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첫발 내딛은 또 하나의 한류
아악무 종주국 중국, 김영숙 일무 전수조교 석좌교수 위촉
▲ 항주 사범대학에서 일무를 가르치고 있는 김영숙 교수 ⓒ 김기
중국이 한국의 전통 악무(樂舞)를 전수받는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 땅에서 사라진 궁중무와 제례무를 복원하기 위해 궁중악무를 보존해 오고 있는 한국에 도움을 청한 것. 항주사범대학이 정재연구회 김영숙 예술감독을 석좌교수로 위촉해 종묘일무(佾舞)와 정재(呈才)를 전수받고 있다. 김영숙 성균관대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의 전수조교이다.
항주는 중국 남송시대 수도였던 곳으로 공자의 39대손이 제2의 고향으로 삼았고, 현재 직계 75대손이 생존해 공자사당을 지키고 있다. 중국의 손꼽히는 관광지이기도 한 항주는 역사적으로나 관광산업을 위해서나 전통 복원에 매진할 배경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항주사대는 궁중무만이 아니라 문묘일무(文廟佾舞, 공자 제사에 추는 제례무)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항주서 열리는 학술대회는 표면상 한중일 3국 궁중무의 학술적 교류지만 실제 중국입장에서는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승된 한국 궁중무의 전수와 연구가 주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아악무는 한중의 것과 차이가 있어 학술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뿐이라서 전통의 맥이 끊어진 중국으로서는 한국으로부터 전통을 배우는 것을 택한 것이다. 항주사대는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정재연구회 40여명의 숙식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초청장을 보내왔다.
▲ 중국에 전통으로 한류 행보를 연 김영숙 교수가 항주사대 학생들에게 일무를 가르치고 있다 ⓒ 김기
재정이 넉넉지 않을 일반 대학이 비용까지 대가며 한국 팀을 초청하는 데는 김영숙 교수에 대한 예우도 있으나 이번 행사에 시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대학 행사에 시정부가 나서서 지원을 하게 된 데에는 중국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큰 역할을 했다. 중국 문화정책의 핵심기관인 중국예술연구원이 발제에 참여하고, 문화계 핵심인물들이 항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학술대회에 쏠린 중국의 시선이 뜨겁다.
이처럼 중국이 한국 전통을 배우는데 열심인 까닭은 음악과 춤이 가진 고유 특성에 있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서는 수많은 문화적 실물이 사라졌기 때문에 문헌만으로 가까스로 과거의 흔적을 확인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실연에는 어려움을 겪어 왔다. 동양의 악무는 서양과 달리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식으로 전수되었고, 기록은 최소한의 보조 역할만 수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춤은 실연 전승이 없다면 음악보다 복원이 훨씬 더 어렵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전승과정이 오래 동안 정지된 중국으로서는 궁중악무를 한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복원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악무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이 자존심을 접고 한국의 정재연구회에 학수(學修)의 손을 내민 것은 오랜 망설임 끝에 내놓은 고육책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체면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이다.
▲ 1차 수업을 마치고 항주사대 교수.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 ⓒ 김기
반면 한국은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아악을 들여와 오늘까지 이어가고 있다. 조선 왕조는 유교 예악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궁중의 제향·조회·연향 때 필요한 악무를 치밀하고 정확하게 봉행했었다. 복식, 의물 또한 빈틈없이 모두 기록하여 후대에 전했다. 이런 악무에 대한 집념으로 성종 때 편찬된 궁중악서 <악학궤범>은 조선조에 몇 차례 복간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악학궤범>은 동양문화연구에 관해 국제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은 조선 유교 걸작 중 하나이다.
<악학궤범>이 기록으로 조선 궁중악무를 후세에 전했다면, 실연으로서의 조선 궁중악무는 장악원, 이왕직아악부(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국립국악원으로 이어졌다. 또한 무형문화재보호법의 제정으로 제1호로 종묘제례악이 선정될 정도로 궁중문화의 전승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 한국의 종묘제례악이 아시아 국가들을 모두 제치고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그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처용무, 연화대 등 여러 종목의 정재는 무형문화재로 별도 지정되어 전수되고 있으나, 일무는 음악 부문과 더불어 종묘제례악 안에 포괄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종묘일무과 마찬가지로 어렵사리 전통의 맥을 이어온 문묘일무에 대한 무형문화재 지정은 미뤄지고 있는데, 중국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는 상황 속에 이 또한 지체할 일이 아니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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