰 상품(?)으로 여겨지는 '음식물쓰레기처리기'에 당첨되는 순간 커다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 10km 여자 3등으로 입상한 한 수상자가 받은 상패와 쌀 한포대 ⓒ 추광규


행사는 오후 2시 반경 그렇게 막이 내렸다. 주최측은 안내방송을 통해 2006년 처음 시작이 되었을 때는 참가자가 고작 400여 명이었으나 작년에는 1000여 명 그리고 올해는 1200여명이 참가했으니 내년에는 2000명 참가를 목표로 하자고 강조했다.

햇살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서쪽하늘에서 내비치기 시작한 햇볕은 임진각 평화누리를 비치더니 이내 북쪽에도 그 햇살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차갑게 변하고 있는 대북관계에도 불구하고 한번 비치기 시작한 햇볕은 우리들 가슴속에서 여전히 그 따사로움을 잃지 않은듯 보였다.

사족이다. 주최측에게 사진 촬영을 빙자해 완주 메달을 두개씩이나 얻어온 내 성과도 결코 작지 않다. 내가 아는 한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의 특징이 자신의 사무실 가득 마라톤 대회 완주 메달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던데 그게 내심 부러웠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나도 이번 대회 참가를 계기로 메달 수집을 위해 마라톤에 흥미를 느끼게 될는지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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