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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 최초의 국보가 탄생된다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국보지정 예고

등록|2009.11.07 10:06 수정|2009.11.07 10:06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1- ⓒ 이만유

지난 11월 5일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 보물 제138호)'를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했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이다.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비의 비문은 신라가 낳은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것으로 그가 지은 다른 비문들인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郎慧和尙白月?光塔碑, 국보 제8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일찍이 그 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2- ⓒ 이만유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 - 쌍봉(雙峰) - 법랑(法朗) - 신행(愼行) - 준범(遵範) - 혜은(慧隱) - 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 하대의 불교사 특히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또한,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와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희양산 봉암사 일주문- ⓒ 이만유


한편, 비문을 쓴 저자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인 육이(六異)와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인 육시(六是)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봉암사 삼층석탑- ⓒ 이만유


또한, 이 비문은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우선, 신라의 왕토사상(王土思想) 및 사원에 토지를 기진(寄進; 기증)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내용이 있다.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기록과 건립의 후원자가 명확하게 밝혀진 점,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라는 점도 의의가 크다. 특히 이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백두대간의 단전 희양산- ⓒ 이만유


이와 같이 이 비는 1085년 전에 세워진 고비(古碑)로, 지증대사의 전기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선종사, 서예사, 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갖는 탑비로 평가된다.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 1- ⓒ 이만유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30일간(예고기간 : 2009. 11. 5~12. 4) 국보 지정예고 된 후 문화재위원회의에서 최종 지정 여부가 심의, 결정된다. 지정예고 기간 동안 관련 내용에 대한 의견이 접수되면 최종 지정 심의에 반영할 예정이다.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 2- ⓒ 이만유


□ 탑비 현황
ㅇ 지정현황 : 보물 제138호 (현재)
ㅇ 소유자(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봉암사)
ㅇ 수    량 : 1기
ㅇ 규격(㎝) : 전체높이 412, 비신높이 273, 비신너비 164, 비신두께 23
ㅇ 재    질 : 편마암(비신), 화강암(귀부)
ㅇ 조성연대 : 924년(신라 경애왕 원년)
ㅇ 현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번지

이 석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인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로서,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 - 쌍봉(雙峰) - 법랑(法朗) - 신행(愼行) - 준범(遵範) - 혜은(慧隱) - 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하대의 불교사 특히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이 비는 당대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그가 비문을 지은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郎慧和尙白月葆光塔碑, 국보 제8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탑비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일찍부터 높이 평가되어온 것이다.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가 밝혀져 있을 뿐 아니라,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저자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육이(六異)〕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육시(六是)〕으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한편, 이 비문에는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신라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신라의 왕토사상(王土思想) 및 사원에 토지를 기진(寄進)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명확한 기록이 비문 중에 밝혀져 있고 비 건립의 후원자 또한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이 비가 갖는 의의를 높여 준다. 또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라는 점도 의의가 크다.
뿐만 아니라 이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이 탑비는 1085년 전에 세워진 고비(古碑)로, 지증대사의 전기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선종사․서예사․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갖는 탑비로 평가된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 이만유


□ 국보 승격 사유(특징)
1.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
2. 불교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
3. 최치원 사산비문(四山碑文) 중 가장 크고, 내용이 많음
4. 한국 서예사 연구의 대표적 자료
5.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신라사 연구서
6.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자료
※ 이외에도 방대한 자료로 인해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비석임

아름다운 백운대의 풍경- ⓒ 이만유


□ 봉암사[鳳巖寺]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고 신라 헌강왕 5년(879) 지증(智證:智詵) 국사(國師) 도헌(道憲)이 창건하였으며 이후 불타 퇴락하였다가 고려시대에 들어와 정진국사(靜眞國師) 긍양(兢讓)이 사찰을 중수하였고 구산선문(九山禪門)중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본거지가 되었다. 

보물 제169호인 삼층석탑 ·보물 제137호인 지증대사 적조탑(寂照塔) ·보물 제138호인 지증대사 적조탑비 ·보물 제171호인 정진대사 원오탑 ·보물 제172호인 정진대사 원오탑비 ·보물 제1574호인 문경 봉암사 극락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1982 서암스님(제8대 종정)이 계실 때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초파일에만 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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