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91) 나무베기
[우리 말에 마음쓰기 793] '벌목'과 '나무를 베고 자르는 일'
- 나무베기, 나무자르기
.. 그 사람들은 댐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면서도 댐을 건설해요. 나무를 자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도 벌목을 하고요 … 나무를 베는 사람들이 나무를 심다니요. 이제 이곳 어디에서도 큰 나무를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 《데이비드 스즈키,오이와 게이보/이한중 옮김-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나무와숲,2004) 166∼167쪽
┌ 벌목(伐木) : 멧갓이나 숲의 나무를 벰. '나무 베기'로 순화
│ - 벌목 작업 / 벌목 현장 / 무분별한 벌목으로 산림이 파괴되다
│
├ 나무를 자르면
└ 나무를 베는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벌목'을 찾아보면 '나무 베기'로 고쳐서 쓰라는 풀이말이 달립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벌목'은 우리가 쓰기에 알맞거나 올바르지 않은 낱말이라는 뜻입니다. 이 한자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국어사전에는 한자말 '벌목' 보기글을 셋 달아 놓습니다. 이만큼 여러 곳에서 쓰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안 써야 할 말이라지만 이렁저렁 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 벌목 작업 → 나무 베는 일
├ 벌목 현장 → 나무 베는 곳
└ 무분별한 벌목으로 산림이 파괴되다 → 함부로 나무를 베어 숲이 망가지다
'나무 베기'로 고쳐써야 한다는 한자말 '벌목'인데, 고쳐써야 하는 말마디는 '나무 베기'처럼 띄어서 적으라 할 뿐, '나무베기'처럼 한 낱말로 삼지 않습니다. 한자말 '벌목'을 뜯어 보면, "베기(伐) + 나무(木)"인 만큼, 우리 깜냥껏 얼마든지 '나무베기'라는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을 텐데, 우리 국어학자는 우리 말글로 우리 새 낱말을 일구려 하지는 않습니다.
좀더 생각해 보면, '나무베기'와 맞서는 낱말이라 할 만한 '나무심기'라는 낱말 또한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맞춤법은 '나무 베기-나무 심기'처럼 띄어서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식목(植木)'을 찾아보면, "나무를 심음. '나무 심기'로 순화"라고 뜻풀이를 달아 놓고 있으니, '벌목'뿐 아니라 '식목'이라는 한자말은 우리 삶을 어지럽히는 얄딱구리한 낱말이라 밝히는 셈이지만, 이렇게 밝히기만 할 뿐 마땅하고 또렷한 풀이법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우리 슬기를 빛내어 우리 말글을 북돋우는 데에는 마음을 쏟지 못하고 있습니다.
┌ 나무베기 ← 벌목
└ 나무심기 ← 식목
한 번 더 생각해 본다면, 해마다 4월 5일을 가리켜 '식목일'이라 이야기하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식목'이라는 낱말이 올바르지 않으니, 이 낱말 뒤에 '-日'을 붙일 때에도 올바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레벌레 길들어 '식목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날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는 '나무심기날'이나 '나무심는날'처럼 적어야 알맞습니다. 또는 '나무날'이라고 하면서,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고 생각하고 돌보는 날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꼴로 다시금 생각한다면, "바다의 날"이 아닌 "바다날"이라 이름을 붙이면 됩니다. "스승의 날"이 아닌 "스승날"이라 이름 달면 됩니다. 한글을 사랑하고 아끼자고 하는 날은 "한글의 날"이 아닌 "한글날"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기리는 날 가운데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처럼 알맞고 올바르게 잘 쓰는 나날이 있습니다. "물의 날"이나 "철도의 날"이나 "국군의 날"이 아니라 "물날"이나 "철도날"이나 "국군날"처럼 적어야 알맞으며 올바릅니다.
┌ 나무날 ← 식목일
└ 바다날 ← 바다의 날
보기글을 새삼 돌아봅니다. 첫 줄에서는 "나무 베기"를 이야기하고, 다음 줄에서는 "벌목"을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줄에서는 "나무 자르기"를 이야기합니다. 옮긴이 스스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합니다. 갈팡질팡 오락가락입니다.
슬기롭게 가다듬고 알차게 보듬어야 할 말과 글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랑스레 돌보고 따사롭게 껴안을 말과 글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만 이렇게 얄딱구리한 모습이겠습니까. 서울시는 '데이 캐어 센터'라는 이름으로 '어르신 돌봄이'를 가리키고 있는데, 다른 지자체에서는 예전부터 일찌감치 '돌보미 제도'나 '보살피미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돌봄이'와 '보살핌이'처럼 적지 않은 모습이 아쉽지만, '돌보다-보살피다'라는 말마디를 잘 살려서 쓰고 있어요. 굳이 영어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알맞게 쓰는 길이 있으며, 괜히 영어를 갖다 붙여야 어르신을 잘 모실 수 있지 않음을 우리 스스로 알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충청남도 서산시청은 '고객 만족형 행정서비스를 구현'한다면서 지난 2009년 시월부터 "Oh! Yes!" 정책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과자 이름이 아닌 '오 예스'를 들먹여야 공무원들이 우리들 앞에서 활짝 웃고 따뜻하게 마주하면서 일을 한결 잘할 수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노동부에서는 "Workimg 60+" 정책을 마련하면서 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일하는 예순 살'이라고 말한다면 일거리를 못 찾고 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어쩌는 수 없는 세상 흐름인지, 자연스럽게 다 함께 흘러가야 할 사회 물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을 내버리고 우리 말을 내쳐야 먹고살기에 좋아지는가 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얼을 걷어차고 우리 말을 팽개쳐야 주머니가 두둑해지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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