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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57)

― '초원 편애의 이유', '갑작스런 눈물의 이유' 다듬기

등록|2009.11.11 18:35 수정|2009.11.11 18:35

ㄱ. 초원 편애의 이유

.. 그 왁자지껄한 논쟁을 내가 이해할 수만 있다면 초원 편애의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  《알도 레오폴드/송명규 옮김-모래 군의 열두 달》(따님,2000) 43쪽

 '논쟁(論爭)'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말다툼'이나 '이야기'로 풀어내도 됩니다. '편애(偏愛)의'는 '치우치게 사랑하는'이나 '더 사랑하는'이나 '남달리 사랑하는'이나 '몹시 사랑하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이해(理解)할 수만"은 "알 수만"이나 '알아들을 수만'으로 손보고, '초원(草原)'은 '풀밭'이나 '들판'으로 손봅니다.

 ┌ 이유(理由)
 │  (1)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
 │   - 정당한 이유 / 이유를 대다 / 이유를 묻다 / 이유나 알자
 │  (2) 구실이나 변명
 │   - 사사건건 이유를 달다 / 무슨 이유가 그리도 많으냐
 │
 ├ 초원 편애의 이유
 │→ 들판을 더 사랑하는 까닭
 │→ 들판만 사랑하는 까닭
 │→ 들판만 그렇게 좋아하는 까닭
 │→ 들판을 그처럼 몹시 좋아하는 까닭
 └ …

 한자말 '이유'를 풀이하면서 '까닭/근거' 두 가지 낱말을 달아 놓습니다. 국어사전에서 '까닭'을 찾아봅니다.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이라고 풀이해 놓습니다. 다시 '원인(原因)'을 찾아보니, "어떤 사물이나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일으키게 하는 근본이 된 일이나 사건"이라고 풀이해 놓습니다. '근거(根據)'를 찾아보니, "어떤 일이나 의논, 의견에 그 근본이 됨. 또는 그런 까닭"이라고 풀이해 놓습니다.

 한자말 '이유' 두 번째 뜻은 '구실/변명'입니다. '변명(辨明)' 뜻풀이를 찾아보니,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이라고 나옵니다. 토박이말 '핑계' 뜻풀이를 찾아보니,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나옵니다.

 이 말풀이와 저 말풀이를 곰곰이 따져 봅니다. 아무래도, '이유 ↔ 까닭'이면서, '이유 ↔ 구실/핑계'인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삶에 한자말 '이유'가 스며들기 앞서는 누구나 '까닭/구실/핑계' 같은 말마디로 우리 생각을 나타내 오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 정당한 이유 → 떳떳한 까닭
 ├ 이유를 대다 → 까닭을 대다
 ├ 이유를 묻다 → 까닭을 묻다
 ├ 사사건건 이유를 달다 → 일마다 구실을 달다 / 일마다 토를 달다
 └ 무슨 이유가 그리도 많으냐 → 무슨 핑계가 그리도 많으냐 / 무슨 말이 그리도 많으냐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돌아보니, '구실'과 '핑계' 말고도 '토'라는 말마디를 곧잘 써 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은 잘 안 쓰게 된 말마디이며, 앞으로도 그리 쓰이지 못하겠구나 싶은 말마디인데, 다시금 곰곰이 헤아려 보니, 한자말 '이유'를 쓰면 쓸수록, 토박이말 '까닭-구실-핑계-토' 같은 말마디는 자꾸자꾸 밀려나거나 잊혀지지 싶군요.

 '이유'라는 낱말이 좋다면 얼마든지 쓸 노릇이고, 이 낱말만큼 내 뜻과 생각을 담아낼 알맞춤한 낱말이 없다고 느낀다면 언제나 쓸 노릇입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곰곰이 되짚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언제부터 '까닭'이라는 낱말을 잊고 있는지. 우리는 왜 '구실-핑계-토' 같은 낱말을 잃어 가고 있는지.


ㄴ. 눈물의 이유

.. 갑작스런 눈물의 이유는 다름 아닌 무명그룹이 연주한 곡 때문이었다 ..  《저문강-영혼을 빗질하는 소리》(천권의책,2009) 217쪽

 '무명그룹(無名group)'은 '이름없는 노래패'나 '잘 안 알려진 노래패'쯤으로 손질해 봅니다. '연주(演奏)한'은 '들려준'이나 '부른'으로 다듬고, '곡(曲)'은 '노래'로 다듬습니다. 곰곰이 따진다면 '곡'은 안 다듬어도 되기는 한데, 한자 '曲'은 다름아닌 '노래 곡'입니다. 한문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曲'일 테지만, 우리 말을 한글로 적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노래'입니다. 새로 지은 노래를 놓고 '신곡'이나 '新曲'이라 이름붙일 수 있으나, 우리는 우리 깜냥껏 '새노래'라 이름붙일 수 있습니다. 모든 자리에서 알뜰히 담아내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차근차근 헤아리면서 가다듬고, 하나하나 보듬으면서 갈고닦는다면 한결 싱그럽고 훨씬 아름다이 말 문화를 일굴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갑작스런 눈물의 이유는
 │
 │→ 갑작스런 눈물을 보인 까닭은
 │→ 갑작스런 눈물은
 │→ 갑작스레 눈물이 흐른 까닭은
 │→ 갑작스레 눈물이 난 까닭은
 └ …

 이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이유'를 쓰면서 토씨 '-의'가 달라붙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토박이말 '까닭'을 넣었다 하여도 "눈물의 까닭"처럼 적는 분이 꽤 많습니다. 뿌리깊은 말썽거리인 말투라 할 텐데,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고이 돌아보면서 가다듬지 않는다면, 낱말 하나를 겨우 추스른다 하여도 옳고 바르게 말하거나 글쓰지 못하고 맙니다. 내가 품는 생각을 차근차근 되씹어야 하고, 내가 품는 생각을 누구하고 나누려 하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하며, 내가 품는 생각을 누구한테 어떤 말매무새로 들려주려 하는가를 되짚어야 합니다.

 ┌ 이별의 이유 → 이별하는 까닭 / 헤어지는 까닭
 ├ 존재의 이유 → 있는 까닭 / 사는 까닭
 ├ 찬양의 이유 → 찬양하는 까닭 / 섬기어 노래하는 까닭
 ├ 수면의 이유 → 자는 까닭
 ├ 공존의 이유 → 함께 있는 까닭 / 함께하는 까닭
 └ …

 스스로 뿌리를 찾는 삶이어야 하고, 스스로 뿌리를 캐는 생각이어야 하며,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말이어야 합니다. 알맞게 가꾸는 삶을 돌아보고, 알맞게 다스리는 생각을 헤아리며, 알맞게 펼치는 말을 붙잡아야 합니다.

 옳은 길을 즐겁게 걷는 삶으로, 옳은 자리를 씩씩하게 지키는 생각으로, 옳은 틀거리를 튼튼하게 다스리는 말로 나아가야 합니다.

 두말할 까닭 없이 내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이니 나 스스로 아끼면서 사랑합니다. 내 생각이니 나 스스로 가다듬고 추스릅니다. 내 말이니 나 스스로 늘 새롭게 익히면서 갈고닦습니다.

 모든 땀과 품과 애를 담아내는 삶으로 일구고, 모든 뜻과 넋과 얼을 모두는 생각으로 가꾸며, 모든 슬기와 깜냥과 빛줄기를 실어내는 말로 돌봅니다.

 사랑하고 믿는 삶이니 한 번 더 보듬겠지요. 사랑하고 믿는 생각이니 한 번 더 쓰다듬겠지요. 사랑하고 믿는 말이니 한 번 더 보살피겠지요.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살아가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생각합니다. 언제나 한동아리로 움직이고, 한결같이 한 묶음이 되어 어루만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날 이오덕 님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삶과 생각과 말이 하나되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부터 스스로 삶과 생각과 말이 하나가 되게끔 애쓰고 힘써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분단의 이유 → 갈라진 까닭
 ├ 자살의 이유 → 스스로 죽은 까닭 / 스스로 목숨을 놓은 까닭
 ├ 결장의 이유 → 빠진 까닭 / 안 나온 까닭
 └ …

 삶이 될 수 있는 삶을 찾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생각이 될 수 있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이 될 수 있는 말을 나누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괜스레 일본 말투를 들여오지 말고, 생각없이 일본 말투에 길들지 말며, 아무렇게나 일본 말투를 뇌까리면서, 내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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