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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3년, 처음으로 지은 벼농사

마침내 내가 지은 쌀로 밥을 먹어 봅니다

등록|2009.11.10 09:36 수정|2009.11.10 09:36

식탁 위에 오른 밥 한 그릇귀농 3년 만에 처음으로 지은 벼농사, 내가 만든 쌀로 밥을 먹습니다. ⓒ 이종락


밥그릇을 앞에 놓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냥 무심히 습관적으로 숟가락을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밥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등
간단한 감사의 예식을 표합니다.
그만큼 밥은 우리에게 소중함과 경건함을 주는 것이겠지요.

귀농 3년 만에 처음으로 쌀농사를 지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고 산 지 마흔하고도 여덟 해가 지나서야
내 손으로 벼농사를 지어 그 쌀로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그동안 밭에서 많은 종류의 채소와 포도, 감 등 과일도
생산해 봤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어야 하는 밥을 손수 농사지어 먹는
느낌은 채소, 과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이었습니다.

올해 임대한 논 5백 평에서 지은 쌀은 서투른 우렁이 농법과 무농약으로
통상 수확량에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손으로 농사지어 밥을 먹는다는 기쁨에 어느 정도의
소출 감소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한 톨의 쌀이 만들어지기 위해 88번의 보살핌이 있어야 된다는 쌀농사는
아무리 기계로 다 한다고 해도 사람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모를 심기 전에 논바닥을 일일이 써레질하며 정리해야 했고, 우렁이를 뿌린
다음에는 물이 마를까 수시로 관리를 해야 합니다. 비만 오면 물길이 틀어져
배수가 잘 되는지, 넘치지는 않는지, 조금이라도 신경을 멀리하면 논은 돌본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을 태풍이 비껴간 들녘은 무르익은 이삭으로 황금물결이 되었고 어느새
들녘은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 소리로 시끄러워집니다. 손바닥만한 논이라
콤바인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지만 마침내 수확을 끝내고 벼나락을
마당에 말리게 됩니다. 2,3일을 가을 햇볕에 정성스레 말린 벼나락은 40킬로
포대에 들어가고, 정미소에서 찧은 쌀이 최종적으로 우리 식구의 식탁에 밥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처음으로 쌀을 찧어 저녁 밥상에 올린 날, 곶감 깎는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막걸리를 반주 삼아 따끈따끈한 첫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같은 쌀인데도 지금까지 수십 년간 먹어 온 밥과 내가 지은 밥의 느낌이
이렇게 다른 것은 주관적인 기분이었겠지요.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이 밥을 먹으며 인류의 역사는 진화했고, 밥그릇을 확보하기 위한 인류의 역사
또한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 밥을 먹기 위해 땅을 놓고 협동하고
때로는 생명을 거는 싸움도 불사했습니다.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수십 리 길을 걸어
나뭇짐을 해왔다는 아버지 세대의 기억들도 떠올랐습니다.

밥은 곧 생명이었습니다.
아무리 밥 대신 다른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해도 밥 없인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컴퓨터가 좋고 최첨단 자동차가 좋다 해도 밥이 있고서야 과학문명도
존재할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농사가 다른 산업에 밀려
천대받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올해는 쌀농사로 인해 참으로 의미 있는 한해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집을 지었고, 포도농사와 곶감농사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 위에 내가 지은 쌀로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창고에는 벼나락 포대가 가득 차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남는 게 별로 없는 농사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노동과
생산의 기쁨이 있습니다. 흔히들 밥만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말하지만 불필요한 욕심만
버리면 밥만 먹고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 오면 농촌은 휴식기에 들어갑니다.
도시처럼 놀고 즐길 것도 없지만 시골은 시골 나름의 휴식 시간을 갖게 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김치로 소박한 식사를 하며 긴 겨울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농촌에서 겨울은 다음 해 농사를 위한 휴식과 충전의 시간입니다.
그 긴 겨울의 시간 한가운데 소중한 밥이 있어 더욱 따뜻해짐을 느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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