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57) 객관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789] '객관화'와 '떨어져서 바라보기'
- 객관화하다
.. 이 지점을 정확히 알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멀리 밖에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 《윤진영-다시, 칸타빌레》(텍스트,2009) 52쪽
┌ 객관화(客觀化)
│ (1) 자기에게 직접 관련되는 사항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거나 생각하는 일
│ - 자기 자신의 객관화를 통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다 /
│ 누군가의 글 속에 객관화되어 있는 자신의 얘기를 읽는 일은 /
│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해석하면서
│ (2) [철학] 주관적인 것을 객관의 세계에 편입하는 일
│ - 그 나름대로는 자기실현이며 주체의 객관화가 될 수 있으니
│
├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멀리 밖에서 바라보는
│→ 나를 멀리 밖에서 바라보는
│→ 나 스스로를 멀리 밖에서 바라보는
│→ 나를 잊고 멀리 밖에서 바라보는
│→ 나한테서 떨어져 멀리 밖에서 바라보는
└ …
내가 나를 꾸밈없이 알기란 쉬울 수 있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꾸미지 않고 살아간다 하면 내가 나를 꾸밈없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꾸미면서 살아가고 있으면 내가 나를 꾸밈없이 알기란 어렵습니다. 둘레를 차근차근 돌아보는 매무새를 고이 붙잡는다면 내 모습을 허물없이 밝히고 스스럼없이 내보이며 거리낌없이 어깨동무합니다. 둘레를 곰곰이 헤아리는 매무새를 잃거나 놓을 때에는 둘레 모습은 둘레 모습대로 읽지 못하지만, 내 모습 또한 내 모습대로 알뜰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보고 네가 나를 보며 내가 너를 보는 일을 놓고, 우리들은 으레 '주관-객관'이라는 한자말과 '타자-자아' 같은 한자말을 끌어들이곤 합니다. 깊이 생각하거나 살피는 일을 가리켜 '철학'이라 하고, 우리 마음이 어떠한가를 짚는 일을 놓고 '심리학'이라 하는 만큼, 이런 말씀씀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 모습을 우리 눈길에 따라 살피며 우리 목소리로 밝히는 일이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 생각에 따라 가누며 우리 말글로 가리키는 일 또한 익숙하지 않고요.
어이없다면 어이없고 그저 그렇다면 그저 그런 일입니다. 우리한테는 틀림없이 우리 말이 있으나, 어떤 말이 우리 말인지 제대로 갈피를 잡는 사람이 드물 뿐더러,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제대로 된 우리 말글을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물려주지 못합니다. 영어바람이나 한자지식을 떠나, 우리 말다운 우리 말을 쓰지 못하고 우리 글다운 우리 글을 적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옷다운 옷을 입지 못하고, 우리 밥다운 밥을 먹지 못하며, 우리 집다운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데, 말이나 글만 올바를 수 없습니다. 우리 땅이 우리 땅이라 하기 어려운데다가, 우리가 벌어들여 쓰는 돈은 얼마나 돈답습니까. 우리가 다니는 학교나 일터는, 우리가 몸담은 마을이나 동네는, 우리가 사귀고 어울리는 동무나 이웃은 얼마나 우리다움이나 나다움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오른쪽으로 걷자고 하면 될 일을 굳이 '우측보행(右側步行)'이나 '우측통행(右側通行)'이라고 일컬으려고 하는 이 나라 공무원이요 지식인입니다. 왼쪽으로 걷든 오른쪽으로 걷든 걷는 사람 마음이지만, 어느 쪽으로 걷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걷는 모습을 우리 말답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왼걷기-오른걷기' 같은 말마디를 새로 빚어낼 줄은 더더욱 모릅니다.
'재활용-재사용'이 어찌어찌 다른가를 알맞게 깨닫지 못하기도 하지만, '되살림-되쓰기'로 풀어내어 좀더 또렷하게 깨달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도 옳고 바르게 일러 주며 몸에 잘 배도록 이끌려는 마음마저 없습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서로 알아들으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 문턱 덜 밟거나 안 밟은 사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우리 앞날을 내다보지 않습니다. 우리 오늘날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어제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늘과 앞날뿐 아니라 어제조차 살피지 못하는 우리들 말씀씀이이며 삶매무새이고 생각밭입니다.
┌ 자기 자신의 객관화를 통하여
│→ 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며
│→ 나 스스로를 차분히 바라보며
├ 누군가의 글 속에 객관화되어 있는 자신의 얘기
│→ 누군가 쓴 글에 적혀 있는 내 얘기
│→ 누군가 쓴 글에 다른 사람 눈으로 담긴 내 얘기
├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해석하면서
│→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 가만히 돌아보면서
│→ 스스로를 꾸밈없이 들여다보면서
└ …
생각을 생각답게 가누지 못하는데 말을 말답게 가누도록 바라기는 힘듭니다. 마음을 마음답게 품지 못하는데 글을 글답게 보듬기를 꿈꾸기는 어렵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무언가에 매이고 있는 동안에는 옳은 일을 하기 힘듭니다. 밖으로 내세우려는 어느 모습에 얽히고 있는 때에는 좋은 뜻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남을 말하기 앞서 나부터 제대로 들여다보고 살피고 바라보고 헤아려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런 줄을 알면서도 나부터 제대로 들여다보는 우리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차분하게 살피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말마디가 어떠한가를 깊이 바라보거나 널리 헤아리는 사람이 있기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겉차림에 매이고 이름값에 눌리며 돈과 시간에 쫓기는 판에, 알맞고 싱그럽게 말글을 가다듬자는 이야기는 뜬구름 잡자는 하품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들 '객관화'이니 '타자화'이니 또 무어이니를 읊고는 있어도, 정작 우리 모습을 내 밥그릇이 아닌 내 삶자락에 따라 사랑하고 믿으며 거짓없이 말하고 돌보기란 몹시 힘들다고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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