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이웃과 지인으로부터 받는 행복이 참 큽니다.
가을이 한창일 때 저희 뒷집, 마당안숲의 손영원선생님께서 한되박의 밤을 가져오셨습니다. 집으로 몸을 걸친 밤나무에서 얻은 얼마간의 밤을 이웃과 나눈 것입니다.
며칠 전 제가 집밖에 있는 동안 안상규화백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영선이집에 갔었어. 이안수선생드리라고 사과를 한 박스 주어서 실어왔는데 서재에 두고 갈게."
김영선선생님은 일산외곽에 배와 사과, 복숭아와 자두를 심은 작은 과수밭을 가진 안화백님의 삼십수년전의 고등학교 제자였고, 헤이리를 몇 번 오가면서 저와도 인연을 가진 분입니다. 지난봄 복숭아꽃이 한 창이던 때 그 과수밭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인 추억이 있습니다. 복숭아꽃잎을 따라 도원桃源으로 들었던 어부가 되었던 것이지요. 김선생님은 그 인연을 잊지 않으시고 황금빛사과를 안선생님 편에 보내신 것입니다.
청향재의 송효섭교수님께서는 한 달 전쯤 소재와 화품에 큰 변화를 준 작품을 공개했습니다. 그 연작에는 '철인哲人'과 '도인道人' 같은 인물 연작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송교수님께서는 저의 서재에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 그림은 이곳에 있어야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내민 것은 '편협한 마음을 위한 변명展_이시대 사상가들과의 만남' 전시가 끝난 '도인'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래사의 영만스님과 김영란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영만스님은 미국의 한 사찰에 1년간 머물면서 만나 배움을 나누던 백인 불자가 오셨고 나이들고 병든 그분의 소원에 따라 함께 한 달간 한국의 사찰을 순례했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영란선생님께서 저녁을 사셨지요.
이뿐만 아니라 모티프원에 게스트로 오시는 분들 모두는 제게 이런 저런 전문분야에 대한 경험과 깨달음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고 가시곤 합니다.
제가 매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가를 문득 인식하곤 합니다. 제가 건네받는 이런 행복들이 저만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될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와의 겸상으로 밥을 먹으면서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얘기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래채 사랑방으로 저녁밥을 차린 소반을 내오시면서 저도 할아버지와 함께 하도록 했을 때였습니다. '장이나 국 한 숟가락 먼저 먹고 밥을 먹어라'든지 '부지런만 하다면 밥 굶을 일은 없다'라는 보편적인 삶의 이치부터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드는 구체적인 농사법 같은 것들입니다.
할아버지와의 밥상머리 대화가 아련히 생각났을 때 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참 행복하다. 이런 행복이 우리만의 노력 때문이겠는가. 물질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이 행복을 남에게 전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 방법으로 어린 가장이나 가정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없었던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데려다 함께 밥을 먹으면 어떨까. 그들이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관심 속에 있고 세상은 따뜻한 곳이므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할아버지의 밥상머리에서 들었던 얘기들처럼 그들에게 전하면 어떨까?'라는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처는 아직은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불규칙한 직장에서의 스케줄 탓에 상을 차릴 만한 여유가 있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의 따뜻함을 경험케하는 것이 주고 우리가족과 함께하는 밥상을 통해 소소한 대화로 용기를 주는 것이 목적이므로 외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기도 해서 미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몇 주 전에 유한대학의 이경림교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우리대학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이 320명입니다. 그중 200여명에게 특강을 부탁드립니다. 그중 반은 졸업을 앞두고 있으므로 진로에 대한 고민과 디자이너로 세상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갈지에 대한 것이었으면 합니다."
이교수님의 청은 평소 제가 생각해왔던 '밥상머리 대화'나 '밥상머리 교육'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그들과 마찬가지의 처지로 졸업을 앞둔 딸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들이 적지 않으므로 그것들을 진솔하게 들려준다면 학생들에게 버리는 시간은 아닐 듯싶었습니다.
그날이 어제(11월 2일)였습니다. 2시간 동안 앞으로 디자이너로 살아야할 날들에 초점을 맞추어 '지구를 살리는 디자인,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주제로 구체적인 디자인의 방법론대신 보편적 원리와 자세에 대해 말했습니다. 디자인이 왜 '사랑'이며 '배려'인지, 디자이너가 왜 철학자이어야하고 Specialist이기 앞서 Generalist야 되는지를 전하려고 애썼습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코너브룩의 제지공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온몸이 찢겨 가루로 변하는 나무의 죽음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어떤 책임을 느껴야하는지 그리고 자연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 강의를 준비하는 짧지 않은 시간 내내 '가장 완벽한 디자인은 천지가 창조된 직후의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으로부터 너무 멀리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등잔불 아래에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둥근 작은 소반위의 밥을 나누던 풍경이 지금보다는 그 태초의 모습에 한 발 더 가깝다고 여깁니다.
제가 다른 이들로부터 건네받은 그 행복들을 다시 나누는 이상적인 방식으로 여기는 '밥상머리대화'를 위해 처의 은퇴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않느냐, 는 마음이 시키기도 한 이번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한번에 '효율적'으로 의사를 전달했다는 보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강연'보다는 '대화'가 더 커뮤니케이션의 원형에 가깝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일방과 쌍방의 너무나 큰 차이 때문입니다. 현재의 교육에서 효율성 때문에 포기한 것들이 너무 많지요. 각각의 욕구에 대응하는 개별성과 팔을 뻗히면 손을 잡아 체온을 전할 수 있는 친밀성이 효율성보다 중요하지않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밥상머리교육, 아니 밥상머리대화는 파편화된 사회와 가정에 화급히 복원되어야할 우리의 오래된 미덕입니다.
가을이 한창일 때 저희 뒷집, 마당안숲의 손영원선생님께서 한되박의 밤을 가져오셨습니다. 집으로 몸을 걸친 밤나무에서 얻은 얼마간의 밤을 이웃과 나눈 것입니다.
"오늘 영선이집에 갔었어. 이안수선생드리라고 사과를 한 박스 주어서 실어왔는데 서재에 두고 갈게."
김영선선생님은 일산외곽에 배와 사과, 복숭아와 자두를 심은 작은 과수밭을 가진 안화백님의 삼십수년전의 고등학교 제자였고, 헤이리를 몇 번 오가면서 저와도 인연을 가진 분입니다. 지난봄 복숭아꽃이 한 창이던 때 그 과수밭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인 추억이 있습니다. 복숭아꽃잎을 따라 도원桃源으로 들었던 어부가 되었던 것이지요. 김선생님은 그 인연을 잊지 않으시고 황금빛사과를 안선생님 편에 보내신 것입니다.
▲ 김영선선생님께서 직접 농사를 지어 보내주신 사과 한 박스 ⓒ 이안수
청향재의 송효섭교수님께서는 한 달 전쯤 소재와 화품에 큰 변화를 준 작품을 공개했습니다. 그 연작에는 '철인哲人'과 '도인道人' 같은 인물 연작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송교수님께서는 저의 서재에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 그림은 이곳에 있어야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내민 것은 '편협한 마음을 위한 변명展_이시대 사상가들과의 만남' 전시가 끝난 '도인'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 저의 아이콘으로 모티프원의 서재에 걸리게 된 송효섭교수님의 '도인' ⓒ 이안수
여래사의 영만스님과 김영란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영만스님은 미국의 한 사찰에 1년간 머물면서 만나 배움을 나누던 백인 불자가 오셨고 나이들고 병든 그분의 소원에 따라 함께 한 달간 한국의 사찰을 순례했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영란선생님께서 저녁을 사셨지요.
이뿐만 아니라 모티프원에 게스트로 오시는 분들 모두는 제게 이런 저런 전문분야에 대한 경험과 깨달음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고 가시곤 합니다.
제가 매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가를 문득 인식하곤 합니다. 제가 건네받는 이런 행복들이 저만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될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와의 겸상으로 밥을 먹으면서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얘기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래채 사랑방으로 저녁밥을 차린 소반을 내오시면서 저도 할아버지와 함께 하도록 했을 때였습니다. '장이나 국 한 숟가락 먼저 먹고 밥을 먹어라'든지 '부지런만 하다면 밥 굶을 일은 없다'라는 보편적인 삶의 이치부터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드는 구체적인 농사법 같은 것들입니다.
할아버지와의 밥상머리 대화가 아련히 생각났을 때 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참 행복하다. 이런 행복이 우리만의 노력 때문이겠는가. 물질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이 행복을 남에게 전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 방법으로 어린 가장이나 가정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없었던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데려다 함께 밥을 먹으면 어떨까. 그들이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관심 속에 있고 세상은 따뜻한 곳이므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할아버지의 밥상머리에서 들었던 얘기들처럼 그들에게 전하면 어떨까?'라는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처는 아직은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불규칙한 직장에서의 스케줄 탓에 상을 차릴 만한 여유가 있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의 따뜻함을 경험케하는 것이 주고 우리가족과 함께하는 밥상을 통해 소소한 대화로 용기를 주는 것이 목적이므로 외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기도 해서 미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몇 주 전에 유한대학의 이경림교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우리대학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이 320명입니다. 그중 200여명에게 특강을 부탁드립니다. 그중 반은 졸업을 앞두고 있으므로 진로에 대한 고민과 디자이너로 세상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갈지에 대한 것이었으면 합니다."
이교수님의 청은 평소 제가 생각해왔던 '밥상머리 대화'나 '밥상머리 교육'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그들과 마찬가지의 처지로 졸업을 앞둔 딸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들이 적지 않으므로 그것들을 진솔하게 들려준다면 학생들에게 버리는 시간은 아닐 듯싶었습니다.
그날이 어제(11월 2일)였습니다. 2시간 동안 앞으로 디자이너로 살아야할 날들에 초점을 맞추어 '지구를 살리는 디자인,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주제로 구체적인 디자인의 방법론대신 보편적 원리와 자세에 대해 말했습니다. 디자인이 왜 '사랑'이며 '배려'인지, 디자이너가 왜 철학자이어야하고 Specialist이기 앞서 Generalist야 되는지를 전하려고 애썼습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코너브룩의 제지공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온몸이 찢겨 가루로 변하는 나무의 죽음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어떤 책임을 느껴야하는지 그리고 자연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 강의를 준비하는 짧지 않은 시간 내내 '가장 완벽한 디자인은 천지가 창조된 직후의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으로부터 너무 멀리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등잔불 아래에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둥근 작은 소반위의 밥을 나누던 풍경이 지금보다는 그 태초의 모습에 한 발 더 가깝다고 여깁니다.
▲ 유한대학의 특강을 위해 가는 중에 만나 한강. 물위에 떠있는 배들의 머리가 향한 방향을 각각이어도 역광속에서 아름답습니다. 이 작은 배들은 세상을 유영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 같다, 는 생각이 이 들었습니다. ⓒ 이안수
제가 다른 이들로부터 건네받은 그 행복들을 다시 나누는 이상적인 방식으로 여기는 '밥상머리대화'를 위해 처의 은퇴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않느냐, 는 마음이 시키기도 한 이번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한번에 '효율적'으로 의사를 전달했다는 보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강연'보다는 '대화'가 더 커뮤니케이션의 원형에 가깝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일방과 쌍방의 너무나 큰 차이 때문입니다. 현재의 교육에서 효율성 때문에 포기한 것들이 너무 많지요. 각각의 욕구에 대응하는 개별성과 팔을 뻗히면 손을 잡아 체온을 전할 수 있는 친밀성이 효율성보다 중요하지않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밥상머리교육, 아니 밥상머리대화는 파편화된 사회와 가정에 화급히 복원되어야할 우리의 오래된 미덕입니다.
▲ 유한대학은 운동장과 주변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나눔의 숲'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아무래 생각해도 숲은 진정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나누어 줍니다. 숲을 담을 수만 있다면... ⓒ 이안수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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