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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들의 퍼레이드를 구경하다

호주 대륙 자동차 여행 (41)

등록|2009.11.11 09:09 수정|2009.11.11 09:09

▲ 동성애자들의 행진에는 천주교에서도 나와 자회 정의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 이강진


마거릿 리버(Margaret River)에서 생산되는 치즈와 내 경제 수준에 맞는 포도주도 한 병 마시며 지내고 퍼스(Perth)로 떠난다. 퍼스는 서부 호주의 행정 중심지이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에 있는 캐러밴 파크에 텐트를 치고 산책을 나선다. 바닷가를 끼고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기에 아주 좋다. 선착장이 있기에 가보니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낚시하는 사람 중에는 한국사람 부부도 끼어 열심히 고기를 낚고 있다. 지금 잡는 생선이 '청어'라고 하는 데 한 양동이 가득 잡았다. 한 번에 두 마리씩 잡아 올리기도 한다. 퍼스에 산다고 하며 퍼스 자랑이 대단하다.

자동차를 타고 퍼스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킹스 파크(Kings Park)에 올라가 본다. 시내와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에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위한 기념비가 있고 그 앞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킹스 파크를 여유 있게 걸으며 이름 모를 들꽃과 이름 모를 새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울창한 숲에는 나무마다 사람 이름이 있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유행한다는 수목장을 한 것이다. 한국의 비석 가득한 국립묘지만 보아온 나로서는 이색적인 국군묘지(?)에 다시 한 번 눈길을 보낸다. 

▲ 퍼스(Perth)의 명소 킹스 파크(Kings Park) 제일 좋은 자리에 있는 충혼탑 ⓒ 이강진


▲ 퍼스(Perth)에 들리는 모든 관광객이 거쳐 가는 관광지, 킹스 파크(Kings Park)에서 내려다 본 시내. ⓒ 이강진


퍼스 시내는 물가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다. 시드니보다는 덜 복잡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거리에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한국 유학생도 많은 것 같다. 시드니는 한국 학생이 많아 영어 공부하기에 좋지 않다며 한국 유학생이 적은 도시를 찾아 유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지금은 한국 유학생이 넘쳐난다. 호주 정부의 주요 수입원을 한국 학생이 담당하는 셈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던가? 오늘 저녁에 동성애자들의 거리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도로는 행사를 위해 이미 많은 장식물로 치장되어 있다. 시드니 옥스퍼드 거리에서 매년 열리는 동성애 축제를 몇 번 본 적이 있는 나도 시드니가 아닌 퍼스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시내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고 도로 옆에서 사진기를 들고 서성거린다.

사실 이제는 동성애가 호주에서 일종의 유행이 된 느낌이 없지 않다. 동성애자들만이 모이는 술집을 비롯해 그들만을 위한 잡지가 발간되기도 한다. 학교 선생은 물론 대법관까지도 공공연하게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도 인종차별을 금지하듯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 또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거리에는 구경나온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단체별로 눈을 끄는 의상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글로 쓴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참가자들은 동성애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단체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표심을 잡으려고 참가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기독교 단체도 사회정의를 외치며 참가하고 있다.

다수가 인정하는 무리에 섞여야만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한국인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외국에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이러한 모습을 보면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 동성애자들의 퍼레이드에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여성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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