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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물든 무척산 천지못이 '무척' 그리웠어요

경남 김해시 무척산 산행을 나서다

등록|2009.11.12 09:23 수정|2009.11.12 09:23

가을이 내려앉은 김해 무척산 천지못.  ⓒ 김연옥


길을 오가다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든 가을산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그 품속으로 쏙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마치 물감을 풀어 알록달록 색칠해 놓은 듯한 가을산은 자연이 우리들에게 주는 선물이리라. 가을이면 늘 생각나는 산이 김해 무척산(702.5m, 경남 김해시 생림면)이다. 바위와 어우러진 단풍이 몹시 예쁜 산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정상 바로 밑에 흐르고 있는 잔잔한 천지못 때문이다.

깊은 고요가 깃들어 있으면서도 왠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듯한 천지못을 처음 보았을 때 내 가슴이 어찌나 콩닥콩닥하던지 지금도 그 설렘이 생생하다. 정말이지, 정상 가까이에 그렇게도 예쁜 연못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깜짝파티의 유쾌함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낭만적이고 이색적인 풍경 앞에서 나는 마냥 행복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든 무척산의 품속으로 쏙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 김연옥


지난 7일, 나는 퇴근하자마자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김해를 향해 달렸다. 오후 1시께 마산서 출발하여 김해 무척산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2시 30분께. 석굴암이란 절집을 지나 느긋한 걸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지못에 오르기까지 지그재그로 난 길이 한참 이어지는데, 사색하기에 딱 좋은 길이다. 그래서 번잡한 일상을 훌훌 털어 버리고 숲길을 그저 걷고 싶다면 무척산 산행을 권하고 싶다.

▲   ⓒ 김연옥


두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가 된 연리지(사진 왼쪽)를 볼 수 있는 길에서.  ⓒ 김연옥


손으로 만지면 바스락바스락 소리 날 것만 같은 낙엽들이나무 아래 꿈꾸듯 누워 있었다. ⓒ 김연옥

무쌍산(無雙山), 무착산(無着山)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무척산(無隻山)은 산의 형세가 밥상을 받은 모양이라 하여 식산(食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산 이름에 '외짝'을 뜻하는 '척(隻)' 자를 붙인 사연은 무엇일까. 주위 다른 산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홀로 우뚝 솟아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알쏭하다.

손으로 만지면 바스락바스락 소리 날 것만 같은 낙엽들이 나무들 아래 꿈꾸듯 누워 있고, 단풍으로 울긋불긋한 길에서 나는 코를 벌름대며 진한 가을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렇게 45분 남짓 걸어가자 두 소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 하나가 된 연리지(連理枝)를 볼 수 있었다.
금실이 좋은 부부나 사랑하는 남녀가 손을 꼭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연리지. 옛 문헌에도 상서로운 나무로 기록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조그마한 현상에도 어떤 의미를 붙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천지못에 떠 있는 파란 가을 하늘이 너무 예쁘다.  ⓒ 김연옥


오후 3시 50분께 천지못에 도착했다.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에 얽힌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수로왕의 국장 때 왕릉 자리에 땅을 파니 물이 자꾸 고였다 한다. 수로왕의 비인 허황옥을 인도에서부터 수행해 온 신보가 무척산 정상 가까이에 못을 파서 수로왕릉의 물줄기를 잡게 되었는데, 이때 판 못이 바로 지금의 천지못이다.
책 읽는 남자를 사랑했다.
공원 벤치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책을 읽는 남자,
책을 읽다 가끔씩 책 속에 숨어버리던 남자,
책 속에 들어가 오렌지 껍질을 벗기며 다시 책을 읽는 남자,
가끔씩 나를 읽던 남자,
내 입술에 담뱃재를 떨어뜨리던 남자,
내 가슴에 밑줄을 긋던 남자,
내 안에 책갈피를 끼워두던 남자,
가끔씩 나를 접어버리던 남자,
그러나 이제는 먼지 쌓인 책꽂이 한 켠에 꽂힌 남자.
헌책방에 치워버릴 수도 없는 남자.

  - 윤예영의 '책 읽는 남자'

천지못에 비친 등산객들의 그림자도 아름답다.  ⓒ 김연옥


김해 무척산 정상에서.  ⓒ 김연옥


천지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있는 척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없이 앉아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을 연인들의 수줍은 얼굴이 괜스레 떠오른다.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이 오래 머물다 간 자리, 어쩌면 한때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이 못내 그리워 울먹거리다 떠난 자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천지못에서 무척산 정상까지 거리는 1.2km. 못을 따라 나 있는 길로 걸어가면 더욱 운치가 있어 좋다. 낙엽이 깔린 호젓한 길을 20분 정도 올라가면 무척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예전과 다르게 우람한 정상 표지석이 새로 세워져 있었다.

▲   ⓒ 김연옥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무척산을 뒤로하고..  ⓒ 김연옥


조망이 좋은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는 왔던 길로 다시 하산을 서둘렀다. 넉넉잡아 세 시간 정도면 가을의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김해 무척산 산행. 가을이 내려앉은 천지못이 그리운 날이면 나는 또 무척산을 찾고 싶다.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동김해 I.C→ 14번 국도→ 삼계사거리에서 생림, 상동 방향→ 58번 국도→ 생림 방향으로 직진→ 생림면사무소를 지나 5분 정도 가면 무척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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