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운 단풍수줍은 모습으로 ⓒ 정기상
"야! 곱다."
시선이 닿는 곳 어디라도 곱게 물들어 있다. 수줍은 새색시가 차분하게 앉아 있는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다. 현란한 빛깔로 휘황찬란한 것이 아니라 가지런하다. 차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더욱 더 좋다. 아마도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다. 간간히 비추어지는 햇살에 드러나는 단풍의 모습은 감추고 있는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 와운마을에서 펼치는 작은 축제다. 2009년 11월 1 일 뱀사골에서 펼쳐진 지리산 단풍 축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지리산 환경 보존 염원 산신제를 비롯하여 처년 송에 소원 빌기, 단풍 술 마시기, 단풍 체험, 지리산 특산품 반짝 장터 등이 바로 그 것이다. 작은 마음이 모아져서 이루어지는 축제였다.
축제의 주체는 누운골 영농조합이다. 지리산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축제인 것이다. 관 주도가 아니어서 순수함이 배어 있다. 홍보도 미흡하였다. 그러나 축제를 펼치는 사람들 마음과 바람은 그 어느 축제에 못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어우러져 축제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제32회 피아골 단풍 축제는 지난주에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뱀사골에서 또 다른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이곳 주민들의 작은 축제인 모양이었다. 요란하지 않지만 작은 정성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축제여서 더욱 더 정감이 간다.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 뱀사골점잖은 모습으로 ⓒ 정기상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래서 집을 나서기가 망설여졌었다. 그러나 이미 묵은 친구와 약속이 되어 있었다. 되돌릴 수 없어서 집을 나섰다. 지리산으로 향하는데,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하늘이 점점 벗어나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은사님을 모시고 오랜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어서 의미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35년이 되었다. 학창시절을 함께 한 친구이니, 반갑기만 하다. 마음은 자주 만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서로가 바쁘게 살아가다보니, 얼굴 보기가 쉽지가 않다. 잘해야 일 년에 두어 번이다. 한번 만나려면 여러 번 전화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아야 하였다. 오늘의 만남도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날씨로 또 다시 연기할 수는 없었다.
▲ 2009 지리산 단풍 축제순수한 민간 축제 ⓒ 정기상
산수(傘壽, 80세)가 넘으신 노 은사님은 아직도 정정하셨다.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에는 정이 담뿍 배어 있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된 지난날들을 소재 삼아 담소하면서 달리다보니, 어느 사이에 지리산이었다. 무겁게 자리 잡고 있던 구름들도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구름의 잔흔들이 군데군데 햇살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단풍 빛깔을 빛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실상사와 달궁 계곡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도로 양 옆의 단풍나무 가로수들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그 현란함이 멀리 보이는 얌전한 산의 단풍과 대비가 되었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달리고 있는 도로는 불붙는 듯 화려하게 물들었지만 산 전체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조용하고 작게 이루어지고 있는 축제의 의미를 새롭게 찾을 수 있다. 그 것은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이란 말을 앞세우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가 안온하게 품어주듯이, 안기면 편안해지는 것이 사랑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치장을 앞세우는 것은 알맹이가 비어 있기가 쉽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 편안해지는 단풍은은한 미소 ⓒ 정기상
뱀사골을 지나 달궁 계곡을 지나 정령치에 이르는 지리산의 단풍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랑은 용기를 빛나게 해준다는 점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리산의 단풍은 다른 곳의 단풍과는 확연하게 비교가 될 정도로 달랐다. 지리산 단풍을 바라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내장산 단풍은 현란하다. 화려하고 어지럽다. 그 색깔이 어찌나 진하고 붉은지, 마음 둘 곳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내장산 단풍에 취하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붕 떠서 방황하고 있다. 마음 둘 곳을 찾기가 어려우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런 단풍이 매력에 푹 젖는다. 그러나 지리산의 단풍은 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점잖은 안방마님을 생각나게 한다. 얼굴에서 배어나는 인자한 미소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처럼 지리산의 단풍은 일상의 번다함으로 지쳐 있는 영혼을 편안하게 해준다. 지난 일 년 동안 쉬지 않고 뛰어오면서 숨가빠 하였던 몸과 마음에 위로를 보내주고 있다. 넓은 가슴으로 안온하게 안아주는 어머니의 가슴을 닮아 있다.
▲ 열린 지리산누구라도 품어주는 ⓒ 정기상
점잖은 지리산의 단풍을 보면서 점 더 많이 베풀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단풍도 속절없이 삭풍의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듯이, 우리의 삶도 유한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여한 없이 남에게 나눠주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가 아니겠는가? 조금 억울한 일을 당하였다고 하여 방방 뜰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자중한다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의 단풍은 역동적으로 끓고 있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아마 그 것은 묵은 친구들을 만난 덕도 있을 것이고 노 은사님의 가르침도 한 몫을 하였다. 나서지 않더라도 나를 관조할 수 있으면 세상 일이 만사형통할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슬기롭게 대처하여 진중하게 살아간다면 행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지리산 단풍아 참으로 고왔다.<春城>
덧붙이는 글
데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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