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머그컴에 캘리그라피된 용비어천가체 먹글씨 ⓒ 이영미
좋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내가 쓴 글씨를 가지고 머그컵을 만든다고 하여 흔쾌히 응낙했다. 보통의 경우 작품이미지 저작료를 받지만 때로는 서예작품을 생활용품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되면 좋다는 생각에 더 고마운 느낌을 받는다.
살아가면서 많은 길을 걸어간다. 두 신발을 신고 걸어다니는 산책길, 등산길, 출근길 같은 그런 길이 아니라도 배움의 길 엄마의 길, 자식의 길, 선생의 길, 의리의 길, 동지의 길,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어떤 배움의 길은 가방끈이 짧아 그냥 중도에서 주저앉지만 살아있는 한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숙명이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동절기에 접어들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자기가 걸어가는 길에 대해 잠깐이라도 뒤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면, 오히려 이것은 모두의 복일지도 모른다.
너, 나 없이 자기 살기 바쁜 각박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사랑을 나누며 사는 새내기 농아청년도 있다. 농아야구단으로 유명한 충주성심학교에 졸업한 지 얼마 안되는 졸업생 한 명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닐 때 누군가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았던 것을 잊지 않고 학교로 연락을 한 것이었다.
취업해서 받는 월급이 얼마 되지 않고, 삭월세 쪽방에서 자취하다시피 지내는데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중학생과 결연해서 매달 3-5만원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누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다시 되갚는 것은 요즘 젊은이에게 아주 드물기 때문에 가슴이 따스해진다.
청각장애특수학교는 고교과정까지 있지만 교과과정의 수준은 일반 고등학교 수준과 현격한 격차가 있다. 대신 사회에 취업할 수 있는 전자, 목공 등 기술을 가르친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해서 취업해 첫 월급을 받는다면 그 액수가 얼마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넉넉한 마음으로, 보은의 마음으로 작은 월급을 쪼개어서 그저 이따끔씩 들르는 나의 마음도 가을볕처럼 환하게 해주는 것이 고맙다. 어디 이 청년 뿐이랴?
내가 가끔 가는 장애야학교에는 기초수급비를 받는 야학생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5000원씩, 3000원씩 내는 후원계좌를 여러 개 붓는 야학생들이 내가 아는 것만도 여러 명이다. 자신들의 정기적금 통장은 없다시피 하면서 말이다.
가끔 일하는 이 곳에 무슨 로타리 클럽이나 홈플러스 *점이라는 곳에서 정기로 후원물품이나 후원금을 준다. 그럴 때 직원들은 잠시 업무를 제치고 큰 후원홍보판을 만들거나 그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대접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홈피에도 크게 광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드러내놓고 나누고 나눈 것 이상으로 큰 홍보를 하는 단체들도 있지만, 한 달 간신히 받는 수급비마저 쪼개고 아무 내색없이 그렇게 민들레 홀씨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리 가도 가도 싫증 나지 않는 나눔의 길과 사랑의 길에서 나는 가끔 이기적이 될 때가 있다.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난 뒤 나의 형편을 미리 재어볼 때가 더러 있는 것이다. 재어보지 않고 무턱대고 나누다가 짜증이 나고 까탈이 난 적이 여러 번 생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주라'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내 뱃속에는 밴댕이 사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나눈 머그컵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받아가는 곳과 사용처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도 생각을 하고 허락한 셈인데 어찌보면 마땅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재고 나서 준 글을 갖고 '흔쾌히'란 표현을 쓴 것이 좀 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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