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복됐다면 당장 정부정책 바꿔야 나랏빚 폭증... 한계상황에 이르고 있다"
[인터뷰] <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 소장이 말하는 한국경제의 길
다음주부터 <오마이뉴스>와 김광수경제연구소는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경제시평(가칭)' 연재 코너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매주 한 차례씩 실리는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 문제 전반에 대한 고찰과 분석을 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아니, 연간으로 해서 따지면 10% 넘게 경제가 성장했다고 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금리를) 올려야죠. (한숨을 내쉬며) 이것이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 성장 잠재력과 상관없는 엉터리 정책을 빨리 그만둬야 하죠."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어느새 목소리 톤도 올라가 있었다.
김 소장은 오히려 "만약 정부 말대로 경기가 회복됐다면 하루빨리 금리도 올리고,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여야 한다"면서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수십조 원의 돈들 쏟아 부으면, 통계상으로 당연히 회복된 것처럼 나오게 마련"이라며 "정부 스스로도 아직 (회복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김 소장은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국내총생산(GDP)의 통계상의 오류까지 조목조목 지적했다. 물론 이런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던 그였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도 GDP 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2시간 가까이 그와 마주 앉았다. 경제연구소에서 매주 유료 회원들에게 보내는 경제시평과 각종 보고서를 쓰고, 연구하느라 좀처럼 외부 인사들과 인터뷰가 쉽지 않은 김 소장이다.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질문에 그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과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렇게 돈을 쏟아 붓으면, 수치에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
자리에 앉자마자, 얼마 전에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3분기 GDP가 2.9% 성장(전기 대비)한 것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곧장 "놀랄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리 '놀라운' 표정은 아니었다. 그의 말을 적어본다.
"이번에 발표한 GDP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10%가 넘는 성장을 하는 것인데…. 정부가 경기부양책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쏟아 부은 것을 생각하면, 통계상 그렇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요."
▲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 그래도 전보다 경기회복세가 뚜렷하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고개를 갸웃하며) 정말 한국경제가 실제로 성장했느냐는 것이다. 올해 정부지출만 300조 원이 넘는다. 이 많은 돈을 끌어다 희망근로사업이나 청년인턴제, 경인운하 등 낭비성 토건 사업에 붓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업이 단기적인데다,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위기 속에 당장 정부가 재정을 끌어와 급한 불부터 끄는 조치들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최근 정부가 '우리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자축하는 것엔 매우 비판적이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가 경기부양책에 쓴 돈의 비율을 따지면 다른 선진국보다 2~3배 많다"면서 "그래도 서민들은 여전히 높은 물가 속에 살기 힘들고, 기업들도 투자감소와 구조조정 등으로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 삼성전자 등 최근 실적발표를 보면 매우 좋게 나오고 있는데?
"(곧장) 일부 수출 대기업의 이야기다. 그 역시 환율 효과가 크다."
- 환율 효과라면?
"(물 한 잔 마신 후) 지난 2007년 하반기만 해도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였다. 이후 2008년 초부터 뛰기 시작해, 올해 3월엔 1600원선까지 갔다가, 최근엔 1200선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올 1, 2분기 평균 환율을 1300원대 초반으로 잡아도, 2007년보다 무려 45%가량 높다."
- 그만큼 수출기업 입장에선 제품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고….
"(곧장) 그렇다. 또 기업들의 실적들이 원화로 표시되지만, 이를 원-달러 환율로 바꿔보면, 실상은 전혀 딴판이다."
"환율 효과로 GDP도 상당히 부풀려졌을 것"
실제로 김광수연구소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더라도 금방 드러난다. 삼성전자가 거둔 지난 1분기 1476억 원의 영업이익을 두고, 증권가에선 '어닝 서프라이즈'(기대 이상치의 실적을 일컫는 말)라고 했지만 작년 말 이후 환율 변동 효과를 적용하면, 오히려 4253억 원 적자로 바뀌게 된다.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2, 3분기 실적도 과거 2년 전의 환율을 적용할 경우 결과는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 김 소장의 날카로운 지적은 계속됐다.
"문제는 이런 환율변동으로 기업들의 생산활동과 상관없이 실적이 부풀려진다는 것이지요. 특히 작년과 올해처럼 환율 변동의 폭이 클 경우엔 이런 실적들이 고스란히 GDP 통계에 잡히는데….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 그렇다면 지금 나오는 GDP 지표들도 어느 정도 부풀려졌다고 볼 수도 있나.
"(고개를 끄덕이며) 현재 GDP는 원화로 표시하는 통계다. 예전에 1달러당 900원 하던 것이 1200원대라고 하면 30% 이상 오른 것 아닌가. 똑같이 1달러 흑자가 나면 예전엔 900원으로 잡히던 것이 이젠 1200원(흑자)로 잡히는 것 아닌가. 물론 이 과정에서 통계적으로 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부풀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게다가 GDP에 쓰이는 통계 자료 자체에 오류도 종종 나와요. (GDP를) 주요 경제 관련 부처 등에서 모인 기초 데이터를 활용해 만들고 있는데, 이때 수치상 오류가 그대로 반영되는 거지요. (통계 자료를 내보이며) 예를 들어 플래시 메모리의 수출 물량과 가격이 나와 있는 것인데, 지난 8월까지 2억 달러 내외로 꾸준하다가 갑자기 9월에 6억 달러로 급증한 것으로 돼 있는데, 나중에 따져보니까 해당 관청에서 수치를 잘못 써놓은 것이죠."
예전부터 연구소 쪽에선 GDP 통계 자체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한마디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함께, 최근 들어 환율 변동이 심해지면서 GDP 통계에 대한 신뢰성은 더 논란거리가 됐다.
세계적인 석학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도 최근 국내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GDP는 실제 정확하지도 않고,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주지도 않는다"면서 "현실을 반영할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금리 올리면 모두가 망할지도... 나랏빚 폭증 한계 상황에"
▲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김 소장은 정부의 재정 적자와 나랏빚, 그리고 가계 빚을 꼽았다. 물론 부동산 버블에 대한 심각성은 그동안 연구소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던 문제였던 만큼,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 예전에 김 소장께서 시평에서 정부의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 급증으로 화폐적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는데?
"(잠시 생각하다) 정부는 물가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 전형적인 탁상통계의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실제 우리가 느끼는 물가는 경제위기 이전에 비해 이미 2배 이상 올랐다고 본다."
특히 폭증하는 국가채무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나랏빚이 심각한 수준이며, 정부가 버틸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국가 채무가 심각한 상황이죠. 정부의 재산이 지난 97년 이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어요. 정부는 공기업이든, 뭐든 국유 재산을 매각해놓고, 이를 국가 수입을 잡지요. 이것으로 마치 국가 재정이 건전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나라가 아주 빠른 속도로 가난해지고 있는 셈이죠."
김 소장은 이어 "여기에 정부채권(국채)을 발행하고, 적자재정을 펼치면서 국가채무가 폭증하고 있다"면서 "또 정부가 공기업을 앞세워 돈도 안 되는 대규모 사업까지 벌이는 것을 감안하면 잠재적 국가채무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탁자 위에 올려 있던 물컵에 입을 댔다. 그리곤 그의 말은 계속됐다.
"문제는 정부뿐 아니에요. 민간 가계들도 천문학적인 빚에 물려 있어요. 만약 지금 같은 경기 회복 추세라면 언젠가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겠지요. 지금 금리를 올리면 문제는 심각해질 거예요."
그가 말하는 심각성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도 맥이 닿아있다. 더 들어보자.
"그동안 경기불황으로 정책당국은 터무니없이 기준금리를 낮췄고, 시중금리도 낮아졌죠. 덕분에 부동산 버블 붕괴도 일시적으로 지연되고, 일부에선 오히려 버블이 다시 쌓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회수하면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는 사람들은 난리가 날 겁니다. 물론 부동산 시장 붕괴도 이어질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 만나게 된다면? "젊은세대 중심의 세대교체가 해결책"
올 4월 그는 '설득력 없는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라는 제목의 시평(이 내용은 '끝나지 않은 경제위기'책에도 실려 있다)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고 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고갈되고 있는 지금 이 마당에 전국에 수많은 돈을 들여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4대강을 정비하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가 목매달고 해야 할 정도로 정말로 화급하고, 시급한 일인가"
그래서, 물었다. "혹시 이명박 대통령을 정말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건네실 것인가"라고. 김 소장은 그냥 웃었다. 이어 곧장, "왜 만나야죠?"라는 짧은 반문이 돌아왔다. 더 이상 말을 잇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앞서 언급한 시평에서 이미 답을 했다.
"대통령이야 자전거를 타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일반 서민들은 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다. 자전거 타고 갈 여유가 없다. 국민에게 당장 화급하지도 않은 자전거 길과 4대강 정비보다 대중교통 수단의 효율성을 높여주고, 21세기에도 지속적인 성장과 새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진짜 친환경 녹색성장 정책을 펴주길 원한다."
'정직하고 도덕적인 지식의 생산기관', '한국 최고의 중립적인 민간 싱크탱크'를 자임해 온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나이도 이제 만 10살로 접어들고 있다. 김 소장 스스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거나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시간이 이 정도 됐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연구소의 각종 보고서를 돈을 내가며 보는 유료회원들도 이미 수천 명에 달한다. 주요 경제부처 공무원을 비롯해, 증권사 관계자, 기업 CEO, 언론인까지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 상당수가 들어 있다.
또 일반 대중을 상대로 다음사이트에 김광수경제연구소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만들어 놓고, 회원들과 자발적 참여와 토론으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이곳 포럼에 가입한 회원만 해도 6만 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정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그동안 내놓은 시평 등을 통해서 그는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 소장의 말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보죠. 그리고,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자식세대 중심의 세대교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봐요. 이들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한국경제의 미래와 희망은 없다고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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