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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찾아 오는 그림자 하나

작품은 작품으로 말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등록|2009.11.04 18:04 수정|2009.11.04 18:04
한 해 동안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이 결과가 작품으로 발표전시 오프닝을 하였다. 직원들은 그 준비를 하느라 매일 하는 업무외에도 야근과 토,일요일에도 출근하여 교육생들의 작품들이 돋보이도록 정성껏 마무리 손질을 했다.

비문해반의 어르신들이 교육기간 중에 쓴 수필, 동시들은 워드타이핑을 해서 정리하고 문집을 발간하고, 몇 몇 분은 후원을 확보하여 자선전도 발간하였다. 영어반은 일일이 그림을 그려가면서 단어에 맞는 그림이야기들을 만들었고, 황혼의 프로포즈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 동아리들은 모든 진행과정과 활동들은 사진판넬을 만들었다.

무언가를 받치기 위한 벽돌하나도 모두 한지로 곱게 싸는 등, 모든 것들을 일일이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등  전직원이 함께 하였다. 쓰지 않는 죽어가는 나뭇가지를 주어서  초록잎들을 만들어 일일이 붙이고, 책상마다 연분홍보자기들을 일일이 다리미로 다려서 곱게 펼쳤다.

발표발표회를 위해 일일이 손으로 만든 나무와 한지작품 ⓒ 청노평생교육센터


책상아래와  출입문을 비롯 모든 딱딱한 곳에는 고운 한지를 붙이고 천장에도 줄을 달아 비문해 어르신들의 육필편지들이 잘 보이게 달았다. 등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고사목을 구해 둥글게 톱으로 썰고, 은행나무와 단풍들을 한아름 주워서 뿌려 가을정취가 물씬나는 은은한 오솔길도 만들었다.

등작품서예등과 한지등작품을 위해 낙엽들과 단풍들을 주워 설치 ⓒ 청노평생교육센터


교육어르신들에게 소학교때의 추억을 살려주기 위해 옛날 정자와 지게, 소쿠리 등 옛 소품들도 들여오고 색색이 한지등도 수십 개 들였다. 그런데 디스플레이를 한창 하던 중 서예작품을 낸 어르신 한 분이 들어오셨다. 웃으며 들어오신 어르신은 갑자기 벽을 쳐다보다가 표정이 변하면서 화를 크게 내셨다.

"선생님들 수고하시네요"
"아니? 제 작품이 왜 출입구 저 구석벽에 있는가요?"
"아..네 그것은 작품이 너무 커서 독립된 위치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조절을 했어요!"
"아니? 전국대회 특상작품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는 겁니까?"
"아니예요. 대회 상받고 안받고는 교육발표전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일 년동안 배운것들을 발표하는 것이기고 작품의 대,소크기의 균형을 생각해서 디스플레이 한 거예요!"


"균형이요? 무엇을 가지고 균형의 기준을 잡습니까? 어떻게 제 작품을 저기 안 좋은 자리에 놓을 수 있어요? 균형과 조화란 것은 이런 것 아닙니다!"

" 이 공간안에는 특별히 좋은 자리와 안 좋은 자리가 없어요. 전체를 위해 골고루 모두 포인트를 두어서 하나의 일체감을 주게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어르신은 무척 노발대발하셨다. 초대강사님의 작품을 떼고 그 자리에 걸어주겠다고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오시는지 크게 화를 내고 작품을 도로 가져가신다고 하였다. 같은 서예반 회장님이 만류하셔서 '마음대로 하십시요!" 하고 한마디 하시고 가셨지만 황당했다.

그러나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대로 그 분이 걸고 싶어하는 자리에는 다른 20여점의 소품작품들이 있어, 대형작품의 들러리처럼 보여 부득불 초대강사작품을 창가쪽으로 옮기고 강사님자리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분이 가신 뒤 마지막으로 작품을 늦게 가져 오신 어르신 또한 그 분처럼 화를 내셨다. 작품을 배치한 자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그 분의 작품 또한 그 분이 원하는 위치와 비슷한 곳에 놓고 조용한 성품의 다른 분의 작품을  옮겼다.

오늘 나는 다리가 골절되어 나는 하나에서 열까지를 전부 못하고 일차로 디스플레이 된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균형되게 잡아주는 전시코칭역할을 했다. 교육생들이 많아서 1사람 1작품 출품만 받아들이고 작품크기도 일정크기로 제한을 했다. 그러나 그 분은 2점을 제출했고 한 작품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3배크기였다.

자연히 작은 벽면에 비슷하게 전시된 작품들에 비해 3배가 큰 작품은 어울리지 않았고, 붓을 처음 잡은 초보자들의 작품들과 비교되어 독자적인 벽면을 마련해서 독립적으로 보이게 조절하였다. 그러나 그 분은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 자신의 작품을 미리 직접 2점을 걸어놓고 갔던 모양이었다.

작품발표된 서예작품들...어느 위치던지 오직 작품은 작품으로 말한다. ⓒ 청노평생교육센터


 이렇게 화를 내시고 자신들의 작품을 원하는 위치에 놓고 싶어하신 분들은 경제력, 사회적지위 등이 모두 썩 괜찮은 분들이었다. 서예시간에는 깍듯이 내게 예를 차리기를 다른 사람에게 우선하여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모두들 가기를 꺼려하는 교정시설에도 내가 가자고 하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자원활동도하셨다

그러나 마음이  무척 착잡했다. 주말이면 결혼식 주례를 도맡으시고 평소에 내가 보아왔던 평생을 교육자로 보내신  점찮은 언행과는 너무나 다른 돌발된 감정표시를 두 분이 하였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75세가 넘어가시면서 목소리가 종종  커져서 여러사람들과 갈등이 생겨 사무실에서 조절하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과 대화도 잘 하지 않고 밥도 식당에서 혼자 먹고 빈 교실에 혼자 오래남아 계신다.

평소에 언제나 자신만이 옳다는 성격이나 남의 눈에 잘 띄는 앞자리를 좋아하던 성품탓도 있다고 누군가가 그랬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르신들도 모르게 황혼이 되어 불시에, 혹은 서서히 찾아오는 그림자인 것 같다.

그 그림자는 황혼이혼로 인한 독거로 혼자 많이 지낸 외로움과, 목소리에 힘을 주면 모두들 시키는대로 하던 옛날에 대한 자부심이 바탕이 되어,  존중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같은 단순한 감정에서 나온 것 같다. 황혼의 나이에 대한 자존감의 관념때문인지  '감사합니다' 와' 건강하십시오' 라는 윗 어른으로서의 인사와 당부 말은 곧잘 하지만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말은 쉽게 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이들어갈 수록 세상일에 무디어 지고 허허 하고 그냥 웃어 넘기면서 초연해지는 황혼도 있지만, 갈 수록 예민해지고 작은 일에 자격지심을 느끼고 크게 반응을 하는 황혼도 있다.
아이처럼 발표된 작품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고운 한복을 입고 삼삼 오오 사진들을 찍고 크게 웃는 분들과, 아무와도 가슴을 열지 않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혼자 밥먹고, 혼자 교실에서 벽을 쳐다보며 지내는 분들이 함께 공존한다. 

그런 그늘진 구석은 아마도 아직 노년이 되지 않은 나의 마음에도 있을 것이다. 한 세상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숨어있다고 느껴진다. 단지 아직 많은 기회가 있는 젊음과 그늘보다 더 빛난 정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그늘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옛 선현이 '잘 가노라 닫지 말고, 못 가노라 긋지 말라' 고 잘 된다고 해서 너무 지나치지 말고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라는 시를 남긴 것처럼  적절한 마음균형을 유지하여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한층 더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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