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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소설인지 사람 위한 소설인지 헷갈리는 <개>

이 책 읽고 나면 '개만도 못한 놈'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등록|2009.11.06 10:06 수정|2009.11.06 10:27

▲ 진돗개 보리의 눈에 비친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인간사. 참으로 많은 걸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습니다. ⓒ 윤태


김훈 소설 <개> 읽어보셨습니까?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2005년 작품입니다.

저희 지점 일부 독서토론 교사들이 <원행>이라는 이름의 모임에서 한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등산이나 야외에 모여 토론활동을 벌이고 있는데요, 이번에 선정된 책이 김훈 장편소설 <개>입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많아서 이 소설가를 대부분 잘 알겠지만 아마 <개>를 읽은 분들은 그리 많지는 않은 듯 합니다. 책 뒤에 나와 있는 발생부수를 보니 말이죠.

소설 <개>는 진돗개 '보리'의 눈으로 가난한 사람들(주인들)의 애환을 그려나가는 매우 서민적인 분위기의 쉬운 문체로 된 소설입니다. 섬세하고 투박한 그림들을 글을 통해 풍경화 그려나가듯 한다고 하면 맞을까요?

▲ 김훈 소설 <개> ⓒ 도서출판 푸른숲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이다. 태어나보니 돼지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이고, 태어나보니 암놈이거나 수놈인 것이다>

첫 페이지를 이렇게 열어가는 소설 <개>, 아무리 개의 눈으로 사람세상을 본다지만 어찌 개가 인간사를 다 꿰뚫어볼 수 있으랴? 작품 중간중간에 이 소설을 풀어나가는 개 '보리'는 인간사를 궁금해 하면서도 인간심리를 꿰뚫며 때로는 해학과 풍자적인 '개의 멘트'로 슬며시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영희가 잡은 목줄에 이끌려 보건소로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는 일은 지나친 호사 같아서 창피스러웠지만 개가 저 혼자서 예방주사를 맞으러 갈 수는 없었다. 개 혼자 가면 사람들은 예방주사를 놓아주지도 않는다>

개 혼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간다는 표현과 개 혼자 가더라도 주사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개의 생각을 들어보면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개 입장에서는 매우 진지한 생각이지만 사람 입장에서 보면 우습고 그 생각이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천진난만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주인공 보리 엄마가 맏형을 도로 엄마 뱃속에 넣는 장면은 참으로 가슴 찡하게 만듭니다. 맨 처음 태어난 맏형은 태어나면서 앞다리가 부러진 경우였지요. 이렇다보니 젖 먹는데도 힘들고 앞으로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힘들게 살아갈 날이 걱정돼 보호 본능으로 따듯하고 편안한 엄마 뱃속으로 도로 넣는 것인데 주인 할머니는 지새끼 잡아먹었다고 몰매를 줍니다.

잡아먹는 건 인간이 개를 잡아먹을 때 쓰는 표현이고 엄마는 단지 한평생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뱃속에 넣은 것뿐인데요. 토끼, 햄스터 등이 보호 차원에서 새끼를 먹는 경우는 흔히 봤지만 개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건 이번 소설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댐 건설로 고향마을을 떠나 바닷가로 오게 된 보리,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보리의 주인님은 작은 통통배로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으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합니다. 배가 정박할 때 보리가 밧줄을 물어 고정대에 걸어주곤 하지요.

그 작은 배, 드넓은 망망대해에서 외로움과 힘겨움으로 고기 잡는 주인님을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배에 몰래 타고 있다가 주인님에게 '깜짝쇼'를 벌이는 진돗개 보리. 그 통통배 안에서 인간과 개가 나눌 수 있는 모든 교감을 느낀 진돗개 보리. 이 장면도 가슴 깊숙이 남는 모습입니다.

▲ 앞발 없는 흰멍이.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출연했던 유명한 녀석이죠. 김훈 소설 <개>에서 처음에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보리의 맏형이 생각납니다. 이 소설에서도 맏형의 앞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이죠. ⓒ 김그네님 제공

마지막, 마음속에 품고 있는 옆 동네 암캐 흰순이가 사람들에게 잡혀 먹는 모습을 보리가 숨어서 지켜봅니다. 몽둥이로 흰순이의 머리를 까대고 그 여파로 똥물을 흘리며 먹은 것을 토해내는 흰순이, 잠시 탈출했다가 주인어른의 부름을 받고 비몽사몽 비틀비틀 꼬리 흔들며 주인 곁으로 갔다가 청년의 몽둥이에 숨지고 사람들에게 고기가 되어 간 흰순이. 아무것도 모르는 흰순이의 강아지들이 그 앞에서 뒤엉킨 채 구르며 노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흰순이의 주인 아들 갑수가 학교에서 흰순이가 죽어가는 상황과 느낌을 솔직히 글로 써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탑니다. 갑수는 그 내용을 발표하면서 목이 메이고 눈물을 여러번 흘리기도 하지만 상품으로 나온 인라인스케이트와 로봇을 받아들고 번쩍 들어 보이며 환한 웃음을 짓는 갑수의 모습,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리의 눈을 통해 봅니다.

인상 깊은 내용들을 언급하며 제 감상과 함께 적어봤습니다. 흰순이가 불쌍하다구요? 그러나 어찌합까? 글 앞에서도 주인공 '보리'가 밝혔지만 "태어나고 보니 개이고, 수놈이고, 태어나고 보니 사람이고 메뚜기이고 쥐인데..."

제대로 된 개 노릇을 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개들을 대표해서 진돗개 '보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 주장합니다. 공부를 위해 과외를 받거나 따로 선생님을 모실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개에게는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몸으로 받고 구르고 발바닥으로 뛰어다니며 익혀야 하는 세상공부, 인간 공부, 개공부를 위해 오늘도 보리는 뛰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한 탓에 풍랑에 통통배가 뒤집혀 설움도 가난도 쓰디쓴 인생의 고배까지 싹 쓸어 모아 목숨까지 섞어 모두 바닷물 속에 넣은 주인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닫게 된 보리. 그의 무덤 곁에서 늘 그랬듯이 고깃배 엔진의 경유 냄새 풀풀 풍기며 무덤을 박차고 나올 주인을 기다리다가 앞발로 파보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게 되는 보리를 보면 한결같지 못한 인간들의 행태를 생각하게 됩니다. <개>를 읽으면서 깨달은 점이죠.

개 눈에 비친 우울한 세상만사. 그 세상 속에는 사람만의 삶만 있는 게 아니라 개 세계의 삶도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개를 위한 소설인지 사람을 위한 소설인지 저 자신도 헷갈립니다.

다만 책을 놓는 순간 깨닫게 됩니다.

"개만도 못한 놈" 이라고 늘 쓰는 표현이 <변변치 못한 사람>을 일컫는 게 아니라 <개가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개 찬양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소설 <개>를 주인공 진돗개인 '보리' 즉 "내"가 화자가 돼 풀어갔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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