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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속, 오산시민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등록|2009.11.06 11:56 수정|2009.11.06 11:56

이기하 오산시정 미니홈피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알려지자 이 시장의 미니홈피에는 시민들의 항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 미니홈피


전국 출산율 2위, 주민 평균 연령 32세, 전체 6개 동 인구 15만의 젊은 도시 '경기도 오산'이 요즘 들끓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출신 이기하 오산 시장이 어젯밤 아파트 건설업자들로부터 10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제3자 뇌물) 구속 됐기 때문입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시장은 수수한 뇌물 액수가 크고 직위와 관련된 권한을 남용, 취임 후 오랜 기간 같은 수법으로 여러 차례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주요 참고인에게 입 단속을 지시하고 국내외로 도피토록 지시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결국 구속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앞서 오산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이 시장이 부인 명의로 시금고인 농협으로부터 수 억 원대의 특혜 대출을 받아 오산 서부지역 기장산업단지 부지를 매입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등 불법을 저질러 왔다며 강력 반발해 왔습니다.

사실 이런 소식은 이제 뉴스가 아닐 정도로 귀에 익은 느낌입니다. 한나라당이 거의 장악한 지방의회 그리고 기초광역 단체를 견제할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무력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가 살고 있는 곳의 행정 수장이 구속 됐다는 소식은 놀라움을 넘어 부끄럽기 그지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이기하 오산시장의 미니홈피에는 '실망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등의 댓글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오산시청 홈페이지 접속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혼 후 처음 둥지를 툰 오산은 제게 제2의 고향으로 느껴질 만큼 평화롭고 자연 환경 시설이 뛰어난 곳입니다. 주말 아침이면 오산의 주요한 등산로(필봉산, 마등산)를 찾아 산 속의 맑은 공기에 심신을 적십니다. 정상에 올라 오산 시내 전경을 바라보면 거미줄 같은 도로 가운데 아파트로 넘쳐나는 오산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지만 그래도 이곳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많은 아파트가 도대체 언제 지어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곳에 정착했을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오산시의 한 해 재정을 살펴보니 무려 3325억 원이나 됐습니다. 지난 1989년 화성군 오산읍에서 오산시로 승격한 이후 20년 간 인구는 2.7배, 재정은 27배 성장한 것입니다.

비결은 아파트 짓기입니다. 이번에 드러난 오산시장의 비리 역시 건설사 인허가와 편의를 봐주는 대가였습니다. 구속된 이기하 시장은 물론이고 오산시청 건축과 직원들 역시 이번 사건에 연루 돼 건설사들의 뒷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기하 오산시장의 구속 이후 오산 거리는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아침 출근길 오산역사 주변에서 만나본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제 옆에서 무가지 신문을 들고 전철을 기다리던 중년 남성 두 분의 대화에 귀 기울여 봤습니다.

"아니 얼마나 해먹었길래 구속까지 된겨?"
"20억 가까이 된다는디… "
"돈도 참 쉽게 벌구만. 이제보니 도둑놈이구만, 000당 그놈들 내년에 찍어주나 봐라"

이번 사건은 오산시민인 저에게도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난 2006년 지방 선거 당시 주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며 당선된 시장의 이번 구속은 분명 내년 지방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뒤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이미 이 시장은 이전에도 같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지만 그 때마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시장이 직무를 대행하겠지만 내년 선거까지 앞으로 6개월간 빚어질 행정 공백으로 그 피해는 오산시민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검찰의 이번 구속 결정 시점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임 중 비리 혐의로 검찰에 수 차례 소환되어도 불구속 된 이 시장이 임기 후반,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방의 토호세력 비리를 발본색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기 무섭게 전격 단행된 점에서 시범케이스로 재수없게 걸린 게 아니냐는 시중의 비아냥거림도 그냥 넘기기에는 씁쓸한 면이 있습니다.

이제 제가 오산에 산다고 자랑해온 것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을 깊게 되새기고 앞으로 투표는 정말 제대로 똑바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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