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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남자나 여자를 무론하고 이뻐야 합니다"

[인터뷰] 인간미 물씬 풍기는 '기분좋은' 소설가 이인환

등록|2009.11.10 09:10 수정|2009.11.10 09:10
이인환 작가는?


작가이자 바둑평론가.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중퇴했다. 구수하고 푸근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팍팍한 가슴에 윤활유 같은 웃음을 주고, 때로는 재치있는 풍자로 세태를 꼬집는 작가의 태도에서 문학의 참된 사명을 엿볼 수 있다.

저서로는 『이솝씨, 양수리에 오다』『강아지, 우리 강아지』『해주겄지』『사람맛 한번 쥑이네』『여자,여자』등이 있다.

장편 <이솝씨, 양수리에 오다>, <강아지 우리 강아지>를 비롯하여 산문집 <해주겄지>, <사람맛 한번 쥑이네>, <여자, 여자> 등을 펴낸 작가 이인환을 지난 8일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인터뷰 했다.

이인환의 글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아마 해학과 인간미가 넘치는, 그러면서도 내공이 느껴지는 그 특유의 글맛 때문일 것이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뭐, 만날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합니다. 이름 없는 작가의 일상생활이라는 게 뻔하지요. 그냥 숨쉬기 운동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1997년부터 경기도 이천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10여 년 간 살았는데, 그 마을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해프닝들을 모아 <해주겄지>라는 책을 냈다. '입이 근지러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라는 것이 그 책머리에서 그가 한 말이다.

- 최근 집필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현대 사회에서의 집안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소재로 장편 소설 하나 구상하고 있는데, 잘 풀리지 않아서 고생이 많습니다. 그와 관련된 조선 중, 후기의 사상이나 학문적인 배경에 관하여 좀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쪽 서적을 탐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전근대적인 집안이라는 굴레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을 몇 가지 에피소드로 엮어볼까 했는데, 이게 이야기로 성립하게 위해서는 완성하는 데 만만찮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요즘 고생하고 있습니다. "

돌처럼 꼼짝도 않고 있던 불룩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불룩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바닥을 알 수 없는 고통의 벽을 깨고 뛰쳐나온 것이다.나는 불룩이의 눈빛에서 앞으로 돌처럼 굳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불룩아, 힘내라, 힘! 힘내라, 힘!
- 이인환, <내 친구 불룩이> 중

2008년 펴낸 <내 친구 불룩이>는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불룩이의 친구 깜돌이의 입을 빌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목청 높이지 않고 나직하게 풀어놓았다. 사실 그 동안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이 없음에도 흔들림 없이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에게, 그가 불룩이에게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힘내라, 힘!'

- 소설은 주로 어디서 쓰시나요?

▲ 작가 이인환氏 ⓒ 이학

"요즘은 집에서 쓰지요. 한때는 제주도다, 강화도다 하여 구경할만한 데를 싸돌아다니며 쓰기도 했지만, 그런 일상적이지 않는 장소는 그럴 듯하긴 해도 효율적인 면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되더군요."

- 한때는 바둑평론가로 활동을 하셨다가 작가로 직업을 바꾸셨는데, 특별한 계기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특별한 에피소드라고할 거는 없고, 한 20년 가까이 바둑평을 써 먹고 살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바둑 원고는 안 쓴다하고 절필선언을 해버렸지요. 바둑 원고를 쓰다보면 바둑판의 진행을 기록하는 기보를 작성해야 하는데, 흑돌과 백돌을 동그라미로 쳐 그리지요. 어느날 그 동그라미 치는 일이 스스로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그 동그라미 치는 일이 싫다는 게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바둑을 좋아해서 취미 비슷하게 들고앉은 일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다는 자책감과, 바둑글이라는 데 갇혀 있다는 자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는 <꼼수퇴치법>, <대표기사 걸작선-이창호편> 등 바둑관련 서적을 펴낸 바 있고, 신문 잡지의 기보란에 평론을 연재하기도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동그라미에 대한 염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후의 장편이나 산문을 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선생님 글을 보면 해학적인 요소가 많은데, 문학에서 해학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쉽지 않은 질문인데요. 해학이란 것은 좁은 의미로는 문학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문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해학은 실행적인 면에서 몇 가지 양태로 나타나지요. 그 가운데 대표적인 형태가 기존 질서나 가치에 대한 부정과 재정립이라는 면이 있지요. 모든 예술적 행위가 그렇지만, 문학은 사회 전반에 대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학이라는 것은 소금 알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시 말해서 해학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발현되는데, 이 부정이 인간사회 모든 분야를 되짚어 보게 하는 시발점이라는 말씀이지요.

우리나라는 서구 사회에 비해 전반적으로 의식이나 가치관이 경직된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걸 흔히 각박하다고 표현하는데, 투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좋은 공을 던질 수 없듯이, 힘이 잔뜩 들어간 의식이나 가치관으로는 세상을 참되게 밝힐 수 없어요. 해학은 어깨 힘을 빼는 행위의 전형적인 발현이므로, 다시 소금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 가장 최근에 쓰신 산문집 <여자여자>를 보면 많은 여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생님이 이상으로 삼는 여성상은?
"그 책 읽어보셨다면 그런 질문 안 하리라 생각하는데, 잘 안 읽어보신 모양이네요(웃음). 제가 그 글에서 강조한 내용이, 나는 여자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요즘 흔히들 '꽃보다 이쁜 사람'이라는 말들을 하는 것 같은데,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를 무론하고 이뻐야 합니다. 이 이쁘다는 말은 외모는 물론 성격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의 경우 어머니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이므로, 좋은 어머니가 이상적인 여성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남자도 아버지 역할이 있지만... 말하다 보니, 여성상이 아니라 인간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군요. 이래저래 난 여자를 잘 모릅니다. "

- 소설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건 어떤 이야기입니까?
"앞에 해학이란 자기 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인데요, 소설이란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게 소설인데, 내가 어떤 인간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내 스스로를 완전 분해해 재정립하면서, 나는 이런 인간이다 하는 이야기지요. 어떤 것을 쓰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미안스럽지만, 그런 것밖에 쓸 수 없다면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닐까요. 내 인격을 사람들 앞에 내놓는 일이므로, 내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야겠지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 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하실 말씀은?
"일반적인 것이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외부와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요즘 문학지망생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가끔 지면을 통하여, 어떤 젊은이가 어떤 글을 쓰는구나 하는 것을 아는 정도인데, 그 편협한 정보로 말하자면, 요즘 문학은 상상력의 빈곤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상력이란 수퍼맨 처럼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초능력적인 것도 있지만, 자기 자신의 인격의 값을 높이고 크게 세우는 것도 있거든요. 문학이란 결국 상상력의 산물이고, 그 역시 결국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인 면에서 말한다면, 소설을 쓰겠다 한다면 단편보다는 장편을 들고앉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현대 한국문학에서 단편이 가지는 의미가 부정적인 면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지요. 젊은이들이 그런 부정적인 면에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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