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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46) 의견(意見)

[우리 말에 마음쓰기 792] '정성(靜性)'과 '고요함'

등록|2009.11.07 17:58 수정|2009.11.07 17:58
ㄱ. 의견(意見)

.. 아버지의 병이 다 낫자, 곰에게 도둑맞기보다는 차라리 돼지를 잡아 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데 의견(意見)이 모아졌다 .. 《로우링즈/김성한 옮김-이얼링, 아기사슴 이야기》(동서문화사,1976) 133쪽

 "아버지의 병이"는 "아버지 병이"나 "아버지가 걸렸던 병이"로 다듬습니다.

 ┌ 의견(意見) :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
 │   - 의견 교환 / 의견 수렴 / 의견 충돌 / 부모님의 의견에 따르다
 │
 ├ 의견(意見)이 모아졌다
 │→ 생각이 모아졌다
 │→ 뜻이 모아졌다
 └ …

생각. 생각인데. 우리들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사람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한결 나은 삶을 좇거나 찾는다고 하는데. 그러나 어이된 일인지,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한국사람들마다, 머리에 지식이 하나둘 쌓이고 늘어나는 동안에는 생각을 버립니다.

 사색(思索)을 하고 고려(考慮)를 하고 궁리(窮理)를 하고 사고(思考)를 하다가는 의견을 냅니다.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여 내 마음이나 뜻을 밝히는 일이란 몹시 드뭅니다. 생각과 생각을 되풀이하면서 내 넋이나 얼을 빛내는 일이란 더없이 찾을 길이 없습니다. 생각과 생각을 그러모으며 내 꿈이나 믿음을 가꾸는 일이란 아주 뿌리가 뽑힌 듯합니다.

 ┌ 의견 교환 → 생각 나눔 / 생각 나누기
 ├ 의견 수렴 → 생각 모음 / 생각 모으기
 ├ 의견 충돌 → 생각 맞섬 / 생각 부딪힘
 ├ 부모님의 의견에 따르다
 │→ 부모님 생각에 따르다
 │→ 부모님 뜻에 따르다
 └ …

 생각만 있고 움직임이 없다면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먼저 스스로 움직이라고들 이야기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터전을 돌아본다면, 움직임조차 드물고 생각은 더욱 드뭅니다. 오늘 우리 이웃을 살펴본다면, 움직임으로 뻗어가는 생각은 씨가 말랐고 움직임을 낳는 생각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 땅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 터전에서 무엇을 즐기거나 누리면서 어깨동무하는 사람들인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 나라에서 누구하고 이웃이 되고 어떤 목숨을 이으면서 살아가는지를 생각하는 길이 가로막힙니다.

 아무래도 국가보안법처럼 자유로운 생각을 옴쭉달싹 못하도록 틀어막는 나쁜 법이 있는 탓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나쁜 법이 태어나기까지 생각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요. 이런 나쁜 법이 태어난 뒤에 생각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힘을 모아 맞섰을까요. 이런 나쁜 법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서 생각있는 사람들은 무슨 글을 쓰고 무슨 말을 하며 무슨 꿈을 펼치고 있을까요.

 ┌ 돼지를 잡아 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데 한뜻이 되었다
 ├ 돼지를 잡아 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데 한생각이 되었다
 ├ 돼지를 잡아 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데 한마음이 되었다
 └ …

 조각조각 나 있는 생각일지라도, 좋은 생각을 주섬주섬 그러모으며 우리 밑생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갈기갈기 갈라져 있는 생각일지라도, 알찬 생각을 알뜰살뜰 여미면서 우리 바탕생각을 닦을 수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생각일지라도, 고운 생각을 살몃살몃 감싸안으면서 우리 사랑생각을 추스를 수 있습니다.

 삶이 삶답지 못하니 생각 또한 생각답지 못하다 할 텐데, 아무리 삶이 삶답지 못하더라도 우리 생각마저 생각답지 못하게 나뒹굴지 않게끔 조금 더 힘을 내고 싶습니다. 삶이 삶답지 못하여 생각 또한 생각답게 붙잡기 힘들 텐데, 제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고되다 하더라도 우리 생각까지 생각답지 못할 만큼 얼룩지지 않도록 다시금 힘을 내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생각하는 말로 새힘을 집어넣고, 생각하는 글로 새숨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ㄴ. 정성(靜性)

.. 같은 유리로 되어 있지만, 자동문이 지니는 정성(靜性)에 비하면 ..  《이승훈-너의 행복한 얼굴 위에》(청하,1986) 141쪽

 '비(比)하면'은 '견주면'이나 '대면'으로 손질해 줍니다. "자동문이 지니는"은 "자동문에서 느끼는"으로 손질하고요.

 ┌ 정성(靜性) : x
 │
 ├ 자동문이 지니는 정성(靜性)
 │→ 자동문이 보여주는 고요함
 │→ 자동문에서 느끼는 고요함
 └ …

 한자말 '靜性'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한글로 '정성'이라고만 적는다면, 사람들이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무슨 말인가?" 하고 찾아보았을 테지요. 그런데 국어사전에 안 실리는 낱말이니, 글쓴이는 이렇게 한자를 밝혀 줍니다. 글쓴이께서 이 낱말이 국어사전에 실리는지 안 실리는지 헤아렸다기보다는, 한문 '靜'을 굳이 쓰고 싶어서 이와 같은 말을 억지로 지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 고요함 / 움직임이 없음
 └ 靜 : 고요할 정

 보기글을 살피면, '자동문은 회전문보다 움직임이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靜性'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하다면, 말 그대로 '고요함'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또는, "같은 유리로 되어 있지만, 자동문은 움직임이 없는 데 견주어"나 "같은 유리로 되어 있지만, 자동문은 움직임이 없는 한편"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왜냐하면 '靜'이란 다름아닌 "고요할 정"이라는 한자이거든요. '靜性'이나 '정성(靜性)'처럼 적어야 시가 되고 수필이 되고 산문이 되고 문학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문학이 안 되고 시가 안 되고 산문이 안 되어도 좋으니, '고요함'이라고 적으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靜性'이나 '정성(靜性)'처럼 적어야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르고 책도 많이 팔리는지 모릅니다만, 저로서는 노벨문학상 못 타고 책이 덜 팔리거나 안 팔리더라도 '고요함'이라든지 '고즈넉함'이라든지 '조용함'이라든지 '차분함' 같은 말마디를 넣어 줄 때가 한결 알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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