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분자와 매실액기스봄에 담아서 여름내 먹었던 복분자 액기스와 매실 액기스, 매실주는 아직 숙성중이다. ⓒ 박금옥
요즘 농산물을 직거래로 팔고 사는 일이 많아졌다. 주부들 사이에서 농산물 직거래는 유행이다. 온갖 과일과 농수산물들이 아마추어 중간상인들 손에서 이곳저곳으로 퍼진다. 아파트 주민 친구들이나 이런 저런 모임에 나가면 부모님들이 지으신 농산물이나 지인들이 지은 농산물이라면서 소개를 받는다. 농촌에 친척을 없는 사람들이라도 연줄로 소개인이 될 때가 있다. 나만 해도 시골에서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사님 및 친분 있는 사람들이 농산물을 보내와, 때 아닌 중간상인(?)이 되곤 한다. 올해도 주위 여기저기서 서로 팔고 사는 일들이 생겨났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간상인과 소비자는 인맥이 우선이기에 농산물 사고팔기는 품앗이가 된다.
퇴직교사가 몇 년의 각고 끝에 지난해부터 결실을 맺게 되었다며 몇 다리 건너 우리에게까지 매실이 소개가 됐다. 작년부터 배달받아 매실액기스와 매실주, 매실장아찌를 만들어 먹고 있다. 특히 해물 알레르기가 있는 내게는 좋은 매실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자 시원하게 한잔씩들 마시라고."
답사 동호회 회원 중 한 분이 복분자주스를 만들어 와서 돌린 것이 올 봄이었다. 달달한 것이 맛있었다. 복분자를 어떻게 사게 되었느냐고 묻는 과정에서 옆에 있던 젊은 회원이 "저, 우리 시부모님이 복분자 농장을 하세요. 무농약으로 기르신 것이니까 안심할 수 있어요. 지금 수확 철인데...."라 한다.
즉석에서 서너 사람이 주문을 했다. 복분자는 상하기 쉽기 때문에 따는 대로 금방 배달을 해야 한다면서 도시 근교 부모님 농장에 회원들을 데리고 가서 직접 따게도 했다. 덕분에 다른 농산물도 덤으로 받았다. 처음으로 만들어본 복분자 액기스는 여름 내내 우리 집에서 시원한 주스가 되었고, 복분자주도 담게 되었다.
"옥수수가 잇몸에 좋다는 군요" 해서 옥수수를 샀고, "부모님이 감자농사를 지었는데...." 해서 감자도 샀다.
모임에 나갔더니 그 중 한 사람이 "인삼을 재배하는 친구가 인삼을 보내 왔어요" 하면서 보여주는 핸드폰 속에 잘 닦인 하얗고 굵직한 인삼사진이 보기 좋게 들어있다. 몇 뿌리에 가격까지 말한다. 4년근이라는 것도 밝힌다. 가격도 시중가보다 훨씬 싸다. 요즘 신종플루에 인삼이 좋다는 소리가 있다면서 살 수 있느냐고 먼저들 물어본다. 이런 즉석거래는 그 물건을 소개하는 사람에 대한 암묵적 신뢰가 바탕이 된다. 또는 후원금 마련 차원에서 파는 것을 사들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때도 절대적인 것은 그 물건을 내놓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 인삼인삼을 편으로 저며서 한 번 찐 다음에 말리고 있다. 간식거리다. 잔뿌리도 말려서 끓여 먹으면 된다. ⓒ 박금옥
"작년에 먹어보니 너무 맛이 좋았다. 그래서 올 해도 주문을 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과를 소개한 젊은 주부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망이 있는 사람이기에 또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과일 같은 상품은 형제나 그동안 신세진 사람에게 보내겠다며 주문을 더하는 경우도 많다.
직거래에서 때 아닌 중간상인이 된 사람들 전략도 여러 가지다. 모든 인맥이 동원되고, 요즘은 동호회들이 꾸리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 그곳에 상품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자신들에게 수고비로 가끔 오는 '하나 더'를 풀어서 맛을 보게 하거나 사용해 보게도 한다. 사실 아마추어 중간상인에게 떨어지는 수고비는 없거나 '하나 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정과 신뢰를 덤으로 파는 곳이다. 대부분 아마추어 중간상인들은 그 상품을 먹어보았거나 사용해본 사람들이다. 상품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된 셈이다. 물론 역기능도 있겠지만 순기능이 훨씬 앞선다고 생각되기에 아마추어 중간상인들은 열심이다. 이렇게 사는 농수산물들은 산지를 확실히 알 수 있고, 시중보다 가격도 싸고, 물건도 좋고, 사람간 정도 쌓는 것 같아 좋다.
▲ 고구마올 가을에 동네 사람을 통해 사들인 호박고구마, 고구마는 캔 뒤에 보름정도 지난 뒤부터 먹어야 맛있단다. ⓒ 박금옥
나도 홍성의 농촌교회에서 올라오는 농산물들을 팔 때가 있다. 우리가 먹을 것만을 주문했는데 판로가 쉽지 않은 경우에 주문한 물건 말고 팔아달라고 보내오는 것이다. 보통 1킬로그램 정도로 포장된 것이라서 양이 많지는 않지만,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흑미, 현미를 팔았고, 지금은 수세미로 만든 식품을 팔고 있다. 수세미 상품은 그곳 특이작물로 재배한 것인데 수세미 액기스와 수액, 천연 수세미 화장수들이다. 그런데 이 수세미 상품은 팔기가 쉽지 않다. 기침, 기관지염, 비염이나 천식, 아토피, 당뇨 등에 좋은 식품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좋은 식품이라는 것은 알지만 맛이 당기게 생긴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에게 먹이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큰 아이의 비염 때문에 주문을 해서 먹인다. 그 뒤로 재채기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든 것과 수세미 화장수를 썼던 사람들이 좋다고 다음에도 부탁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아무튼지 알음알음 품앗이 판매로 거의 소비하기는 했다.
▲ 수세미 액기스상품을 동호회 카페에 올리느라고 찍어 두었던 사진, 사용한 경험까지 소개했다. ⓒ 박금옥
직거래는 물건을 보기 전에 이루어지는 판매이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품질에 대한 믿음이다. 대부분 직거래의 소비자는 상품도 중요하지만 소개해 주는 사람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특성의 유통과정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정직한 농사짓기는 필수다. 직거래는 물건만이 나와 있는 시장과는 다르다. 시장에 넘겨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사람이 소통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기에 상품을 팔아달라고 맡기는 사람이나 그것을 맡은 사람이나 모두가 믿음이라는 배를 함께 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상품은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가 당당할 수 있다. 소비자는 양질의 상품도 얻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가질 수 있다. 물건만 오가는 것이 아니다. 만나면 팔고 산 물건에 대한 품평도 함께 한다. 좋은 물건 소개해줘서 고맙다느니 다음에 또 연결하라느니 등등,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뒷일까지도 책임이 주어진다. 이래저래 직거래장터는 사람들이 소통되는 공간이다. 아마추어 중간상인들인 사람이 공간이 되는 장터다.
목사님은 중간 상인이 되어준 우리에게 고마움의 정표로 수세미 액기스 '하나 더'를 보내거나 직접 땄다는 대추, 혹은 은행 같은 것을 물건이 오는 상자 속 한 쪽에 살포시 박아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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