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늘 하루도 따뜻한 소리가 들렸네

등록|2009.11.06 18:09 수정|2009.11.06 21:41
점심시간 무렵 분홍빛 하트 종이에 메모가 적힌 초코렛 두 개가 내 책상에 놓였다

"샘! 우울할 때는 단 초코렛이 기분을 나아지게 한대요. 힘내세요!"

며칠 전 작품 전시를 하면서 벌어진 순간적인 일의 뒤끝들이 물고기 지나간 물살처럼 그렇게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좀 가라앉기는 했지만 우울한 정도는 아니었다. 실수를 잘 하는 사람과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인 모양이다. 구태여 넓은 세상이 아니라 한 지붕안에서, 같은 동료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내가 사람말을 못 듣는 중증청각장애인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눈치코치올림픽대회가 있다면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누군가가 농을 한 것처럼 감이 빠르다. 특별한 성격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청각장애인들 특징 중 하나가 못 듣는 대신 관찰력과 집중력이 강해서 그런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앞을 못 보는 대신 청각과 촉각이 발달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돌발상황을 가지고 내게 전해진 의견 하나가 마음을 좀 가라앉게
했다. 그 의견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란 뜻이 들어간 거였는데 이상하게 잠시 괜찮지 않은 기분과 함께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의 기억과 유사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귀가 점점 본격적으로 나빠지면서 합창반에서 빠지게 되는 것과 동시에 "너는 귀머**야!" 하는 말을 들어 슬프고 화가 났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리고 종종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의 진척이 잘 되지 않았을 때, 내 의견과 상관없이 "이 샘이 못 들어서 소통이 안되어 자주 못만났어요!"라고 둘러대던 것들도.

사람들은 가끔 술을 잘 마시는 누군가 암에 걸리면 "그 사람 과음하고 생활이 불규칙해서..."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담배를 전혀 안피는 사람들, 암을 고치는 의사들도 암에 걸린다.

평소에 누군가 행실이 좋지 않다고 미워하던 사람이 병에 걸리면 "거 봐! 그 사람 평소에...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참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아암환자들도 이 땅에는 많다. 자궁암에 걸리는 젊은 여성들을 보고 누군가는 '성생활의 문란'으로 여기는 분도 있지만 사실 엄마가 오랫동안 입원했던 성모병원에서는 성생활을 하지 않는 비구니 스님이나 수녀님이나 할머니들도 자궁암에 종종 걸려 치료받는 것을 목격했다.

잘 듣고, 잘 먹고, 잠을 잘 자던 사람들도 신이 아닌 한 살아가면서 때때로 넘어지거나, 갈등이 생기거나, 본인이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도 돌발상황이 생길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생겼을때 그 사람의 아픈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당신이 **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인 거예요"라고 단정해서 말한다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쉬울 수가 있다.

잘 생각해보면 오십보 백보라고 나도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내심 단정했던 일들이 있다. 누군가가 갑자기 빚을 지게 되어서 급전을 빌려 달라고 했을때, 겉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평소에 땀 흘려 일해보지 않아서 남의 돈을 쉽게 빌리나 보다' 하고 속으로 어림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은 갱년기의 영향인지 요새 유달리 무엇인가를 잘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가족들이 종종 어떤 금전적인 것이나 시간과 관련되어 친구가 아리송 기억을 헤매일 때 "안 해놓고 왜 했다고 그래!" 이렇게 말해서 기억력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여겼는데, 나중에 그와 관련한 영수증이나 흔적들이 나왔을때 너무나 쓸쓸했다고 했다.

드러나는 여러가지 매끄럽지 않은 상황들을 그 사람의 신체적인 것들이나 생활과 연관시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동료팀장이 건네준 초코렛을 먹어서 그런지, 추위가 풀려서 그런지, 나는 듣지 못하지만 창 밖에서 점점 노랗게 변하는 은행잎같은 그런 노오란 희망이 살아있는  따뜻한 심장의 소리들이 생생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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