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순의 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친정집의 고즈넉한 가을풍경 ⓒ 김현숙
나는 3년째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골수암 환자입니다. 암세포가 척추를 공격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척추 시술을 세 번이나 해야 했습니다. 주치의 말로는 완치가 되지 않아 평생을 치료해야 한다고 합니다. 50번째 항암주사를 맞고 지난주 일주일 쉬는 기간에 친정아버지께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93세의 고령이십니다.
그 아버지를 만나러 고속도로로 30분이면 가는 것을 찾아뵙는데 2년하고도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 옛날 층층시하의 매섭고 어려운 시집살이 할 때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부모님 모두 보내드리고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오곤 했던 딸이 그렇게도 오래 나타나지 않으니 아버지께서는 걱정이 참으로 많으셨던가 봅니다. 조금 아프다고는 하나 아무도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으니 누구에게 묻지도 못하고 혼자서 애만 타셨던 모양입니다.
걱정하실까봐 모두 숨겼지만 그것이 오히려 걱정을 더 하게 만들어 드렸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아버지께 알려 드려야 한다고 했으나 장남인 오빠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지팡이를 짚고 나설 수는 없어서 차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 가기 위해 날마다 걸음연습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네 발 지팡이로 연습하다가 이제는 일자 지팡이로 연습을 했습니다.
자주 걸으니 다리에 힘이 생겨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도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차려드릴 반찬을 이것저것 준비해서 길을 나섰습니다. 준비한 반찬으로 점심을 차려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떠나려고 문 밖에 나서려는데 아버지께서 "나이 들면 그것이 제일 무섭다"고 한 말씀 하시더군요. 무섭다고 말씀하신 그것이란 자식을 앞세우는 것일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렸습니다. 아들 앞에 표현도 못 하시고 묻지도 못 하시고 혼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지 그 한 마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오빠의 심정도 편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출발하려고 할 때 1분만 기다리라며 오빠가 모과 두 알과 냉동실에 넣어둔 대봉 홍시 한 알을 주었습니다. 해마다 대봉을 박스로 받았는데 올해는 감이 다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별 것 아닌 것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시름과 걱정을 덜어 드리고 돌아오는 발길이 가벼웠습니다. 이제는 컨디션이 괜찮아지면 자주 찾아뵈어야겠습니다. 훗날 가슴에 회한이 생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발병하고 처음으로 달려본 고속도로라 힘들고 두려웠지만 안전하게 귀향했습니다.
내 건강을 지키지 못하여 걱정을 끼쳐 드렸으니 나는 부모 앞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건강을 돌보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그것이 효도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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